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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미산에 나무를 심는 주민들
ⓒ 전민성
지난 3월 30일 일요일 오후 마포구 성산동에서는 500여명의 주민들과 소식을 듣고 찾아온 서울 지역의 시민들이 함께 성미산에 나무를 심는 행사와 음악회를 가졌다.

오후 1시부터 진행된 나무심기 행사에 참가한 아이들과 주민들은 즉석에서 작은 종이에 자신의 이름과 나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코팅을 하고 어린 묘목을 받았다. 묘목을 받은 아이들과 주민들은 옆 언덕으로 이동해 미리 파 놓은 구덩이에 나무를 심거나 직접 삽이나 모종삽으로 땅을 파서 묘목들을 심었다.

▲ 나무에 달 이름표를 만들고 있다.
ⓒ 전민성
나무에 달 이름표를 만드는 테이블 옆에서는 잘려진 작은 나무에 손으로 그림을 그린 목걸이를 판매하기도 했다. 나무로 된 새 모습의 장대 옆에서는 20~30여명의 주민들이 한 달에 걸쳐 완성한 장승을 무리 아버지가 대여섯명의 주민들과 함께 마무리 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환경운동연합의 회원인 이상아(오주중 2·송파구)양과 이양의 어머니는 "주말이면 야외에 자주 다니는데 이런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가하게 되었다"며 묘목을 심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또 '숲 해설가 협회'의 사이트에서 소식을 듣고 찾아 온 김영신(34·상왕십리)씨도 아이와 조카들을 데리고 산에 나무를 심었다.

▲ 성미산의 나무로 만든 목걸이를 판매하고 있다.
ⓒ 전민성
▲ 주민들이 함께 완성하고 있는 장승
ⓒ 전민성
나무심기 행사에 참가한 강산(5·서교동)의 어머니는 “항상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기회가 생겨 찾게 되었어요”라고 나무심기 행사의 의미를 찾았다. 자매인 유승연(성원초6)양과 유현승(성원초4)양도 이름표에 ‘잘 자라고 나중에 커서 오면 크게 자라서 자랑해라’ ‘나무야, 나랑 친구 나무야, 내가 널 잘 키워 줄게. 잘 자라라’라고 각각 적었다.

파란하늘 어린이 집에 다니고 있는 이종규(6)군과 누나 이은결(9 성서초2)양도 묘목을 심고 ‘나무야 잘 자라라’라고 적었는데 종규군의 어머니는 종규가 전에 산에 와서 나무가 베어진 것을 보고 ‘우리는 (나무가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다’라며 나무들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아이들은 ‘나무야 예쁘게 자라라’‘무럭무럭 자라라. 너는 내 자식이다’라는 등의 소망들을 적어 나무에 매달았다.

▲ 상수리 나무 묘목을 받은 주민
ⓒ 전민성
▲ 심은 묘목자리를 손으로 정리하는 아이
ⓒ 전민성
지난 3월 14일 지하철에서 시장을 면담할 때 ‘성미산을 살려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던 손정현씨도 딸 서경, 남편과 함께 산에 나무를 심고 ‘쑥쑥 자라라’라고 적은 이름표를 나무에 달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에 나무를 심어봤다는 손정현씨는 ‘기분이 묘하다’고 심정을 표현했다.

옆에서 함께 나무를 심던 주민 최모(68·성산동)씨는 “생태계를 남겨놔야 후손들이 살아나지. 우리야 이제 곧 죽겠지만 아이들과 후손들을 생각해서라도 산은 꼭 지켜야 해”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 아래에는 초등학교도 있어요. 물탱크 못 짓게 하는 것은 아니지. 왜 하필이면 산을 파괴하고 여기 지으려고 하느냔 말이지. 자손들이 나중에 우리 할머니들이 돈이 필요해서 산을 내줬다고 할 텐데 후손들에게 어떻게 얼굴을 들겠어요? 나는 노인네들도 앞장서서 손자들을 위해 산을 살리려고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 나무 목걸이를 하나씩 단 아이들
ⓒ 전민성
▲ 묘목을 심기위해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
ⓒ 전민성
“날개에 총을 맞은 새와 사냥꾼, 이곳에는 그 장면을 즐기는 사람뿐. 슬퍼하는 사람. 이곳은 고요해. 이곳은 고요해. 내 정신을 돌게 만드는 기계들의 굉음. 또 개발 또 개발, 내 정신을 돌게 만드는 콘크리트와 기계의 굉음. 상처를 치유하듯이 삶을 줘. 상처를 치유하듯이 삶을 줘.” (서커스 유랑단의 ‘살아나라’)

오후 3시부터 성미산 야외무대에서는 광화문 촛불시위에서 노래하는 가수 박성환, 하자센터의 서커스 유랑단, 김창완, 도토리 어린이 집의 아이들, 주민들로 구성된 마포밴드 등이 출연하는 행사가 펼쳐졌다.

