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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완공된 동대문 아파트, 당시 연예인들이 많이 살아 연예인 아파트로도 불렸다.
 1965년 완공된 동대문 아파트, 당시 연예인들이 많이 살아 연예인 아파트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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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6호선 동묘역 7번 출구에서 약수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높이 솟은 빌딩 숲 사이로 7층의 허름한 아파트 하나가 눈에 띈다. 이 건물의 명칭은 동대문 아파트. 60∼70년대에 연예인들이 많이 살았기에 속칭 연예인 아파트로도 불리고 있다.

1965년 대한주택공사에서 131세대 ㄷ자 중정형(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으로 지은 후 고급 아파트로 불린 동대문 아파트의 과거는 화려했다. 서울에서 (7층 규모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아파트 중 하나라는 사실은 40년 넘는 세월과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과거의 고급 아파트는 오늘날의 초저가 아파트로 전락했다. 재건축이다, 재개발이다 하는 소문이 돌 만큼 종로구 창신동의 낙후된 건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외형만이 아니라 입주민들의 모습도 바뀌었다. 부자는 떠나고 영세한 이들이 그 빈 자리를 메웠다. 이제 이들이 숨죽이고 하루하루를 사는 치열한 삶의 터전으로 변한 것이다. 2008년 11월 26일, 동대문 아파트 입주민들은 단수 위기와 화재 위험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마땅한 대안은 찾을 수 없는 현장을 찾았다.

서울에 이런 곳이? 붕괴 위기 넘긴 동대문 아파트

동대문 아파트 출입문
 동대문 아파트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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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아파트'라고 큼직하게 써진 나무 현판을 뒤로하고 건물의 출입문 안으로 들어갔다. ㄷ자 형으로 펼쳐진 아파트 동과 동 그리고 그 사이 7층 아파트의 중정은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구조라 낯선 이국의 풍경을 연상케 했다. 다닥다닥 조잡하게 밀집되어 금방이라도 붕괴할 것 같던 홍콩의 카오룽 아파트 단지가 떠올랐다. 

홍콩의 밀집 아파트 단지는 이제 사라진 유적이 되었지만 2008년 11월의 동대문 아파트는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창신 1동 마을 통장을 지냈다는 A씨는 동대문 아파트의 화려한 과거에 대해 들려주었다.

"옛날에는 이곳이 둘도 없는 부자 아파트였다. 40년도 전인 1960년대 일이다. 동대문 아파트는 연예인 계수남씨를 비롯해서 많은 연예인이 살았던 곳으로 유명했다."

동대문 아파트는 곳곳에 균열이 있었다.
 동대문 아파트는 곳곳에 균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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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찾기 힘든 헐값 아파트가 40년 전에는 고급 부자 아파트였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엄연한 사실인 것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12월 현재, 재건축에 대한 기대 심리가 작용한 동대문 아파트 매매가는 2억1천~3천만원 사이의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 거래는 부동산 침체로 인해 매도 주문만 있고 매수 움직임은 아예 없다고 인근 부동산 관계자가 귀띔했다.

그와 반대로 이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는 많은 수 영세민들의 임대 거래는 활발했다. 임대 가격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29.75m², 약 9평)정도였다. 이는 창신동 근처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헐값이었다. 낡고 노후화된 9평짜리 방이지만 영세민들 입장에서는 서울에서 찾아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싼 방이었기 때문에 거래가 많았다. 지금 동대문 아파트에 거주한 대부분의 입주민들은 값싼 가격으로 임대를 얻어 입주한 영세민들이었다.

