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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 칼라'라는 성의 안쪽은 많은 이슬람 건물과 유적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중에서 독특한 유적을 꼽으라면 3개의 미나레트와 '꼬흐나 아르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많은 메드레세와 성원이 있긴 하지만 그 건물들은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에서 보았던 것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다른 메드레세와 성원을 대충 둘러본 나는 꼬흐나 아르크로 향했다. 꼬흐나 아르크는 '오래된 성'이라는 뜻이다. 히바 왕국의 왕이 살았던 궁전인 이곳은 18세기 말에 완성이 되고 19세기에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 꼬흐나 아르크의 정문
ⓒ 김준희
입장료 1000숨(숨은 우즈벡의 공식화폐단위, 1숨은 한화 약 1원)을 주고 안으로 들어서자 안뜰은 발굴하다가 만 것 같이 파헤쳐진 모습이었고 그 가운데에는 우물이 있었다. 그 안쪽의 많은 방들은 지금은 역시 박물관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거쳐 오면서 많은 전시물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실내에 전시된 유물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박물관 구경을 잠시 뒤로 미루고 우선 궁전의 전망대로 향했다. 궁전은 이찬 칼라의 서문 옆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전망대에 오르면 이찬 칼라의 서쪽 끝에서 동쪽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별도의 돈 1000숨을 더 내야 한다. 난 그 돈을 주고 위로 올라갔다.

전에 올랐던 미나레트의 계단 보다는 쉬운 계단이다. 그리 높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계단을 조금 올라가자 전망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전망대의 꼭대기까지 오르자 이찬칼라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동쪽을 보면 두개의 높은 미나레트와 칼타 미나레트가 보인다. 궁전의 위치가 서문 옆이라서 그런지 이곳에서는 이찬 칼라 성벽의 윤곽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황토색으로 만들어진 성벽은 물결치듯이 곡선을 그리며 뻗어나가고 있다.

▲ 꼬흐나 아르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찬칼라
ⓒ 김준희
이곳은 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이자 일종의 감시탑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전망대의 주위를 둘러보니까 한쪽에는 경비병 한명이 들어갈 만한 원통형의 초소가 여러 개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총구 같은 것이 보였다.

히바왕국 시절에 외부에서 적이 쳐들어왔다면 이 초소의 경비병들이 가장 먼저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성이라서 외부의 적들은 이곳으로 진군할 때 고스란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성전이 시작된다면 이 전망대는 성 아래의 적들을 내려다보면서 아군을 지휘하는 지휘소로 변했으리라.

▲ 전망대에서 바라본 이찬칼라의 성벽
ⓒ 김준희
전망대를 내려와서 궁전 내부의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19~20세기에 사용했다는 지폐와 동전, 그 지폐를 찍어내는 틀과 그 제조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어서 전시하고 있었다. 다른 쪽에는 지금껏 많이 보아왔던 항아리와 찻잔, 접시들이 있었다.

박물관 한쪽에는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이 밤에 불을 피우고 쉬는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어서 전시하고 있었다. 과거 실크로드 시대에 히바는 대상들의 중요한 거점이었을 것이다. 황토색으로 만들어진 이 궁전도 유지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내부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안뜰은 중단된 발굴현장인 이 궁전에서, 예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왕의 집무실이었던 곳과 후궁들이 살던 곳 그리고 전망대뿐이다.

▲ 꼬흐나 아르크의 내부
ⓒ 김준희
히바를 떠나기 전날에는 이찬 칼라의 성벽을 따라서 안쪽으로 한바퀴 돌아보았다. 사실 이 성은 흙으로 만든 성이 아니다. 황토색 벽돌을 안쪽으로 가지런히 쌓아놓고 그 외부를 흙으로 덮어놓은 형태다. 이 성벽은 아직까지 매끈하게 유지되고 있는 부분도 있고 벗겨지고 허물어진 부분도 있었으며 군데군데 풀이 돋아난 부분도 있다.

성벽과 인접한 곳들은 현지인들의 집이 많다. 개조해서 호텔처럼 운영하고 있는 집들도 있고 보수공사 중인지 인부들이 한참 뭔가를 수리하고 있는 집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작고 어딘지 낡아 보이는 그런 집들이다. 평일 오후이지만 이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많은 노점과 관광객이 모여 있는 중심가에서 벗어난 이 곳은 조용하고 한적하기만 하다.

만들어진 지 이천년이 지나서도 아직까지 고전적인 성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찬칼라. 이 안에는 많은 유적이 있고 그 사이사이로 주민들의 집이 있다. 이 곳에 사는 현지인들은 커다란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과 많은 유적과 함께 생활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다른 마을의 사람들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성에 둘러싸여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바깥으로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성의 1/4을 돌아서 성문을 통해 나가야 한다. 높이 8m, 두께 6m의 이찬 칼라 내부에서는 건물의 옥상이라도 올라가지 않는 이상 바깥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게다가 이찬 칼라 안에는 변변한 상점이나 식당도 몇 개 없다. 상점에 가기 위해서는 성안을 가로질러서 동문 바깥에 있는 바자르로 가야만 한다. 이런 성벽은 주민들에게 보호벽일까 아니면 장벽일까.

▲ 이찬칼라 동문 바깥의 바자르
ⓒ 김준희
저녁이 되자 성벽위로 둥근 달이 떴다. 그 달을 보고 있으니 이제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안 보던 달이었는데 이곳에 있으니까 보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보게 된다. 한국은 아마 다가오는 추석 때문에 들뜬 분위기이리라.

작년 이맘때가 생각났다. 그때 난 추석 전에 회사에서 준 추석선물을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었다. 지금처럼 추석 전의 어느 날이었고, 지금 같은 저녁시간이었다. 그때 난 나의 모습이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1년 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둥근 달을 보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도 그다지 유쾌한 것 같지는 않다. 퇴근 후의 귀가길 대신에 히바의 거리를 서성이고 있고, 손에는 추석선물 대신에 오늘 저녁에 먹을 빵과 과일을 들고 있다.

▲ 해질 무렵의 이찬칼라
ⓒ 김준희
히바의 조용한 분위기가 좋기는 했지만 사실 난 히바에 온 다음부터 밤마다 잠을 설치고 있었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마당에는 닭장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있는 닭들이 새벽 3시부터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바람에 덩달아서 나도 3시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나중에는 누군가 나타나서 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는 꿈을 꿀 정도였다. 물론 닭의 목을 비틀더라도 새벽이야 오겠지만, 새벽이 오더라도 좀 조용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거쳐서 이곳에 온 나는 히바의 많은 이슬람 건물들이 조금씩 식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적을 볼 때마다 거기에 관련된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도 골치 아프게 여겨지고 있었다. 이래저래 히바를 떠날 때가 된 것이다.

히바를 떠나면 어디로 갈까. 히바를 떠나고 나면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도시와도 멀어져 간다. 우즈벡의 이슬람 유적과 건물을 보는 것은 히바가 마지막이다. 계속 서쪽으로 간다면 다음의 목적지는 누쿠스가 된다. 누쿠스는 카라칼팍 자치공화국의 수도이지만 역사적인 도시도 아니고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누쿠스는 서쪽으로 가다보면 만나는 마지막 도시라는 점이 의미가 있다. 누쿠스에서 더 서쪽으로 가면 작은 마을이 몇 개 있고 나머지는 전부 사막이다.

타슈켄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내 마음은 점점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타슈켄트에 간다고 해서 반겨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왕 여행을 하는 거 갈 데까지 가보자 라는 생각도 있었고, 여기서 타슈켄트로 돌아간다면 지금까지 온 거리가 아깝다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 이찬칼라의 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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