▲ 동생과 함께 나무를 심은 은결양
ⓒ 전민성
▲ 아이들에게 씨앗을 나눠주는 서커스 유랑단 단원
ⓒ 전민성
서커스 유랑단의 ‘가관’ 이라는 팀의 피아노 연주자인 ‘있다’는 성미산을 생각하며 ‘살아나라’를 작사 작곡했다. 그녀는 무대에서 “성미산이 올 때마다 바뀌어요. 처음에는 아주 좋았는데, 두 번째는 나무들이 잘려 있었고, 오늘은 나무심기. 다음은 예전 같아 지겠죠?”라고 성미산의 부활을 기원했다.

레일아트(Rail Art)의 상임전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김지연씨는 바흐의 ‘코트라 덴짜’와 비발디의 사계중 여름, 그리고 성미산 싸움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로 승리(Victory)라는 곡을 연주해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중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성미산의 이야기를 담은 ‘걱정이다, 걱정’ ‘성미산이’ ‘꿈’ 등을 노래한 도토리 방과후의 어린이들이었다. 나리 선생님의 기타반주와 윤진엄마의 신서사이저에 맞춰 9명의 아이들이 초록띠를 두르고 무대에 섰다.

▲ 숲속음악회에 모인 주민들
ⓒ 전민성
▲ 도토리 방과후 아이들의 노래
ⓒ 전민성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
성미산을 없앤다니 걱정이다
우리들이 제일 좋아하는 산
제-발 뚜루루루루 제-발 뚜루루루루
성미산을 살려주세요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
성미산을 없앤다니 걱정이다
마포구에 하나밖에 없는 산
배수지도 뚜루루루루 아파트도 뚜루루루루
성미산에 짓지 마세요
성미산엔 절대 안돼요
다른 길을 찾으세요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

(멘트)
대통령아저씨께
성미산을 살려주세요.
성미산이 없어지면 우리는 놀러가지도 못해요.
그리고 성미산은 우리의 친구예요.
대통령아저씨도 친구가 죽으면 슬프잖아요
딱다구리랑 붉은배새매, 개미, 지렁이는 우리의 친구예요
성미산을 꼭 살려주세요.


산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설치된 사진전은 파괴되기 전의 아름다운 성미산의 모습과 주민들이 산을 지켜 온 과정들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관람하던 이신정(34·송파구 거여동)씨와 남편은 공동육아 회보를 보고 성미산을 찾았다며 “서울시 기본 정책이 60-70 미터 높이의 산에 배수지를 짓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성미산은 마포만의 문제가 아니며 서울시민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성미산 나무에 그림을 그려넣은 목걸이
ⓒ 전민성
▲ 산 정상에 나무를 심고 있는 주민들
ⓒ 전민성
이씨는 “공동육아조합은 동네의 산을 아이들의 나들이 장소로 이용하기 때문에 자기 아이들만의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많은 마포 주민들도 이용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라며 "저희 아이들이 나가는 ‘푸른 어린이집’도 하남시 마천동에 위치한 천마산 자락인 ‘애기산’을 나들이 장소로 이용하고 있지요”라고 덧붙였다.

공연이 진행되고 있던 오후 4시, 나무심기 행사의 참가자들이 빠져나가 여유로워진 산 정상에는 몇 몇 주민들이 남아 이곳 저곳에 전나무 묘목을 심고 있었다. 성미산 지역의 어린이 공동 교육장인 ‘꿈터’에서 힙합을 가르치고 있는 곽우진(31·서교동)씨도 남편과 함께 나왔다. 색소폰 연주자인 미국인 남편 디바리안 로즈(27· Devarian Rose)씨는 산에 나무를 심는 아주머니들을 도와 나무를 심을 구덩이를 파며 한국말로 “너무 재미있어요”라며 웃었다. 뭐가 재미있냐는 질문에 "아줌마가 하는 말도 듣고, 사람들, 학생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것"이라며 "이 지역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에요. 왜 사람들이 이 산을 지키려는 지 알겠어요"라고 말했다.

이 날 나무심기 행사장에는 20여명의 공사업체 직원들이 나와 ‘도시계획결정구역인 성산배수지 내에서는 나무심기를 비롯한 다른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붉은 현수막을 걸고 나무를 심는 아이들과 주민들을 따라다니며 겁을 주려고 했지만 누구 하나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심기에 열중하자 한 곳에 무리지어 서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 음악회를 보며 즐거워하는 주민들
ⓒ 조혜란
▲ 주민들로 구성된 '마포스' 밴드
ⓒ 전민성
고사리 손으로 흙을 파고 나무를 심던 수많은 아이들과 진지한 어른들의 모습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성미산의 나무들이 살아나고 있었다. 아이들이 심은 작은 묘목들은 그들의 소망대로 사랑과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랄 것이고 이전 보다 훨씬 크고 울창한 숲을 이룰 것이다. 희망은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동네 어른들
“삶에 희망을 조금 주면 얼마나 좋아요.”

