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에서 여교사를 몰래 촬영한 '디지털 성범죄'가 잇따라 발생했으나 도교육청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교육단체와 경북도의회가 "안전불감증이 부른 예측된 사고"라고 지적했다.
경북도교육청과 경북도의회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6일 경북 구미의 한 고등학교에서 남학생 A씨가 여자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여교사 B씨를 몰래 촬영하다 현장에서 붙잡혔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에 대해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한 결과 B교사 뿐 아니라 불법적으로 촬영된 다수의 영상물을 확보했다. 경찰은 곧 수사를 종결한 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이 학교는 지난 3월 19일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가해학생을 퇴학처분 하기로 했지만, 이의신청이 있었다. 이후 지난 17일 열린 경북도교육청 학생 징계조정위원회는 퇴학 처분이 과하다며 재심의를 요청했다.
재심의는 다음달 8일 열릴 예정이지만, 도교육청이 재심의를 결정해 가해 학생은 퇴학보다 낮은 전학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보인다.
학교·교육청 분리조치 안해... "교권침해 인식 매우 안이한듯"
해당 학교는 피해 교사가 지속적으로 분리 조치를 요구했지만 학교와 교육청 측은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분리조치를 하지 않았다. 대신 A학생과 B교사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 여교사들은 지역교권보호위원회에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교육활동 침해사안'을 다시 신고접수하기로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16일에는 또 다른 학교에서 한 학생이 수업 중이던 여교사의 치마 속을 불법 촬영하다 적발됐다. 당시 C교사는 교탁 아래에 놓인 필통에 휴대전화 렌즈가 맞닿는 부위에 구멍이 있어 의심스러운 상황을 인지하고 학생의 휴대전화를 열어 확인해 본 결과 불법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가해 학생은 자퇴 처리되고 피해교사는 병가 중이지만 동영상 유포 등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전교조 경북지부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3월 6일 발생한 디지털성범죄와 관련 "가해 학생들이 대부분 실형과 퇴학 조치를 받은 상황 속에서 경북도교육청의 퇴학조치 재심의 결정은 피해교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고 비판했다.
경북지부는 "해당학교 여교사들은 그동안 불법촬용 영상물의 피해자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수치심을 가지고 수업과 학교 일상에서 가해 학생과 만날 수밖에 없었다"며 "경북도교육청의 성폭력과 교권 침해 사건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사안처리 역량의 부족을 다시 한 번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전교조는 경북교육청에 피해자에 대한 즉각 사과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징계 및 피해자 보호조치, 피해교사의 법률지원과 촬영물 삭제 등을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 교내 성범죄 및 교권보호에 대한 역량 강화 등을 촉구했다.
경북도의회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경북교육청 징계조정위원회의 처분 결과는 불법 촬영이 중대한 범죄이며 이의 신청을 하면 겨우 '전학' 수준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의회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관련 예산을 조속히 편성해달라는 요구는 묵살된 채 예산은 전년도 대비 18% 수준인 5760만 원밖에 편성되지 않았다"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주식 도의원은 "경북도교육청 화장실 등 불법 촬영 예방 조례를 발의해 상시 점검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예산 수립의 근거를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