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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6월 지역투어 첫 행선지는 제주도였습니다. 바람 부는 제주는 돌도 많고 여자도 많다는데, 진짜일까요? 여러분이 몰랐던 진짜 제주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편집자말>

벌써 4년째다. 2007년 9월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초등학교에서 열린 올레 1코스 개장식 이후 현재까지 제주도를 빙 두른 18개 코스와 중산간을 치고 빠져나오는 알파코스 5개를 포함해 23개의 코스를 걸쳐 무려 372km의 길을 냈다. 한마디로 '제주의 재발견'이다.

 

제주올레의 선풍적 인기는 '올레폐인' '올레족' '올레 장기수' 등 각종 유행어와 신조어를 낳았다. 그만큼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에게 올레는 힘이 든 만큼 보람도 큰 일이었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길에서 위로를 찾았고 매혹을 느꼈다. 말 그대로 '조용한 혁명'이었다.

 

유무형의 경제 효과까지 더해지며 7부 능선을 넘었다는 제주올레길 개척. '느림'을 강조했지만 정작 서명숙 이사장 자신은 '속도'에 떠밀려 영혼조차 쉴 새 없이 바쁜 나날이 한동안 지속됐다. 스스로에게 잠시나마 쉼을 주어야 했다. 모든 공식 행사를 차단했다. 올해는 어떤 언론과도 인터뷰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몸 담았던 친정(서 이사장은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본부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의 인터뷰 요청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인터뷰 내내 약속을 어긴 데 대해 부담스러워했지만 역시 그는 '끼' 있는 여자였다.

 

"올레 용어집을 따로 만들어야 할 판이에요. 자연에 중독이 되는 올레뽕을 맞으면 올레폐인이 되고 결국 제주로 올레이민 오게 된다나, 어쨌다나…."

 

거침없는 이야기는 올레코스마다 스토리텔링이 됐다. 덕분에 올레 개장 이듬해 펴낸 <제주걷기여행-놀멍 쉬멍 걸으멍>(북하우스·2008년)은 벌써 3만부가 팔렸다. 여행서만 보면 '한비야'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입소문이 날 정도다. 이어서 펴낸 올레꾼들과 올레를 만든 사람들 이야기를 그려 낸 <꼬닥꼬닥 걷는 이 길처럼>(북하우스·2010년)은 몸으로 쓴 책이다. 그만큼 애정도 깊다. 

 

쭉쭉 뻗는 올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제주올레의 이름만 본뜬 '전국 올레' 사업이 줄을 잇고 결국 신종 토건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묻지마 관광'처럼 몰려드는 '단체 올레탐방'도 특정 코스에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썩 달갑지 않다.

 

기자에서 작가, 그리고 오는 11월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무대에 오를 연극배우 조연까지. 일생에서 하고 싶은 세 가지 꿈을 모두 이뤘다고 말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54). 치유의 길 올레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올레에 몰리는 사람들, 그만큼 한국 사회가 힘겹다는 반증"

 

-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그 열정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다고 보나?

"체험에서 비롯됐을 거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배터리가 방전됐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어떤 친구도 줄 수 없는 위로를 길에서 받았다. 비로소 치유되지 않은 일 중독자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중독은 다르다. 중독은 일종의 병이다. 스트레스에서 모두 벗어날 수 있을 만큼 길은 매혹적이었다. 헬스 클럽 러닝머신에서 걸었다면 몰입하지 못했을 거다. 자연에서 걷는 길이었기에 가능했다.

 

걷다보니 더 걷고 싶어졌고, 길게 걷고 싶어졌다.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막 관둘  때 쯤 산티아고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1박 2일만 걸어도 행복하고 좋은데 한 달 내내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산티아고에 갈 수만 있다면'하고 생각했다. 결국 뜻을 저버리고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본부장으로 와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며 힘을 내봤지만 2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1년 동안은 재밌었다. 하지만 더 이상 언론은 내 가슴을 뛰게 하지 못했다. 길에서 내가 너무 행복했기에 한국에 길을 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도 길에서 행복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혜 경관을 지닌 제주에 길이 생긴다면 분명 세계적인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곧 열정이었다."

