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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손때가 적게 묻은 일광해수욕장
ⓒ 이종찬
파도소리 들리는 쓸쓸한 바닷가에
나홀로 외로이 추억을 더듬네
그대 내 곁을 떠나 멀리 있다 하여도
내 마음 속 깊이 떠나지 않는 꿈 서러워라
아~ 새소리만 바람 타고 처량하게
들려오는 백사장이 고요해
파도소리 들리는 슬쓸한 바닷가에
흘러간 옛날의 추억에 잠겨 나홀로 있네

-안다성 노래, '바닷가에서' 모두


바다가 부른다. 짙푸른 바다가 짙푸른 하늘빛을 물고 누가, 누가 더 푸른가 내기를 하며 사람들을 하나 둘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파도가 부른다. 짙푸른 바다를 운동장 삼아 맨발로 달려와 끝없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시름에 겨운 사람들을 부른다. 가도 가도 끝내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한껏 휘어진 수평선을 문 갈매기가 끼루룩 끼루룩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부른다.

그대는 꼭 한번만이라도 바다가 부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소라껍질을 귀에 대면 동화 속의 그 푸르른 바다에서 쏴아 하고 밀려드는 파도처럼 아득한 그 소리. 마음을 모두 비우고 소라껍질 속에 포옥 빠져들지 않으면 결코 들을 수 없는 그 서늘한 소리. 어른이 된 지금은 아무리 마음을 비우고 소라껍질에 귀를 대도 잘 들리지 않는 그 나직한 소리.

누군가 은빛 찬란한 모래밭을 사그락, 사그락 밟는 것 같은 그 소리. 이른 새벽, 만선을 꿈꾸며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떠났다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못 잊어 밤낮 흐느끼는 것 같은 그 소리. 그대로 바다가 되어버린 남편이 파도를 타고 갯마을로 돌아와 곡을 하고 있는 아내의 등을 따스하게 토닥이는 것 같은 그 소리, 소리, 소리….

▲ 파라솔... 파라솔... 파라솔의 행렬
ⓒ 이종찬

▲ 길게 뻗은 모래밭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추억거리다
ⓒ 이종찬
지난 9일(토) 오후 2시. 화살처럼 쏟아져 내리는 땡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꼭 혼자서 찾았던 일광해수욕장(부산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지난 해 이맘때에도 한번 왔었던 일광해수욕장은 안다성의 노랫말처럼 나 홀로 갯바위에 퍼질고 앉아 어린 아이처럼 소라껍질을 귀에 댄 채 오래 묵은 추억에 잠겨들기 참 좋은 바다였다.

그날 나는 울긋불긋한 파라솔이 빼곡히 둘러쳐진 그 모래밭으로 가지 않았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파도를 타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그 바닷가 가까이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양귀비 눈썹처럼 한껏 휘어진 이쪽 해변 끝에서 저쪽 해변 끝까지 혼잣말을 마구 중얼거리며 천천히 걷지도 않았다.

그저, 갯마을 앞에 놓인 조용한 포구 쪽으로 곧장 걸어갔다. 손수건을 몇 번이나 쥐어 짤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땀을 쏟으며. 왜? 수평선을 가로막고 있는 두 개의 방파제 너머 있는 드넓은 바다를 보기 위해서였다. 방파제가 놓여 있는 포구 앞바다에서 잠녀들이 자맥질을 하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였다. 갯마을 곳곳에서 말리고 있는 자연산 다시마를 내 눈에 직접 담기 위해서였다.

그 포구에 가서 울산 출신의 작가 오영수의 소설에 나오는 '갯마을', 영화에도 나오고, TV에까지 나온 그 갯마을의 정겹고도 살가운 풍경에 내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포옥 담가보고 싶었다. 그 포구에 가서 천천히 날고 있는 갈매기와 포구에 묶여 파도를 촐싹이고 있는 고깃배를 내 마음 깊숙이 담고 싶었다.

이 지역 주민들이 자랑하는 일광 8경도 내 가슴에 애인처럼 품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오영수의 소설에 나오는 그 갯마을의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일광 8경도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 번 살펴보아도 그 갯마을에 나오는 자잘한 흔적과 일광 8경의 흐릿한 모습만이 추억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 진종일 자맥질을 하고 있는 잠녀들
ⓒ 이종찬

▲ 포구에 묶인 고깃배가 파도를 타고 있다
ⓒ 이종찬
나는 다시 한 번 안내 자료를 꺼내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하지만 뒷주머니에 꽂아두었던 안내 자료마저 땀에 흠뻑 절어 오래 묵은 자료처럼 너덜거렸다. "해질녘 학리 포구에서 돛단배가 붉은 낙조 속으로 흰 돛을 올리고 무리 지어 출어하는 광경이 장관을 이룬다는 학포범선(鶴浦帆船)이 일경"이라 했지만 그 시간에 해도 지지 않았고, 돛단배도 보이지 않았다.

"용두머리(야산)를 휘감고 이천천이 굽이쳐 흐르는 광경이 장엄하다는 용두활수(龍頭活水)가 이경"이라 했지만 이미 그때 그 풍경은 일제 때 매립으로 몽땅 사라지고 없었다. "일광해수욕장 뒤 쪽으로 아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달음(월음)산의 허리에 감긴 안개가 장관이라는 월음요운(月陰腰雲)이 삼경"이라고 했지만 그 어디에도 안개는 보이지 않았다.

