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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오십대 중반의 세월에 이르고 보니 과거의 수많은 총선들에 대한 추억도 겹겹이 쌓인 형국이다. 생각해보면 유쾌하고 즐거운 추억보다는 우울하고 슬픈 추억들이 많다. 과거의 총선들은 그대로 우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험난했던 궤적이기도 하기에, 그만큼 우울하고 슬픈 추억들은 당연한 것이기도 할 터이다.

또 그것은 나라의 큰 정치행사를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눈으로 보지 않고 매번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대하고 임했던 내 삶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릇 선거가 국민들의 즐거운 정치축제가 되기를 아주 일찍부터 소망했던 내 절절한 마음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지난 1988년 여름 고장의 문예지 <흙빛문학> 제8집에 발표했던 단편소설 <인형들의 합창>을 실로 오랜만에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그 소설의 앞에는 다음과 같은 '작가의 말'이 달려 있었다.

오래전에 쓴 소설을 다시 읽어보다

"(전략) 몹시 고심하던 끝에 재고작품들 중에서 <인형들의 합창>을 택하여 정리를 하였다. 이 작품은 69년 2월에 쓴 것으로 원고 말미에 기록이 되어 있다. 군에 입대하던 해로 기억된다.

내가 20년 전에 쓴 날 비린내를 풍기는 작품을 굳이 택하여 이번에 발표하는 것에는 각별한 이유가 있다.

지금은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시점이다. 개표 완료된 상황을 보며 여러 가지 감회를 갖는다. 선거기간 동안 온갖 부정과 불법이 난무하고 혼탁이 극에 달했음을 돌이켜보게 된다. 왜 명랑하고 즐거운 선거 분위기를 갖지 못하는가? 왜 공명의 선거풍토를 만들지 못하는가? 발전의 반대개념인 퇴보의 실체를 확인하며, 비애의 심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인형들의 합창>은 저 타락선거·부정선거의 극치로 일컬어지는 1967년의 6·8선거(제7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실상을, 그것의 한 부분을 조명하고 풍자한 소설이다. 6·8선거를 청소년의 눈으로 지켜보며 가졌던 슬픔과 분노가 흥분과 과장 없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흥미로움이 있을 것이다. 20년 전 선거와 오늘날 선거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 공통분모의 확대발전이 안겨주는 비애…. 그런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20년 전에 쓴 이 작품이 내겐 소중하게 느껴진다.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이 시점과 연관되는 내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감히 이 미숙한 작품을 발표한다."


금권선거와 관권선거의 실상을 보여준 소설

▲ '부정선거'를 보도한 <동아일보> 67년 6월 9일자 1면 기사
ⓒ 동아일보
소설은 금권선거와 관권선거의 결정판인 67년 6·8선거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6·8선거의 풍경을 내 육안으로 목격한 때로부터 2년 후인 69년 2월에 나는 이 소설을 썼다. 내 나름껏 '시대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이 소설에서, 타락선거의 구체적인 실상 속에서 집요하게 추적한 핵심적인 사항은 인간 양심의 왜곡 현상이었다. 인간의 양심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모되고, 그 변모와 변질을 스스로 어떻게 합리화할 수 있는가를 해학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것이었다.

'당신'이라는 이인칭으로 표기되는 주인공은 순박한 농민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닌 한 표의 신성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 한 표를 음식이나 금품을 받고 팔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어떤 후보가 가장 훌륭하고 적합한 인물인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관권을 동원하고 금품을 풀어 표를 사려는 후보는 결코 옳은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음식 대접이나 금품을 받고 표를 파는 것은 국민으로서 양심을 저버리는 짓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그는 이미 집권여당인 민주공화당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관권을 등에 업고 엄청난 금력을 동원하여 선거를 치르는 민주공화당 후보는 국민들의 양심을 해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돈이 없는 사람으로 알려진 젊은 야당 후보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은 다른 각도의 양심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민주공화당 운동원으로부터 남몰래 고무신을 받고 500원이 든 봉투까지 받은 부인은 그런 것을 받고도 표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양심을 저버리는 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네 이장의 권유로 민주공화당 후보의 유세장에 갔다가 막걸리와 돼지고기를 포식하고 집에 온 주인공은 아내와 잠시 논쟁을 벌인다. 처음에는 음식 대접과 금품을 받고 표를 파는 것은 국민의 양심을 저버리는 짓이라는 태도를 유지했지만, 선물을 받고도 표를 주지 않는 것이야말로 양심을 저버리는 짓이라는 아내의 논리에 밀리고 만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어야 하고, 받은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요 올바른 처신이라는 아내의 주장은 정말이지 세상 이치에 부합하는 지당한 말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민주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주고 만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 한다?

선거는 예상대로 민주공화당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것은 우리 지역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그 6·8선거에서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주공화당은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같은 해 5월 3일에 실시되었던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현직 대통령이라는 유리한 조건에서도 신민당의 윤보선 후보를 어렵게 이겼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의외의 결과였다.