 

- 올레가 이렇게 유명해질 거라 예상했나?

"언젠가 널리 알려질 날이 올 거라 생각했지만 그날이 이처럼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제주에는 워낙 뛰어난 장점이 많았다. 비록 예전에 걸은 길이었지만 이 길을 잇는다면 세계인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10년이 걸릴지 30년이 걸릴지, 심지어 죽은 다음에 될지…. 한국에서 길이 자리잡으려면 적어도 10~20년이 걸릴 줄 알았다.

 

실제 제주관광업계 반응은 대부분 마뜩잖았다. '길을 걸으러 제주에 오겠나' '너무 빨리 시작했다' '걷기 위해 여행을 하는 건 괜한 고생이다' 등. 자동차를 버리고 걷는 건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한국은 아직 2만 달러라는 거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처음에 적을 수 있지만 언젠가 차근차근 걸으러 올 거다, 나도 외국에 걸으러 가지 않았나. 한국의 국민소득은 2만 달러지만, 스트레스 수준은 5만 달러다. 압축적인 고도성장과 경쟁으로 인해 반드시 길에서 위로받고 길에서 생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들은 이론의 틀에서는 맞을지 모르지만 한국 사회가 굉장히 역동적이라는 걸 간과했다."

 

- 제주올레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생각은 하지 않나?

"왜 아닌가. 지나치게 빠르다. 한국 사회가 굉장히 힘겨운 사회라는 반증이다. 물론 언론에서 쌓은 경험이 네트워크가 됐고, 나를 적극 지지해주는 '십자매'(열명의 지인들)가 길을 내도록 추동했다. 방송에서, 사석에서, 글을 통해서 알렸다. 하지만 일단 알리고 나자 올레꾼들이 입소문을 내고 블로그, 트위터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한 통계조사에서 97%가 재방문의사를 밝힐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한국이 원시적이고 공격적이고 빠른 문화인데, 모처럼 느리게 되돌아보고 자연과 길게 대화할 수 있는 체험들이 자발적인 홍보대사들을 만들었다."

 

- 하지만 속도가 낳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을 텐데.

"가끔 부작용에 대해 얘기하면 조금은 섭섭하고 당혹스럽다. 솔직히 난 길을 낸 것밖에 없다. 돈을 들여서 한 것도 아니고 오라고 강제한 적도 없다. 피난처 없는 우리 사회가 피난처를 발견하고 언론에 노출되다 보니 순간 집중화 현상을 보인 것일 뿐. 사실 언론도 알리는 측면에서 초반에만 홍보했다. 그런데도 너무 과도하게 속도를 냈다고 하더라.

 

혹자는 너무 많은 코스를 냈다고 하는데, 그것은 분산하려 했기 때문이다. 두 세 코스로는 집중화를 감당하지 못해 언제 폐쇄해야 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마음이 급했던 이유는 급속하게 지형 지물이 변했기 때문이다. 1년에 2~3번 제주를 찾을 때마다 새로운 아스팔트 길이 뚫려 있고, 아름다운 섭지코지에 대형 콘도가 들어섰다. 걷는 길을 낼 수 있는 여건이 점점 좁아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길을 빨리 내야겠다는 마음을 재촉했다.

 

일부 코스는 자연에 약간의 부담도 주었겠지만, 장차 올레 코스가 될 것이라고 하면 무차별 개발을 막는데 도움이 됐다고 본다. 모든 게 양면성이 있겠지만 엄청난 속도의 개발을 주춤하게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지역 주민들이 풍광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외지인과 소통하고, 길 하나만 갖고도 먹고 살수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할머니는 올레꾼을 보고 얘기를 나누는 게 하루의 낙이라고 할 정도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100% 완벽했다고 할 수 없지만 큰 틀에서는 그런 부작용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마을에 수혜가 돌아가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점은 분명히 올레의 성과다."

 

▲ 서명숙 "제주올레길, 꼭 한번 걸으러 옵서예"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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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발견할 때 언론사 특종보다 더 기뻐"

 

- 올레를 지원하는 행정이 올레의 정신과 어긋나지는 않나?