"안위소라는 작은 만에 파도가 사방에서 밀려와 우물 정(井) 자를 이루는데 그 속에 잠긴 달이 온갖 시름을 잊게 한다는 완월정파(玩月井波)가 사경"이라는 그곳에도 무슨 유리공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랬으니 우물 정(井)자의 파도를 볼 수가 없었다. 대낮이어서 하늘에 뜬 달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강송정에서 바라보는 동해 바다에 떠오르는 일출이 장엄하고 신비롭다 하여 해상조일(海上朝日)이 오경"이랬지만, 이미 해는 서쪽으로 반쯤 기울고 있었다. "소나무 숲 너머 시커먼 갯바위에 부딪치는 성난 파도가 장관이라 하여 송동노도(松東怒濤)가 육경"이랬는데, 그날따라 파도도 얌전했다.

"일광바다 바로 뒤에 버티고 앉은 일광산에 해 떨어질 때 낙조가 아름다워 일광낙조(日光落照)가 칠경"이랬지만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 서서 기다릴 수도 없었다. "강송정 옆 갈대밭에 겨울의 언 강물 위를 한가로이 노니는 겨울새의 풍광이 멋스러워 강송동수(江松冬水)가 팔경"이랬는데, 계절을 거슬러 오를 수도 없었다.

▲ 기장의 명물 자연산 다시마
ⓒ 이종찬

▲ 일광해수욕장은 바닷물이 몹시 맑고 잔잔한 편이다
ⓒ 이종찬
그날 나는 일광이 낳은 아름다운 풍경의 흔적들만 눈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그런지 목도 더욱 탔다. '에라 모르겠다, 소주라도 한 잔' 하면서 나는 그 갯마을(칠암)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어느 횟집에 들어가 소주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 저만치 모래밭에서는 사람만 뒹구는 것이 아니었다. 파도도 덩덜아 뒹굴고 있었다.

아름드리 소나무숲이 시원해 보이는 강송정에서 학리 마을 들머리(1.8km)까지 여인의 허리처럼 한껏 휘어져 있는 일광해수욕장(부산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그래. 지난 해 저 은빛 모래밭을 걸었을 때 저 모래밭 중간쯤 고려 말 정몽주와 이색, 이숭인이 첫눈에 보고 포옥 빠졌다는 '삼성대'(三聖臺)가 우뚝 솟아나 있었지.

안내자료에 따르면 저 해수욕장은 바닷물 깊이가 얕고 바닷물 온도 또한 섭씨 13도로 물이 따뜻한 편이어서 아이들이 하루 종일 해수욕을 즐기기에도 딱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지난 해 이곳에 왔을 때에도 해수욕을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 그렇다고 이번 나들이에서도 해수욕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지 아니한가. 해수욕장 개장기간 7월 4일부터 8월 31일까지.

따가운 여름햇살이 금가루처럼 마구 쏟아지고 있는 일광 해변. 저만치 갯바위 주변에는 바다낚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등대처럼 듬성듬성 서 있다. 간혹 낚싯대가 활처럼 한껏 휘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그 갯바위 옆에서는 아까부터 자맥질을 하고 있는 잠녀들의 모습이 마치 돌고래가 튀어 오르는 모습처럼 보인다. 다른 해수욕장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임에 틀림없다.

"돛단배는 다 어디로 갔어요?"
"돛단배? 요새 돛단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 동력선으로 바꾼지가 아주 옛날이지."
"옛날의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좀 있나요?"
"산과 바다가 옛날 그대로의 모습 아이가."
"이 곳에서 무슨 축제가 열린다면서요?"
"29일(금)부터 1일(월)까지 '기장 갯마을 마당극 축제'란 기(것이) 열린다 아이가. 이래 봐도 이 곳이 영화를 찍었던 곳이거덩."


▲ 바닷물의 깊이가 얉고 수온이 따뜻해 아이들이 해수욕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 이종찬

▲ 일광8경을 지정할 정도로 주변 풍경이 아주 뛰어나다
ⓒ 이종찬
그래. 올 여름 가족들과 함께 일광해수욕장에 간다면 가까이 있는 국수당과 남산봉수대, 황학대 등도 꼭 둘러보자. 국수당은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앞 국가 기원제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진 제당으로 다섯 그루의 해송이 제당을 둘러싸고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1그루처럼 보인다는 참으로 신비한 곳이다.

남산봉수대(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는 고려 성종 4년, 서기 985년에 설치하여 고종 31년, 1894년 갑오경장 때 폐지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옛 모습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황학대는 고산 윤선도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백사장 건너에 있는 송도의 이름을 '황학대'로 고쳐 불렀다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일광해수욕장 바로 앞에는 민박집(일광해수욕장 번영회, 011-9468-9402)이 많이 있으며, 소나무숲이 울창한 강송정 등지에서 천혜의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야영을 하기 위해 텐트를 빌리려면 부산동부수협 지도과(051-722-1905)나 일광해수욕장 번영회(051-721-2219)로 연락하면 된다.

▲ 올 여름에는 일광해수욕장으로 가자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부산-14번 국도(울산 방면)-반송동-기장-일광해수욕장
※해운대역 앞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일광행 버스를 타고 가도 된다.   

★'2005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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