그런데 67년의 그 6·8선거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타락선거였다. 세상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촉감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라면 선거의 혼탁상을 피부로 느끼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곧 국민들의 항의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상황을 내 소설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런데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대패를 한 야당권 사람들과 경향 각지의 많은 대학교, 심지어 고등학교들에서까지 학생들이 분연히 궐기하여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소리들을 당신은 들었다. 젊은 학생들, 어린 학생들까지 온몸으로 부르짖는 그 규탄의 소리들을 당신은 남의 입을 통해서나마 명확히 들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번 선거는 엄청난 부정선거였다. 이번 선거가 사상 유례없는 공명선거라고 저들은 큰소리치지만, 오히려 사상 유례없는 부정선거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정선거를 완전 무효화, 백지화하고 공명선거 다시 하라!

―이번 선거는 완전 무효다!

―우리는 양심과 지각이 있는 전 국민의 선봉에 서서 이번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결사적으로 무효화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이렇게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면서 학생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러다가 그들은 진압경찰관들의 방망이에 난타 당하여 머리통이 깨지기도 하고, 최루탄 가스에 쫓겨 눈물을 쏟으며 달아나기도 하고, 형사들에게 팔이 꺾인 채 끌려가서 유치장에 처박히기도 했다.

반대로 순경이 학생들에게 붙잡혀서 몹시 얻어맞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떤 순경은 눈알이 빠져나오는 일도 발생했다.

온 나라가 지극히 소란스러운 상태였다. 그 시끌시끌한 사태는 연일 계속되며 매일같이 신문지상을 뒤덮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이 나라 대한민국의 국위를 크게 손상시키는 일이었다.》


내가 이른바 '6·8선거'라고 지칭되는 1967년의 제7대 총선 풍경을 목도하고 1969년 <인형들의 합창>이라는 소설을 쓴 때로부터 어언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선거제도와 선거풍경이며 국민들의 의식 따위가 판이하게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세월을 살아오면서 선거문화의 답보나 퇴보 현상을 느끼고 목도할 때마다 67년의 6·8선거 풍경을 떠올리곤 했다. 6·8선거 직후 전국 각지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던 부정선거 규탄시위도 떠올리면서 으레 아프게 갖는 의문이 있었다. 그때의 그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기에 우리의 선거문화는 발전을 하지 못하는 걸까?

67년 6·8선거 당시에 내 부모님이 나눴던 대화 한 토막도 기억한다. 그것은 조금은 즐거운 기억이기도 하다.

"고무신을 받은 사람두 쌨구 돈봉투를 받은 사람두 많은 것 같던디, 왜 우리헌테는 아무것두 읎대요?"

"우리 집은 아예 츰부터 옆으루 치워놓은 모앵인디, 차라리 잘됐지 뭐. 양심 불편헐 일두 읎겄다…. 안 그려?"

그때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그 '양심'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에 묘한 파장을 일으켰던 것 같다. 그래서 6·8선거의 실상 속에서 사람 양심의 변모 과정과 왜곡 현상을 추적해 보는 소설을 훗날 쓰게 되었는지도….

양심의 묘한 왜곡 현상이 오늘날에도 우리 삶 속에 존재하지는 않을까 생각을 해보곤 한다. 만약 그것이 아직도 우리의 삶 안에 존재한다면, 요즘 같은 선거 풍경 속에서는 어떤 양상으로, 또는 어떤 맥락으로 나타나게 될까?

도둑을 고마워 하는 사람들

엊그제(6일) 동생이 와서 내 몸에 지압을 해주었다. 지압을 하면서 동생은 말했다.

"과거 박정희헌티 목숨을 잃은 사람들, 고통을 당헌 사람들이 숱허게 많은디, 그 사람들의 눈물이 아직 마르지두 않었는디, 그걸 생각 뭇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유."

어제 오전에 성당으로 신부님을 모시러 갔을 때 나는 최덕렬 사무장에게 전날 저녁 동생에게서 들은 그 말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최 사무장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 아니래요? 자기가 당허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 사항도 아니지요, 뭐."

일일이 신자 가정을 방문하면서 판공성사를 주시는 신부님을 하루종일 배행했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 신부님께도 전날 저녁 동생에게서 들은 그 얘기를 했다. 그러자 신부님이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어느 도둑이 도둑질을 해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칩시다. 그 가난한 사람들은 도둑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요? 도둑은 그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은인이 되는 거지요. 가난한 사람들은 그 도둑의 부당한 행위는 아예 문제삼지도 않고, 오히려 고마운 마음만 갖게 되지요. 그것이 묘한 정리로 발전하기도 하고…."

신부님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불현듯 37년 전의 6·8선거 풍경을 떠올렸다. 내가 소설로 구체적으로 그려냈던 상황―음식 대접과 금품을 받은 답례로, 즉 왜곡된 양심의 작용으로 타락선거의 주범인 민주공화당의 후보에게 표를 주고 마는 그 농민 부부의 모습이 오늘의 묘한 맥락 속에서 희뿌옇게 떠오르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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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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