"올레를 담당하는 부서는 '올레 마인드'가 돼 있다. 그런데 담당부서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전담부서라 해도 서귀포시 2~3명, 제주도청 1명 정도다. 전 공무원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 한 어렵다. 이는 주민자치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사실 올레에 무슨 정자가 필요있나. 꼭 필요하다면 작은 화장실과 벤치 정도다. 이미 제주관광지에는 편의시설이 다 돼 있다. 200~300명이 다녀도 벤치 2개면 된다. 한꺼번에 오는 게 아닌데다, 제주에는 돌이 많아 가는 곳마다 돌에 앉아 쉬면 된다.

 

그런데도 엄청난 나무 데크 시설을 하더라, 스위스에서 한달을 돌아다녔지만 데크 시설을 본 적이 없다. 시골 농로도 포장하는 법이 없더라. 그 나라가 돈이 없어서 하지 않았겠나? 대한민국 특히 제주도는 하루에 한두 명도 지나지 않는 동네 안길까지 반듯하게 포장을 한다. 이는 토목 공화국의 현실에서 표의 역학 관계 때문이라고 본다. 토목예산이 가장 많이 편성되고 통과도 잘 된다. 단체장에겐 '표'가 되고 주민들도 좋아한다.

 

길 찾을 때 가장 어려운 점은 행정의 간섭은 둘째치고 너무 많은 도로를 포장했다는 점이다. 필요 이상으로 콘크리트를 많이 했다. 제주도가 경관은 가장 좋지만 전국에서 도로포장율이 가장 높다. 포장도로를 걷는 것만큼 힘든 게 없다. 그래서 올레길을 내는데 제1원칙은 '안티 공구리'다. 제2, 제3원칙도 포장도로를 지나지 않고 차소리를 덜 듣게 하겠다는 '안티 공구리' 원칙을 세웠다. 그래도 크든 작든 50~60%의 포장도로를 지난다. 실제 포장길이 아닌 길은 수 십 번 발품을 팔아서 찾은 길이다. 이런 길을 찾았을 때는 언론사 특종 한 것보다 기뻤다. 발견의 기쁨이랄까."

 

- 제주올레가 뜨면서 이곳 저곳 청탁(?)과 제안이 많았을 것 같다.

"수없이 왔지만 단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다. 어떤 관광회사와 여행사와도 거래가 없었다. 길을 내고 정보를 줬을 뿐이다. 길을 상품으로 판 적도 없고 상업 행사를 한 적도 없다고 자부한다. 단 한번 장애인 행사를 공동 주최했고 소년 소녀 가장들과 같이 걸은 게 전부다.

 

지금도 끊임없이 제안이 들어온다. 한번은 돌하르방을 만드시는 분이 올레길에 상징인 돌하르방을 1km마다 세워 놓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올레길 지천에 깔린 게 돌인데 뭐하러 하느냐고 했다. 알고 보니 제주도청에 낸 사업 제안이었다.

 

사실 올레 업무는 공무원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일만 늘고 토목공사에서 생기는 예산은 없기 때문이다. 일전에 도지사가 올레 전담부서를 맡기려는데 모두 맡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11명의 식구들이 있는 올레 사무국이 얼마나 까칠한지 잘 안다. 받는 게 없으니 오히려 공무원에게 잔소리를 할 정도다.

 

지난해 서귀포시에서 10억의 예산을 배정했지만 올레 사무국엔 단 한 푼도 들어오지 않았다. 화장실 및 간이쉼터 8곳, 올레 안내소 5곳, 올레 아카데미 강좌, 할망(할머니) 민박 12곳 등 지원 사업이 전부였다.

 

예산지원은 3년 동안 코스 하나씩 낼 때마다 900만 원씩 지원 받는 게 전부다. 길을 낼 때마다 10명이 넘는 인력이 '손 공사'를 해야만 한다. 인건비를 비롯해 한 달 동안 현장에서 자고 머물며 생활하는 탐사대원 비용으로 400만 원, 사진 찍고 측량하고 팸플릿 만드는 비용으로 500만 원 정도 든다.

 

- 올레의 집중화에 따른 훼손 문제도 여전히 거론된다.