아파트 한쪽 벽에는 종로구청 주택과에서 남긴 안내문이 있었다. 건물 보수공사를 종로구청과 후원 기업에서 맡아서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건물 세대주들이 해야 하는 보수공사를 구청과 기업이 한다는 사실은 좀 의아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종로구청에 문의를 했더니 주택과 공무원인 왕승찬(38)씨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동대문 아파트는 1993년 위험시설물 C등급을(조속한 보수가 필요한 상태) 받은 이후 그 뒤로도 계속 중정 굴뚝 부분이 전도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입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영세한 분들이라 마땅한 대책을 마련할 수 없었다. 구청에서 법적인 문제로 직접 공사를 할 수는 없었고 결국 후원 기업을 찾아서 이렇게 보강공사를 하게 되었다. 아마도 유례가 없던 프로젝트일 것이다."

오래된 동대문 아파트 보강 공사를 무상으로 해주겠다는 업체는 많지 않았다. 위험할 뿐더러, 붕괴되면 모든 책임을 업체가 고스란히 떠맡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뜻이 통하는 기업 2~3군데와 함께 1540여만원을 들여 동대문 아파트 보강 공사를 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아파트 붕괴라는 당장의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곳

동대문 아파트에서 본 연탄재. 아직도 동대문 아파트 입주민들 중 일부는 연탄을 쓴다
 동대문 아파트에서 본 연탄재. 아직도 동대문 아파트 입주민들 중 일부는 연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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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ㄷ자 동과 동 사이에 걸려있는 빨래감들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동대문 ㄷ자 동과 동 사이에 걸려있는 빨래감들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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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겨울을 맞은 서울 날씨는 찼다. 하지만 ㄷ자형 동대문 아파트의 건물 안은 유난히 더 춥게 느껴졌다. 각 세대 출입문 바깥으로 설치된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탄을 사용하는 입주민들도 있었다. 아파트 사이의 마당에 듬성듬성 버려진 살구색 연탄재는 온기의 배설물 같아 보였다.

아파트 중정을 걷다 특이한 구조의 현관을 발견했다. 비닐로 출입구를 만든 곳이었다. 행여나 문이 부서질까 '문살짝'이라고 써진 팻말을 보며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졌다. 곳곳에 버려지고 방치된 물건들, 장독대·버려진 자전거·말린 생선·바람 빠진 농구공·고장난 냉장고 등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질서없이 놓여 있었다. 치열하게 사는 모습이라 미루어 짐작했다.

이곳저곳을 촬영하는 기자에게 30대 초반의 한 여성 입주민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예상외의 말을 건넸다. 굴러 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진 좀 찍어 줄 수 있냐고 부탁을 한 것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승낙을 하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내겐 별것 아닌 일이 그 입주민에게는 꽤 중요했던 일이었나 보다. 손에는 찬송가를 쥐고 해맑게 웃던 그 입주민의 모습이 좀처럼 머릿 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찍은 사진을 보내 주겠다고 이메일 주소를 불러 달라고 하자 컴퓨터는 물론 이메일도 없다는 그에게 정말 난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동대문 아파트는 그런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가난했을지언정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사람들의 터전. 하지만 입주민들은 단수 위기와 화재 위험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영세한 입주민들, 단수 위기에 몰리다

▲ 동대문 아파트 단수 위기, 소방 시설 노후화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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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아파트 한 벽면에 붙은 단수를 알리는 경고장이 눈에 띄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1414만원이 체납되어 단수 처분 경고가 내려져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관리 사무소를 찾아보았지만 관리자는 찾을 수 없었다.

한 달에 50만원 받으며 일하는 40년 된 관리자 할아버지가 한 분 있다고 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관리사무소에는(사무소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했지만) 흔한 전화기도 연락처도 없었다. 결국 단수 경고장을 붙인 중부수도사업소에 문의했다. 관계자는
"동대문 아파트는 27일 현재까지 1414만원이 체납되었다. 곧 단수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줬다.

동대문 아파트 단수 경고를 알리는 경고장
 동대문 아파트 단수 경고를 알리는 경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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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요금을 납부하지 못한 동대문 아파트 입주민들은 곧 시행될 단수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3층에 사는 주부 B씨도 발을 동동 굴렀다.

