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조작 논란에 대해 해외의 과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특히 황 교수와 치열한 경쟁을 해온 세계의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계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이에 대해 그동안 국내언론은 해외전문가인 미국의 란자 박사를 자주 인용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황 교수의 강력한 라이벌 연구자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미국 란자 박사의 심층 인터뷰를 보내왔다. <편집자주>
"(DNA 조사는) 몇 시간이면 할 수 있는 쉬운 실험이며, 독립적인 그룹에서 실시되면 결과를 속일 수 없다." -2005년 황우석 논문 검증을 <사이언스>에 요구하며

미국의 유명한 생명공학 회사인 ACT(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로지, Advanced Cell Technology)의 로버트 란자(Robert Lanza) 박사는 이번 황우석 파문과 관련해 우리나라 언론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람 중 하나다.

2004년 황우석 교수가 <사이언스>를 통해 세계 최초로 복제배아줄기세포를 추출했다는 것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영예를 독식하기 전까지 ACT는 인간 복제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선봉장이었다. 란자 박사팀은 2001년 11월,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를 복제해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이 복제배아는 6~8세포기에서 분열을 멈춰 줄기세포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사이언스>에 발표했던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둘러싸고 조작의혹이 제기되면서 줄기세포 연구는 다시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 ACT 부사장 로버트 란자 박사.
ⓒ 로버트 란자 제공
<오마이뉴스>는 란자 박사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최근 황우석 파문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란자 박사와의 전화통화는 12월 20일(현지시각)에 이뤄졌다.

복제 연구에 대한 지원은커녕 복제연구 자체를 불법화하려는 미국에서 황우석 교수팀과 복제 배아줄기세포 개발을 놓고 경쟁해온 란자 박사는 예상대로 황 교수에 비판적이었다.

란자 박사는 한국 상황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제까지 한국에서 알려진 사실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황우석 교수가 과학자의 자존심이며 생명인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고 평하고 그가 보이는 일련의 석연치 않은 행동을 비난했다.

그는 <사이언스> 심사위원들이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을 잡아내지 못한 것은 이해하지만 <사이언스>가 2004년 자신이 제기한 의혹과 독립 검증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비판했다. 황 교수의 2004년 논문이 나왔을 때 바로 그 당시 과학 수준으로는 발표된 연구 결과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독립 검증을 요구했으나 <사이언스>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또 란자 박사는 2004년 황우석 논문이 자신의 연구에 끼친 쓰라린 결과도 소개했다. 자신이 속한 ACT 연구팀이 최초 복제 배아줄기세포 추출에 다가가고 있었는데 황 교수의 업적이 발표되면서 투자자들과 난자 기증자들이 등을 돌려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란자 박사는 황 교수가 다시는 연구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황 교수에 비판적이었지만 공저자와 연구자들 중 논문 조작을 몰랐던 이들은 구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란자 박사와의 전화 인터뷰 내용이다.

"2004년 황우석 논문, ACT에 심각한 타격"

- 이번 '황우석 파문'을 어떻게 보나?
"황우석 교수는 지금 신뢰도가 '0'(zero credibility)이다. 그는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했다. 한 번 거짓말을 한 사람은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처럼. 게다가 이제 자신과 같이 일한 연구자가 줄기세포를 바꿔치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정말 실망이다.

처음에 논문 조작 의혹이 불거졌을 때 왜 DNA 재검증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지 뭔가 수상쩍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셀 라인을 누가 바꿔치기 했다니 그걸 누가 믿겠나. 그리고 단계마다 냉동 보관하는 줄기세포가 오염돼서 다 죽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 황우석 교수의 '2004년 논문'이 나왔을 때 같은 연구를 해온 이 분야 전문가로서 당신의 반응은 어땠나?
"믿지 않았다. 우리 팀은 이 분야에서 수년간 연구를 해왔고 따라서 세계 최첨단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황 팀의 성과는 그 당시 수준으로는 도저히 달성 불가능한 것이었다. 의심을 할 만한 몇 가지 중요한 근거가 있었다.(그게 뭐냐고 기자가 묻자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독립 검증(independent verification)'을 제안했다. 하지만 내 의견은 묻혀버렸다. 내가 황 교수의 라이벌이고 경쟁자라 그런 소리를 한다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사이언스>도 이미 심사를 거친 논문이라면서 더 이상 검증이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앞으로 이 부분은 시정될 필요가 있다. 반대자가 의문을 제기하면 검증을 실시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 황우석 교수의 2004년 논문이 당신의 연구에 영향을 주었나?
"(<사이언스>가 황 교수의 1차 논문을 심사할 때인) 2003년 10월은 우리 팀의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도 한창 무르익어 가시적 성과가 나오려 할 무렵이었다. 황우석 팀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황우석 팀이 선수를 친 거다. 2004년 황우석 논문 때문에 우리 팀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우리에게 난자를 기증하던 사람들은 ACT 연구가 세계 최고라더니 그게 아니라고, 즉 우리 연구가 효과가 없다며 등을 돌렸다. 따라서 난자를 더 이상 기증받지 못 해 다되어 가던 연구가 중단됐다."

