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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대선을 앞두고 국내 대표적인 우익이념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총재 권정달)이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전산업개발(사장 이한섭)인수를 시도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전력은 11월 3일 한전산업개발 민영화를 위해 최종입찰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 자유총연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전산업개발은 한국전력이 전액을 출자하여 1990년 4월 11일 설립한 정부 재투자기관으로 전기검침, 전기요금청구서송달, 부동산임대, 발전소 유연탄 상하탑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 회사의 자본금은 163억원이며, 2002년 6월말 기준으로 검침원과 관리인원을 포함해 2532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408억원의 매출액에 82억원의 당기순익을 기록해 비교적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는 회사가 왜 일반기업이 아닌 우익이념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에게 팔려 가는 것일까.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전산업개발과 정치권과의 오랜 유착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관자협의회와 새천년민주당

▲ 국내 대표적인 우익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이 공기업인 한전산업개발 인수를 시도하고 있어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장충동 자유총연맹 본부 건물.
ⓒ 박수원

한전산업개발에서 전기검침을 하던 직원들은 정부가 98년 8월 민영화추진 계획을 발표하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들은 94년 10월 통합공과금제도가 폐지되면서 공무원 신분이 박탈된 경험 때문에 또 다시 민영화 바람에 고용안정이 흔들릴까 '노심초사' 했던 것. 민영화만 막을 수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게 당시 한전산업개발 전기검침원들의 생각이었다.

정부의 한전산업개발 민영화 정책 발표 이후인 1999년 4월 어떤 이유 때문인지 한전산업개발노조 위원장인 심아무개씨가 주도하는 '전국이관자협의회'가 탄생하고 단체가 생긴 직후 당시 아태재단 상임이사였던 이수동씨의 추천으로 1999년 5월 19일 1만여명이 국민회의에 대거 입당하게 된다. 이례적인 입당 때문인지 당시 신문에는 기사까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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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국민회의에는 1만명이 넘는 당원이 한꺼번에 입당식을 가졌다. 한국전력, 가스공사 등이 맡아왔던 계량기 검침 업무 등이 민간으로 이관되면서 이 일을 하는 이관자(移管者)협회 전-현직 회원 1만 11명이 무더기로 입당절차를 밟은 것이다. 협회 이름은 업무를 공기업으로부터 넘겨받았다는 뜻. 이날 입당한 사람들은 지역적으로는 비호남 출신들이다. 협회의 시-도지부 대표들은 전체 회원 5만여명 중 1만여명의 입당원서를 받아 국민회의에 냈다. 1만명이 넘는 특정 직능단체 회원들이 이처럼 대거 입당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당내에서도 놀라운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정부측으로부터 이관 받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여당 입당은 자연스러운 현상 아니냐"고 말했다. 조성준 직능위원장은 "이관자협회측의 자발적인 요청에 따른 것이며, 일상적인 정당활동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 <조선일보> 1999년 5월 20일

그런데 '전국이관자협의회'가 국민회의에 입당하자마자 한전산업개발 민영화 정책은 1999년 6월 통합공과금제도 검토 발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국민회의에서 당명을 바꾼 새천년민주당은 국민편의도모를 위해 통합공과금제도를 4.13총선 민선공약으로 내놓는다. 통합공과금제도는 전기, 가스, 상·하수도 요금과 TV시청료 등 5개 공공요금을 한 장의 고지서에 통합해 부과하는 방식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 때문에 94년 10월 폐지됐던 제도.

당시 집권 여당에서 이같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발표되자 한전산업개발 검침원들이 주축이 된 '전국이관자협의회'는 새천년민주당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부의 통합공과금제도 검토가 발표되자 1999년 8월에는 2만여명의 입당원서를 제출했고, 총선을 앞둔 2000년 3월에는 무려 15만여명이 입당원서를 제출하는 괴력을 발휘하게 된다.

