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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나는 습관처럼 오른쪽 가슴께를 만져보게 된다. 가끔은 새집 속 아이가 잘 있나 들여다보는 어미 새처럼 윗옷을 들춰 두 눈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이제 정말 내 가슴엔 기다란 줄도, 하얀색 반창고도 붙어 있지 않다. 평평하고 밋밋한 가슴께의 감촉이 아직도 신기하고 믿기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발병 

1년 반 전 갑작스러운 백혈병 발병으로 나는 가슴에 줄 3개를 달았다. 골수검사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 수술대로 끌려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작스러운 발병 소식에 슬퍼하고 놀랄 틈도 주지 않은 채 진행된 급박한 치료 일정은 당시 내 넋을 나가게 하기 충분했다. 그 순간은 생각지도 못한 발병의 충격보다 내 몸에 가해지는 물리적 압박이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이 시간만 지나면 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사(자료사진).
 주사(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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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삽입된 줄은 의학 용어로 '히크만 카테터'라 불렸다. 오랜 시간 각종 약물과 혈액, 수액 등의 투여가 필수인 내 치료의 특성상, 치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술이었다. 시술 전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환자분, 온몸에 구멍 안 만들려고 하는 거니까 조금만 참으면 돼요. 이거 없이 치료 하려면 주삿바늘에 온몸이 남아나질 않아."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던 우리 선생님의 의도는 오히려 나를 더 떨게 했다. 아이를 둘이나 낳은 나에게 이 정도 시술은 껌일 거라던 주변의 위로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난 두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좀 더 의젓하고 씩씩한 엄마가 될 거라고 되뇌며 거사를 잘 치렀다. 

3개월이면 뗄 수 있을 거라던 그 긴 줄들은 생각보다 오래 나와 함께 했다. 동료 환자들이 하나 둘 히크만과 멀어져 갈 때도 난 끈덕지게 이 줄을 부여잡고 있었다. 아직 피 수치가 많이 낮아 잦은 수혈이 필요했고 각종 부작용에 입원도 수시로 해야 했다. 

옷 입기, 샤워하기, 아이들과 안기 등 일상생활에서는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실수로 줄이 당겨지거나 감염이라도 되면 내가 겪은 것 이상으로 위험하고도 번거로운 상황이 연출될 터였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손쉽게 줄을 돌돌 말며 샤워하기도 껌인 시절이 왔다. 

시술 후 처음 집에 갈 땐 내 몸에 달린 긴 줄을 보고 아이들이 충격받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신기하게만 바라봤다. 빨간 면봉으로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이는 작업을 할 때면 턱 밑까지 고개를 들이밀고 유심히 관찰했다. 이러한 이벤트도 머지않아 아이들에게는 일상이 되었고, 가끔은 나도 내 몸에 세 개의 기다란 줄이 있다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 

입원과 수혈을 위해 병원을 드나들 때는 오히려 이 줄의 존재가 너무 고마웠다. 독한 약물과 항암의 고통도 무시무시하지만, 약을 넣기 위해 팔뚝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 찌르는 고통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늘만 봐도 덜덜 떠는 쫄보였기에, 최소한의 고통을 줄여주는 히크만이 고맙고 소중했다. 그에 비하면 일상생활에서 겪어야 할 불편쯤은 감수할 만했다. 

히크만과 함께 한 1년 반... 잘 가

이제 히크만과 함께 한지 1년 반이 지났고, 나의 신중한 주치의 선생님은 얼마 전 이 줄을 떼도 되겠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가슴이 찌르르했다. 남편은 물론이고 매사 마음 졸이던 엄마 아빠도 큰일 해냈다며 기뻐하셨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이 줄을 뗀다는 건 재발의 위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회복에 더 가까워졌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나의 발병 후 항상 굳어 있던 남편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돌았다. 이식 1년 후, 모두 이제 한시름 놨다, 두 번째 돌잔치 하자며 축하일색일 때에도 신랑만은 많이 웃지 않았다. 내 가슴팍에 돋아 있는 긴 줄들이 아직 내가 갈 길이 먼 환자임을 보여주는 듯했을 것이다. 기뻐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뭉클했다. 

여전히 무섭고 떨렸던 히크만 제거술은 잘 마무리되었고 그제는 실밥도 떼고 왔다. 내 가슴팍에는 이제 작은 멍과 꿰맨 자국만 남았다. 나중에 이마저도 없어지면 아마 나는 히크만의 존재를 잊을지도 모르겠다. 

어젯밤 정말 오랜만에 마음껏 샤워를 했다. 빳빳이 허리를 펴고 하고 싶은 만큼 샤워기의 따스한 물줄기를 즐겼다. 그동안은 장치에 물이 들어갈 새라 방수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이고 몸을 이리저리 꼬고 굽히면서 곡예 같은 샤워를 했었다. 이제 나에게도 마음껏 샤워할 자유가 생긴 것이다.

히크만을 떼고 나니 정말 내가 많이 나은 것 같아, 봄꽃도 보고 왔다. 휴대폰 화면으로만 보던 광활한 벚꽃 길을 눈으로 마주하니 정말 봄인 게 실감났다. 벌써 벚꽃은 바람에 많이 날려가 가지의 절반은 푸릇푸릇했지만 그 자체로도 너무 아름다웠다.
 
벚꽃(자료사진)
 벚꽃(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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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벚꽃을 손에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기에 여기저기 손을 뻗어보았다. 눈을 들어보니 벚꽃 말고도 복사꽃, 철쭉, 개나리, 진달래, 이름모를 봄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 봄, 꽃, 햇살. 오래 간직하고 싶어 사진을 많이 찍었다.

사진을 찍다보니 문득 내 몸에 달려있던 히크만이 떠올랐다. 듣자니 어떤 환자는 몸에서 떼어낸 이 줄을 챙겨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는데 난 사진 한 번 찍지 못하고 얘들을 떠나보냈다. 그래도 오래도록 내 몸에 딱 붙어서 날 도와줬던 애들인데 괜히 아쉽고 미안한 참이었다.

사진 한 장 못 남겨 섭섭하다 말하니, 엄마가 손사래 치신다. 속시원하지 뭐가 아쉽냐며 뒤도 돌아보지 말라신다. 그래도 난 마음으로라도 인사하고 싶었다. 히크만아 고마웠어. 네 덕에 편안했어. 잘가.

덧붙이는 글 | 비슷한 내용을 담은 글이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태그:#회복, #봄꽃,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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