"올레길이 워낙 길기도 하지만 엄청난 생태공간을 지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대부분 마을길, 해안길이다. 예민한 구간은 극히 일부다. 유독 7코스가 집중화가 심해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는데 그만큼 7코스에 대한 고민도 많다. 7코스는 대형 주차공간이 있다 보니 한꺼번에 올레객이 몰린다. 10코스도 마찬가지다. 화순해수욕장을 끼고 있어 대형 관광버스가 한꺼번에 찾는 문제가 있다. 사람이 북적이면 아무래도 감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인원을 통제할 수도 없고. 길을 보호하고 지킨다는 마음으로 코스 분산을 유도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단체 방문 열풍이 지나가길 바랄뿐이다. 앞으로 2~3년 정도면 단체 열풍이 사그라지지 않을까.

 

 

"올레 열풍이 신종 토목사업으로 변질돼 걱정"

 

- 올레 열풍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우려점은 없나.

"최근엔 올레를 벤치 마킹한다고 2~3년 새에 전국적으로 지자체마다 길을 내는 데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한마디로 신종 토목사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작년에 국회 행정안전부 예산심사 공무원에게 전화가 왔는데 코스당 얼마에 길을 내느냐고 묻더라. 그 공무원 말이 모 단체에서 책정한 예산만 km당 7억 5천만 원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으려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제주 올레는 3년 동안 코스 하나씩 낼 때마다 900만 원씩 지원 받는 게 전부다 

 

물론 제주에만 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주에서 아버지 고향인 함경남도 무산까지 길이 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안고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산이 많으면 이상한 길이 될 수밖에 없다. 토목사업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 앞으로 제주올레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 있다면?

"일단 해안 위주로 제주 길을 모두 잇는 것이다.  또 주민들이 스스로 노력하거나 역사문화생태 요소가 많은 마을은 적극 지원할 것이다. 하지만 길이 사라진 곳은 내려고 해도 낼 수가 없다. 오롯이 옛길이 살아있는 구간이 있다면 협력해 발굴해 나갈 것이다."

 

- 한라산 둘레길에 대해서도 훼손 우려 등 말이 많다.

"산림청과 환경부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사)숲길에서 숲길 조성사업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둘레길 사업이다. (사)제주올레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한라산 둘레길이 모두 그렇다. 원래 도법스님 일행이 전국 생명평화순례를 한 데서 착안해 정부부처와 환경단체가 아이디어를 모아 길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하나씩 진행해 오는 정부와 NGO 협력 사업이다. 올레가 길 내는 방식과는 다르다."

 

-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건설문제로 시끄럽다. 마음이 편치 않을 듯 싶다.

"당연히 강정마을 중덕 해안길은 계속 지켜져야 한다. 해군기지 문제가 한창 불거졌을 때 마을에서 '중덕해안을 지나가 달라'고 길을 내주길 원해서 그렇게 올레길을 냈다. 원래는 해군기지 건설부지 일대에 전혀 길이 없어 마을 안길로 지나기로 했던 거다. 수많은 올레꾼들이 강정 코스를 지날 때마다 해군기지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제주올레를 방문한 전국의 올레꾼 3745명과 함께 '아름다운 제주올레 7코스 강정의 구럼비 바다는 영원히 지켜져야 한다'는 올레꾼 선언을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주민들이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사단법인 올레)도 포기하지 않는다."

 

"언론인 생활, 원없이 하고 여한없이 이뤘고 할 만큼 했다"

 

- '강철' 서명숙 뒤에 '인간' 서명숙이 있을 것 같다. 가정에선 한 아이의 엄마일 텐데.