▲ 이관자협의회가 민주당 선거운동에 동원된 사례가 명시된 중간보고서
ⓒ 박수원
당시 새천년민주당 활동을 했던 한전산업개발 전기검침원은 "통합공과금제도를 부활시켜준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고 식구들을 모두 당원에 가입시켰다"면서, "16대 총선에서는 전기검침원들이 전국각지에서 사력을 다해 선거운동에 참여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관자협의회를 만든 한전산업개발노조 심아무개 전 위원장은 "이관자협의회는 검침원들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순수한 목적에서 만든 단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이관자협의회 16대 총선 선거대책문건인 '중간활동보고서'를 살펴보면 이들 조직의 활동은 순수한 목적에서 만든 단체라는 당시 노조위원장 심아무개씨의 주장을 무색케 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활동기간은 2000년 3월 1일-4월 13일까지 44일간으로 민주당 입당원서 15만 7868매를 집단으로 제출하고, 총7194명을 동원해 178회의 선거지원활동을 벌였다고 적시돼 있다.

'2083태스크포스팀'으로 명명된 전국이관자협의회선거대책본부는 전국 10개 지역 본부에 99개지부 5만회원으로 출범한 직후 회원가족을 중심으로 추가 20만명 입당 작업에 돌입, '민주당 후보를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며 새천년민주당 선거대책본부에 공문(2000년 3월 3일)까지 띄웠다. 이뿐 아니라 '이관자협의회'는 한전산업개발노조의 조합비를 사용해 새천년민주당과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까지 제공했다(박스 기사 참조).

당시 민주당 직능국장이었던 김아무개씨는 회신을 보내 통합공과금제도 실시를 약속, 노조원들의 선거활동을 고무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세부활동 보고서(3.16)중에는 민주당 동교동계 의원인 ㅅ의원의 지원방안과 관련 관내 입당원서 1차분 280매 전달, 전 회원들의 현장 홍보 강화지침 시달, 최다 득표율 달성 결의 등이, ㄱ의원 관련 보고서(3.21)에는 입당원서 210명분 전달, 전국 최다득표를 위해 관내 회원들의 활동 독려라는 구체적인 지침사항까지 명시돼 있어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에 가담한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조합비로 정치자금 제공했다

한전개발노조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조합비를 비롯해 모금을 통해 모은 1억 5000만원을 '이관자협의회' 이름으로 정치권에 여러 경로로 로비자금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99년부터 2001년까지 이관자협의회의 정치후원금 영수증 리스트를 살펴보면 회원들이 99년 5월 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 3000만원의 특별당비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도 민주당 ㅅ의원에게 99년 5월과 2000년 11월 각각 1000만원의 후원금을 낸 것으로 영수증이 첨부돼 있으며, 같은 당 ㅈ의원에게 2000년 12월 300만원, ㅅ의원에게 4월 300만원의 후원금을 지급했다.

이관자협의회는 특히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을 재임했던 99년 두 차례에 걸려 모두 3900만원의 후원금을 내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 로비를 펼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이관자협의회 회장이었던 심아무개씨는 "정식 절차를 거쳐 노동조합비를 후원금 등으로 기부한 것이기 때문에 하자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 박수원 기자
이러한 공로 때문인지 민주당에서 청와대로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관자협의회가 지난 대선·총선 때 약 58만명의 회원이 전국적으로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전개하여 당에 큰공을 세웠다"면서,"사단법인 등록 문제에 대해 조아무개 차관보(2000.1-2002.6재직)가 약속을 했으나 수석님의 당부가 필요하다"고 문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통합공과금제도 시행은 2000년 12월 이해당사자인 민주당, 기획예산처, 행자부, 산업자원부, 방송위원회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한 당정회의 결과 "4개 부처가 모두 반대의견을 제시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 보류상태가 된다.

