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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으론 야식을 집어 입에 넣고, 남은 손의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걸로 야식 만만한 인터넷 서핑을 즐기던 조모씨는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채팅 사이트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채팅 사이트냐? 네 나이가 몇인데?" 묻지 마라. 나이 물으면, 조모씨 돌아버린다.

조모씨는 얼른 메신저에 조모씨처럼 인터넷 밤길을 쓸 데 없이 헤매는 김모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김모씨가 메신저로 시큰둥하게 말했다. "쌔고 쌘 게 채팅 사이트잖아? 웬 채팅?" 조모씨도 그리 생각했다. 메신저 하기도 바빴다. 모르는 이들 낚으려고 죽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죽쳐봤자, 죽 쑤는 인간들만 나타나 '삑' 소릴 늘어놨다.

그걸 어찌 그리 잘 아냐? 조모씨도 한때 채팅방에 상시 거주하며 낚시질에 몰두한 적이 있다. 인터넷이란 새하얀 물결이 거세게 통신계를 덮쳐, PC통신이란 파란 창이 압사 당하기 전이었다. 지금은 전설이 돼버린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철철이 갈아타며 온갖 인물들을 만났다. 낯선 이들과 만나 낯선 대화 혹은 날선 대화를 즐겼다.

졸다 보면 스크롤이 주르륵 올라가, 조모씨와 대화하던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조모씨 혼자 멀뚱멀뚱 채팅방을 지킨 적도 있었다. 물론 방안 명단엔 두 명 더 있긴 했다. 조모씨가 대화 안 보이게 저들끼리 대화하는 '잠수꾼'들이었다. 조모씨가 그렇게 날밤을 푹 익힌 밤으로 바꾼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할수록 실망감도 늘어났다. 할수록 만났고, 만날수록 실망감은 곱절로 조모씨를 덮쳤다. 채팅방에서 발랄하던 그는 현실에선 발악을 하거나 버벅댔고, 채팅방에서 우아하던 그는 현실에선 우악스러웠다. 채팅방에서 발랄했던 그는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손가락에 신들리는 스타일이었던 거였고, 채팅방에서 과묵하고 우아했던 그는 타이핑이 100타도 안 되는 바람에 말을 몇 마디 할 수 없던 거였다.

그때 조모씨는 채팅과 얼굴 박치기의 괴리, 그러니까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깨달았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어 채팅산을 터벅터벅 내려온 조모씨였다. 깨달음은 명작소설을 읽지 않아도 온다.

ⓒ 오마이뉴스 조은미
그러던 조모씨가 최근 신기한 채팅 사이트를 발견했다. 그리고 빠졌다. MSN 메신저 채팅방? 세이클럽? 인터넷으로 둔갑한 하이텔에 울며불며 "옛것이 좋은 것이여"를 외치며 복귀? 천만에다.

이젠 그런 채팅방에 갈 필요도 없고, 가입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사이트 주소 앞에 http://gabbly.com/만 치면 됐다. 바꿔 말하면, 이 http://gabbly.com/ 뒤에 내가 원하는 사이트 주소를 치면 됐다. 어떤 걸 쳐넣어도 됐다. 이 사이트 말마따나 '혁신적인' 채팅 도우미였다. 조모씨는 신기했다. 당장 소리 높여 외쳤다.

"뭐 이딴 게 다 있노? 너 어느 별에서 왔냐? 잘 왔다."

과거의 필을 되살려 조모씨는 얼른 실험에 돌입했다. 조모씨는 http://gabbly.com/blog.oh
mynews.com/cool이라고 쳤다. 조모씨 블로그였다. 조모씨 블로그에 금방 채팅창이 열렸다. 채팅창은 열렸지만 들어오는 이는 없었다. 미개척지였다.

정말 일반 사이트도 된단 말야? 조모씨는 또 쳤다. http://gabbly.com/ohmynews.com 역시 채팅창이 열렸다. 들어오는 이는 없었다. 조모씨는 포탈 사이트 주소부터, 온갖 사이트 주소를 쳐 넣었다. 포탈사이트 주소를 치자, 그래도 두세 명이 보였다. 누군가 말했다. "오늘 알았어요." 누군가 또 말했다. "여긴 미국인데요." 어디서나 가능했다. 어느 사이트에서나 가능했다. 어떤 언어도 가능했다. 영어, 불어, 중국어…. 조모씨는 하마터면 소릴 지를 뻔했다. 채팅의 대발견을 발견했다.

▲ 블로그 오른쪽 위에 채팅창이 열렸다. 이 블로그에 들어와 채팅창을 열면, 누구나 채팅할 수 있다.
ⓒ 오마이뉴스 조은미
물론 이걸 만든 gabbly.com에서는 글로벌 채팅을 할 수도 있었다. 여기야말로 채팅 본거지니까. 이름 봐라. '재잘재잘'이다. 조모씨가 이 사이트에 접속하자마 자동으로 채팅창이 떴다. 조모씨는 자동으로 채팅룸 안에 밀어 넣어져 있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다들 영어로 쏼라쏼라 떠들었다. 누군가는 한자를 눌렀다. 누군가는 다른 말로 떠들었다. 다양한 언어가 나무했다.

방금 들어온 누군가 말했다. "어. 되네?" 신기해하는 조모씨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Hi.' 그는 스페인이라고 했다. 중학교 수준 영어 두어 마디를 구사하던 조모씨는 밑천이 금방 떨어졌다. "바빠서…"라는 단말마를 남기고 조모씨는 화들짝 뛰쳐나왔다. "I'm busy. so long." 이게 기억나는 게 신기했다.

▲ 테스트 채팅창. 조모(joker)씨가 한 지인을 초대한 장면 캡처.
ⓒ 조은미
어쨌든 조모씨가 가장 맘에 드는 건 그거였다. 내 블로그에서 내 블로그를 방문한 이들과 채팅을 할 수 있다니? 내 블로그를 방문한 이들과 소곤소곤 맘에 맞는 대화를? 조모씨는 흐뭇했다. 이제 안주인 노릇 제대로 하게 생겼다. 사랑방 여는 기분이 이런 걸까? 앗. 또 있다. 내가 좋아하는 블로그에서 채팅창을 열면, 그 블로그 주인과 대화도 할 수 있겠네? 그 블로그 주인과 운명처럼 같은 시간에 채팅창을 열면?

조모씨는 흥분했다. 카페에서도? 내가 잘 가는 사이트에서도? 맞다. 정팅도 가능하겠네? 몇월 몇일 채팅창을 연다고, 정팅 공고를 내면 되는 거였다. 채팅 하고 싶으면 채팅하면 됐다. 딴 데 갈 것도 없이 내 카페에서, 내 블로그에서. 조모씨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 데 다 가입하느라 노출되는 내 정보에 찝찝해할 일도 없겠네? 조모씨는 궁금했다. 다시 한 번 채팅의 바람이 몰아칠까? 신기함은 신기함으로만 끝날까?

이 gabbly.com은 밝혔다.

"여기는 채팅하게 하는 곳이다. 우리는 어떤 내용, 화제, 흥밋거리든 함께 하고 접속하자마자 (채팅) 가능한 플랫폼을 세운다."


인터넷이 진화하자, 채팅 방법도 진화했다. 이제 채팅 사이트를 찾아 헤맬 것도 없다. 내 블로그에서도 채팅창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컴맹이라도. 핵심은 그거다. 컴맹도 채팅창을 만들 수 있다. 어디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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