음악회 공연이 끝나갈 무렵 관객석의 뒤편에 평소 산을 자주 이용하는 아주머니들이 모여 공연을 지켜보고 계셨다. 다가가서 공연을 어떻게 보시냐고 했더니 ‘좋다’고 하신다. 산에 자주 오시냐고 물었더니 밝던 동네 어른분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집에 애들 출근시키고 혼자 있으면 서글픈데 산에 오면 친구들도 만나고, 아쉬운 것도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자식보다 나아.”
“비오면 우산 쓰고 오지. 마음 아플 때 오면 숨을 쉬어.”

“자식들이 차 타고 나가자고 해도 나이든 사람은 못 나가. 가까운 산이 제일 좋아.”
“나이든 사람들은 산 없으면 어떻게 살아.”

“그런데 나라에서 없애겠다고 하는데….”
“이제는 주민이 원하면 그렇게 될 거예요. 그게 민주주의지요.”

본인의 신분을 기자라고 밝히자 옆에 계시던 분들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몇 억씩 들여 노인정 짓는 것보다, 시장님, 산 하나 지켜줬으면 좋겠어. 여기서 사람들이 병을 얼마나 많이 고쳤는지 몰라. 중풍환자만 해도 1년 동안 산에 꾸준히 다니며 낫는 걸 10명도 넘게 봤어.”

“중풍환자는 눈에 보이지만 안 보이는 정신병, 신경병 환자들, 아이들도 얼마나 많이 오는 지 몰라.”

“여기를 오면 심신으로 안정이 돼.”
“(관직에 있는 사람들을) 부모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포를 위해 힘을 써 줘야지.”

이름과 나이, 사는 곳을 묻자 "그런 걸 뭐 하러"하시며 꺼리신다. "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사를 써야 되고 기사를 쓰기 위해 필요하다. 싫으시면 이름 빼고 성만 쓴다"고 하자, “아니야. 다 써. 내 이름은 장시분. 서교동 예순 다섯이야”라고 하신다.

“나는 김주한. 예순 여덟. 망원동 살어.”
“나는 김귀남. 성산동, 예순 넷.”
그러고 보니 처음 이름을 안 밝힌 한 분만 최모씨(68·성산동)로 남았다.

산밑을 가리키며, “나는 저 밑에만 가도 정신이 흐려져. 그런데 이만큼만 올라와도 정신이 그렇게 맑을 수 가 없어. 공기가 다르니까.”
“서교동, 당인리 발전소(망원동)에서도 다 와요. 성미산은 마포구에서는 노른자야.”
“우울해도 여기와서 두 바퀴만 돌면 마음이 맑아져요. 그런데 없앤다고 하니 마음이 우울해요.”
“삶에 희망을 조금 주면 얼마나 좋아요. 남의 가슴에 ‘꽝’ 하니까.”

공연이 끝나고 아직은 분주한 공연장에 딱다구리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은 조용한 새벽이나 저녁 시간에만 들을 수 있던 딱다구리가 그 시간에 소리를 내는 것은 처음 들었다. 어른들과 이렇게 조용히 이야기를 나눈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손으로 가볍게 가슴을 치며 ‘가슴에 꽝 하니까’라며 조용히 말씀하시던 김주한 어른의 모습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이 분의 가슴에 ‘꽝’하고 망치질을 한 것은 누구일까? 성미산에 단단히 메어져 있던 수많은 생명줄을 싹둑 자른 것은 누구일까? 노인들과 어린이들의 휴식처를 하루아침에 부순 건 누구일까?

배수지 건설에 반대하는 2만명의 주민서명과 배수지 건설 재검토를 요구하는 수 십 명의 주민들이 낸 민원에 대해 서울시와 서울시 상수도 본부는 ‘주민을 위한 공사’라는 앵무새 같은 똑 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주와 이번 주 각각 대책위 사무실과 지역 생활협동조합의 사무실이 같은 방법으로 도난 당하는 일이 생겼는가 하면, 상수도 사업본부는 주민을 업무방해로 고발하고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내기도 했다. 현재는 두 달 이상 주민들이 불침번을 서며 산을 지켜온 산 정상의 천막을 철거하려 하고 있다.

주민의 바람에 작은 희망을 줄 수 있는 관청의 모습이 진정 아쉽다. /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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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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