"2005년 논문 성과 진실이길 바랐다"

▲ 미 생명공학회사 어드밴스트 셀 테크놀로지(ACT) 홈페이지.
- 황우석의 2004년 논문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난자를 몇 백 개나 얻을 수 있었다는데 놀라움을 표시했다. 당신 팀도 난자만 많이 확보했으면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첫 번째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기 일보직전이었다. 242개까지도 필요 없고 우리에게 난자 한 라운드만(한 12개 정도) 더 있었으면 되는 거였다. 2003년 말에 우리가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세포 핵 치환 실험을 할 때, 난자가 총 16개였다. 그 중 13개가 8~16세포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후 12개의 배반포(blastocysts)를 만들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게 미국에서 행해진 마지막 세포 핵치환 실험이다. (기자주: 배반포는 줄기세포 직전 단계다. <사이언스>에 발표된 2004년 황우석 논문을 보면 난자 242개에서 30개의 배반포를 얻었고 그 중 1개의 줄기세포를 추출했다고 밝혔다.)"

- 이번 '2005년 논문'은 어땠나.
"나는 이 논문의 성과가 진실이기를 바랐다. 이 논문이 진실이라면 정말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가. 우리가 여태껏 꿈꾸어온 복제 배아줄기세포의 상용화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나는 이 논문을 찬양했다. 우리 팀도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이게 조작이라니... 하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뛰어난 결과였다."

- 2005년 논문이 발표되자마자 직접 읽었을 텐데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나?
"데이터 조작을 알아채지 못한 심사위원들을 이해한다. 과학 논문 심사는 거기에 제시된 데이터가 진실임을 전제로 하고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읽을 때 데이터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황우석 용서 안돼... 줄기세포 연구 1~2년 후퇴할 것"

- 앞으로 서울대와 피츠버그대 진상조사위원회가 2005년 논문 조작 사건 결과를 발표하겠지만 황우석 교수에 대한 제재 조치가 어느 선까지 이르리라 보는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으로도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수준(unforgivable)이다. 그를 다시는 연구실에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 중에는 무고한 사람들도 있다고 알고 있다. 그들은 구제해 줘야 한다.

그리고 한국 과학자는 황우석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예로 이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한국계 과학자 정영(Young Chung) 박사가 있다. 그는 나와 일하고 있는데 그가 제1 저자로 참여한 논문이 최근 <네이처>에 실렸고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한국 사람들은 이번 '황우석 파문' 사건 때문에 너무 상심하지 말고 (진실된 성과를 낸 다른) 한국 과학자들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 이 사건이 미국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미칠 영향은?
"후폭풍이 불어닥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연구를 비난해온 사람들이 더욱 목청을 높일 것이고 더 엄격한 규제가 도입될 것이다. 이번 파문은 우리 모두(전 세계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계)의 수치이며 우리 모두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 사건 여파로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1-2년 후퇴하는 격이 될 것이다."

로버트 란자와 ACT

로버트 란자 박사는 매사추세츠 주 토박이로 12살 때부터 집 지하실에서 생물실험을 했다. 당시의 이 실험 결과는 이후 그가 18살이 됐을 때, <네이처>에 연구논문으로 발표됐다.

그는 13살 때 근처 하버드 대학에 질문을 하러 갔다가 신경생물학과장 스티븐 커플러 교수를 우연히 만난 이래, 폴리오 백신 전문가인 요나스 솔크, 행동심리학자 스키너, 노벨상 수상자 제럴드 에델만과 로드니 포터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사사받았다.

이후 그는 세계 최초로 심장 이식 수술에 성공한 크리스티앙 버나드의 심장 이식 수술에 참여했으며 의대 재학 중에 버나드, 데이비드 쿠퍼와 공저로 심장 이식 수술에 관한 교과서를 펴냈다.

ACT에는 1999년 3월에 합류했으며, 현재 의학 및 과학부 부사장으로 복제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ACT는 1998년 마이클 웨스트가 창립한 생명공학 회사로 임상 치료 목적의 복제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한다. 마이클 웨스트 사장은 ACT 설립 이전인 1990년 캘리포니아 게론 회사를 설립해 1995년부터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관심을 가져왔다.

2005년 1월까지 사기업이었던 ACT는 법적으로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전혀 받지 못 하기 때문에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동안 300개에 달하는 줄기세포 치료 관련 특허 및 특허 응용을 취득하는 높은 연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2년 6월 <아틀란틱>및 ACT 홈페이지 참고)
- 미국에서는 작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는 법안(일명 '줄기세포 안', Stem Cell Initiative)이 통과된 후 캘리포니아가 이 분야 연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ACT는 캘리포니아로 옮겨갈 계획이 없는지?
"우리 회사는 캘리포니아에 지부를 두고 있다.(기자주: 현재 마이클 웨스트 ACT 사장이 그 지부에서 캘리포니아 주의 관-학-재계와 연계해 연구 협력을 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우리 회사가 매사추세츠에 있는 이유는 처음 여기에서 설립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 당신은 18세에 <네이처>에 연구 논문을 발표한 것 외에도 1980년대에 크리스티앙 버나드와 인간 심장 이식 수술을 하는 등 의학 분야에서도 빼어난 성과를 내왔다. 그런데 왜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택했나?
"지난 20년간 이식 수술에서 면역거부가 가장 큰 장애였다. 치료용 복제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보고 이 분야에 투신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I just wanted to send my film article to enter the competition as advertised on your site. I did not expect this much hassle. Other than that, I love to write about practically anything about culture, the U.S., Russia, and Ukraine. I am also very passionate about politics and sports (particularly, tennis and Kim Byung-hyun).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