"기본적으로 모성애 희박증 환자인 것 같다.(웃음) 물론 자식을 사랑하고 관심이 있지만 이로 인해 애면글면하면서 마음 졸이며 자식을 봐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 어머니는 옛날에 어렵게 장사를 했지만 식구 모두 스스로 알아서(?) 잘 컸지 않나. 저와 아빠 모두 둘 다 사회 일을 좋아해서 큰 마찰은 없었지만 큰 아들이 한창 자랄 때 조금은 챙겼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초등시절까지 그렇게 책도 많이 읽고 똘똘했던 애였는데, 민감한 중고교를 거치면서 곁에 있을 시간이 없었다. 현재 사회적 성년인 스믈 여섯 살인데도 앞가림을 못하는 것 같아 그런 점에서 안타까움이 많다. 직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한쪽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 현실속에서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그래도 요즘 큰 애가 엄마하고 살면서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기쁘다. 요리해주는 걸 참 즐거워한다. 엄마로서 참 다행이다 싶다."

 

- 일 중독에서 해방을 꿈꿨는데 막상 현실은 어떤가. 일생의 모든 일을 책을 통해 이뤘다고 할 정도로 독서광이라는데 정작 책 읽을 시간은 있나?

"책 읽는 시간은 절대적이다. 어떤 외부행사에도 참석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바쁘긴 하지만 스스로 너무 바쁘게 살지 않는다. 23년간 언론인 생활을 하며 뼈저린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내 시간은 스스로 통제한다. 명함도 갖고 다니지 않고, 전화번호도 웬만한 지인 아니면 공개하지 않는다. 특강도 월 2회 이상 하지 않겠다는 원칙도 세웠다.

 

대략 일주일에 2~3권 정도 읽는 것 같다. 비행기 탈 때 이동 중에 등 틈새 시간이 많다. 시간 관리의 방식은 동창회 불참, 심지어 욕을 듣더라도 친인척 경조사까지 찾아가지 않는데 있다. 관청이 주관하는 행사 역시 전혀 가지 않는다. 정치할 것도 아닌데…."

 

- 23년간 질리도록 언론인 생활을 했다지만 언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을 것 같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직업적인 관심은 없다. 장작불 태우듯 원없이 하고 여한 없이 이뤘고, 할 만큼 했다. 인생의 한 페이지로 지나간 앨범 속 과거일 뿐이다. 다만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언론보도에 관심이 있다. 예전엔 민주화라는 단순 사안이었다면 지금은 정책 사안이 많아지면서 훨씬 다양해졌다. 신 계급 사회와 빈부 격차, 전문성이 필요한 정책 등 너무 다양해 요즘 언론인들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기자가 아닌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웃음)."

 

- 지역 언론에 한마디 한다면.

"이미 쟁점이 된 사안은 열심히 하는데, 예방 차원의 문제 제기가 전혀 안 돼 아쉬울 때가 많다. 그러면 중계식 보도나 사후 약방문식 보도밖에 안된다. 특히 제주지역은 수백 억, 수 천 억원의 개발사업이 여기저기서 벌어지는데 왜 방관하는지 모르겠다. 제주야말로 딥-리포트(Deep Report)와 기획 취재가 가능한 대형 프로젝트 사업들이 수없이 벌어진다. 외자유치 보도는 중계 보도밖에 없다. 외자유치의 함정도 많고 심각한 경관 파괴와 환경 파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선지적이고 예방적인 문제제기성 보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정치는 지혜와 실행력을 겸비한 철학자라는 말도 있다. 정치에 대한 생각은?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다. 혹자는 정치인을 사기꾼 직업이라고 하고, 사회적 이상을 구현하는 직업이라고도 하는데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철학을 가진 정치인도 있고 모리배 같은 정치인도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변하지 않는 정치적 속성이 있다고 본다. 싫든 좋든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제정구 의원 같이 독특한 체취를 풍긴 정치인도 있지만 대부분 정치의 메커니즘을 따라가는 것 같다. 제 자신만 본다면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는 성격이어서 일단 회의를 싫어한다. 스스로 열정에 따라서 움직이다 보니 누구랑 의논하고 몇 시간 동안 인내심 갖다 한마디 하고, 내키지 않는 자리를 참는 그런 성격이 못된다. 지금도 밥을 먹기 싫은 사람하고는 절대 먹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권에 가게 되면 분명 불행감을 느낄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불행을 느끼는 뻔한 직업인데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생각은 없다. 길에서 얻는 보람으로도 충분하다. 좋아하는 일로서도 충분히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데 왜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하나."

 


태그:#올레, #강정마을,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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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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