이 때부터 민주당이 한전산업개발 검침원들에게 약속했던 통합공과금제도는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통합공과금제도 도입이 불가능해지자 한전산업개발의 민영화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한국전력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하는 통합공과금제도 시행이 어렵게 되자 2001년 10월부터 민영화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당시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는 기획예산처는 2001년 12월 통합공과금제도에 대해 "국민편의 제고와 관련사업자의 비용절감효과 및 예상되는 부작용 등에 대한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돼 앞으로 좀 더 기한을 두고 연구 검토를 진행하자"고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자유총연맹에 주는 선물?

2002년 4월 한전산업개발 민영화에 따라 입찰 참가의향서 제출 공고가 나가자 한국자유총연맹, 월남참전전우회, 대한상이군경회, 신일종합시스템, 신천개발, 전북도시가스, 반도, 누리텔리콤 등 8개회사가 입찰참가의향서를 접수했다. 그리고 한국자유총연맹, 반도, 신천개발 등 3개 업체를 추렸다가 11월 초 한국자유총연맹이 한전산업개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한국자유총연맹은 사단법인으로 민법상 비영리단체로 분류된다. 비영리단체의 경우 일반적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사업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단 사단법인이 가지고 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경우에만 사업이 가능하다.

이런 문제점을 피하기 위해 한국자유총연맹은 2002년 3월 16일과 4월 16일 정관을 개정하면서 총칙 제4조 2항 수익사업 조항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국민운동 전개 등의 목적 달성을 위해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700억이 넘는 인수자금 마련에도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한국자유총연맹은 서울 중구 장충동 1만여 평 회관부지(시가 1200억원 추산)를 담보로 은행에서 인수자금을 얻을 계획이다. 여기다 자유총연맹이 가지고 있는 기금과 예금, 산하 회원을 상대로 펀드를 모집해 운영자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 마디로 말해 자기 자본금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은행 담보 자금을 중심으로 연간 매출액 1400억원대 한전산업개발을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은행 담보를 얻을 중구 장충동 1만여 평 부지도 1962년 박정희 대통령 재임 당시 반공이념의 전파를 위해 제공받은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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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한국자유총연맹 장수근 홍보실장은 "회원이 50만명에 이르지만 98년 이후 정부에 지원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위해 공기업 인수에 나서게 됐다"며 "비영리 단체이기는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옹호발전을 위한 단체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은 할 수 있도록 정관에 명시돼 있고, 이미 예식장 사업, 주차장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장수근 홍보실장은 이어 "우선 협상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한점의 의혹도 없었다"면서, "정해진 절차에 의해 정당한 방법으로 인수 절차에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자유총연맹의 주장보다는 정부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관변단체에게 한 몫 챙겨주려는 의도가 짙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한전산업개발 매각에 대해 한국노총은 "관변단체로의 특혜·헐값 매각이 그 동안 정부가 민영화 추진과정에서 수 없이 주장해 온 경쟁력 확보, 전문성, 수익성 제고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묻고 싶다"면서, "최소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부가 왜 한전산업개발 민영화를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서둘러 관변단체에 특혜매각하려 하는지 뻔히 눈치챌 일"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로 있는 권정달씨의 경우 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있다가 민주당으로 말을 바꿔 타 4.13 총선에서 안동에서 출마해 낙선한 경험이 있고, 현재 민주당 고문으로 돼 있다.

통화공과금제도 시행이 유보된 이후 한전산업개발 노조는 집행부를 새로이 구성하고 자유총연맹으로의 매각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전산업개발노조 이상율 사무처장은 "민주당이 전기검침원들 신분 보장을 미끼로 선거운동에 동원하고, 결국에는 관변단체에 전기검침원들을 넘겨 다시 선거에 동원하려고 하고 있다"면서, "민영화를 하려면 최소한의 원칙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편 국회산업자원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강인섭 의원은 "한전산업개발 우선 협상 대상자로 한국자유총연맹이 선정된 것은 비영리관변단체로서 취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진정한 민영화에도 배치되는 일"이라면서 산자부에 매각을 철회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정부가 과연 건실한 공기업을 대선을 앞두고 무리수를 둬 가면서 우익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에게 넘겨줄지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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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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