"경고장이 나온 게 사실이냐?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작년에도 단수가 되어서 사흘 동안 다른 곳에서 물을 길어다 썼는데 정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번 단수는 게다가 겨울이지 않은가? 이 추운 날에 단수가 될까 걱정이다."

동대문 아파트 입주민들은 2007년에도 수도 요금 1300여 만원을 체납해 단수를 겪은바 있다. 당시 동대문 아파트 입주민들의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외부에서 물을 길어다가 사용해야 했기에 목욕 등의 기본적인 생활마저 제약을 받았다. 그 끔찍한 상황이 2008년 12월 추운 겨울에 재현되려 하고 있었다.

입주민들은 수도요금이 체납된 이유에 대해 말했다. 다른 곳으로 떠난 사람들이 제대로 수도비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도 돈이 부족하다 보니깐 제대로 값을 치르지 않고 줄행랑 치는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창신1동 마을 통장을 지낸 A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전기 요금 같은 것은 각 세대마다 계량기가 있기 때문에 각자 내면 되는데, 수도 요금은 아파트 자체로 계량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밀리고 못 내다 보니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다. 주민들끼리 1400만원을 모아야 하는데 어려운 경제 환경의 사람들이 많아 쉽지 않다."

입주민들은 단수가 되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방을 동동 굴리고 있었지만 당장은 속 시원한 대안이 없었다. 입주민들 상당수가 영세했기 때문에 체납된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에게 지금 1414만원은 어떤 것보다도 무거운 마음의 짐이 되고 있었다.

80년대에서 멈춘 소방 안전, 입주민들이 위험하다

동대문 아파트의 소화기는 80년대 소화기가 대부분이라 성능이 의심스러웠고 소화전은 잡동사니 물건에 가려 신속히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동대문 아파트의 소화기는 80년대 소화기가 대부분이라 성능이 의심스러웠고 소화전은 잡동사니 물건에 가려 신속히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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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아파트 출입로 곳곳에는 사용중인 LPG 가스통과 버려진 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특히 좁은 이동 통로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LPG 가스통은 위험해 보였다.

이런 LPG 가스통은 아파트 전체에 대략 50~60여개. 화재라도 난다면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불에 타기 쉬운 소파나 의자 등의 물건을 밖에 산더미처럼 모아놓은 것도 우려할 만한 일이었다. 

화재 발생 시,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선 신속한 화재 진압이 필수적이지만 동대문 아파트의 소방 안전 관리는 부실했다. 소화전은 앞에 잔뜩 쌓인 잡동사니들로 인해 신속히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어 보였다.

먼지가 잔뜩 쌓인 80년대 소화기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먼지가 잔뜩 쌓인 80년대 소화기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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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를 돌며 소화기 제작 연도를 확인해 보았다. 각 층마다 2개씩 배치되어 있다는 소화기 중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단 7개, 나머지 소화기들은 찾을 수 없는 곳에 있거나 아예 없었다.

소화기 7개 가운데 1989년에 제작된 소화기가 3개, 82년, 87년, 88년 제작된 소화기 1개 씩이었다. 2000년대 소화기도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가장 눈에 잘 띄는 1층에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소화기는 수북이 먼지가 쌓여 있었고 이리저리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소화기가 제 기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었다. 창신동 지역 동대문 아파트 담당 소방서인 종로소방서 예방과 관계자에게 아파트 시설물 안전 관리에 대해 문의했다. 동대문 아파트의 소화기와 소화전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

"소화기가 각 세대마다 1개, 그리고 복도 20미터마다 배치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배치된 소화기의 수명 기한은 딱히 없다. 하지만 20년이 넘었다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소화전이 다른 물건들로 막혀 있다면 화재시 1분 1초가 급할 때 대형 참사로 번질 수 있다."

동대문 아파트의 노후화된 소방 시설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 시급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에서 고생하는 입주민들이 빠른 시일 내에 그 일을 시행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정부와 서울시, 관계 구청의 책임 있는 대책이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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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태그:#동대문 아파트, #소방 안전, #단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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