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태안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이 열립니다.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기후위기, 해고와 지방소멸을 막아내고, 모두가 함께 사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이뤄내기 위해 충남의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330 충남행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향한 충남의 노동자, 시민의 목소리를 알려내기 위해 오마이뉴스 연속기고를 진행합니다. 3월 30일, 태안에서 만납시다![기자말] |
충남을 떠나는 청년들
수도권 밖 어느 지역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충남 역시 최근 들어 지방소멸이 화두가 되고 있다. 작년 통계청 조사 결과 충남 도내 15개 시군 중 북부권 일부 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9개 시군이 인구 소멸 위험지역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충남도와 각 시군을 막론하고 지역 소멸 대책을 강구하겠다며 연일 토론회를 열고, 나름의 해법들을 쏟아내고 있다.
청년 귀농을 지원하겠다며 스마트팜 지원사업을 하겠다고 하고, '인구 감소'에 으레 세트 메뉴처럼 따라나오는 '임신 및 출산 지원'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들린다. 충남도는 올해 지방소멸대응기금을 896억 가량 확보했다면서 치적을 자랑하기도 했다.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대책과 치적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충남도의 인구가 극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충남에 있는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 입장에서, 지자체에서 내놓고 있는 여러 대책들과는 무관하게 지방소멸 문제가 근시일 내에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은 캠퍼스의 공기에서도 쉬이 읽어낼 수 있다. 지역 특례가 있는 특성상 충남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이 많이 진학하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졸업 이후에도 충남에 자리잡고 살겠다는 동기나 후배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2023년을 기준으로 충남 지역 소재 대학교들의 전체 재학생 수는 16만 명이 넘는다. 충남은 서울, 경기, 부산, 경북에 이어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다섯 번째로 대학생이 많은 지역이다. 충남의 인구 규모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8위임을 감안하면 비율상으로도 대학생이 상당히 많은 지역이라는 소리다. 청년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에서 지속적으로 청년 유치와 인구 감소를 신경쓰는 것은 대학생들이 졸업 이후 지방에 정착하지 않음을 뜻할 것이다.
'머릿수 채우기'보다 지역 공동체 살리기가 중요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는 이유는 지방에서 장기적인 삶의 전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고, 여러 대책에도 불구하고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는 이유는 그것들이 기반의 부재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의 기반은 산업과 사람이다. 지역 내 주요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재화와 상품을 생산하고, 재화와 상품이 주민들을 매개로 하여 지역사회 내에서 순환한다.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닌 이상에야, 그 누구도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방 소멸 대책은 수량으로서의 인구 증가 내지는 '머릿수 채우기'가 아닌, 지역사회의 기반이 되어 줄 공동체의 내실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예컨대, 농촌의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한데, 지방 소멸 대책을 내는 충남도의 정책 결정권자들 그리고 최종 책임자인 김태흠 도지사는 먹고 사는 문제를 그렇게 크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인지, 한쪽에서는 청년 귀농으로 농촌 소멸을 막겠다며 '스마트팜 지원사업'을 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여성농민바우처를 폐지하는 행보를 하고 있다. 대책이라는 것들이 대체로 이런 식이니 당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충남의 지방 소멸은 기후재난이다
근 몇 년간 계속하여 '기록적'이라는 수식어를 매년 갱신하며 반복되는 여름철 폭우와 폭염은 기후재난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더불어 재난의 피해가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아픈 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재작년 수도권 폭우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반지하에 사는 주거 약자들이었고, 작년 중부권을 강타한 폭우로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기후재난은 파괴적이고 역진적이다.
이러한 기후재난의 특징에 비추어 볼 때, 충남 각 지역의 지방 소멸 또한 기후재난으로 분류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충남의 주요 산업은 발전산업과 금속 제조업이다. 둘 모두 기후위기가 심각해짐에 따라 산업전환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된 산업이며, 충남 서부권의 석탄화력발전소들은 내년부터 대규모 폐쇄를 앞두고 있다. 이러한 산업전환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하청 노동자들과 비정규직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발전사 그 누구도 이들의 고용승계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제조업 또한 마찬가지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부품 수가 훨씬 적고, 차체의 경량화가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산업전환이 이뤄질 경우 부품 제작을 수주받는 하청사들의 수는 대폭 줄어들 것이며, 이는 충남 북부 공단지대 부품사들의 줄폐업과 하청 노동자 다수의 실직이라는 파국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부품사의 폐업과 차체 경량화 작업으로 인해 제철소의 물량 수주 또한 축소될 것이며, 이러한 타격은 제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 실직은 곧 지역사회 내에서 순환하는 재화가 급격하게 축소됨을 의미한다. 그 다음 타깃은 지역의 소상공인들이 될 것이다. 인구 유출은 심각해질 것이며,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 역시 정착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졸업 이후 충남을 바로 떠나게 될 것이다. 이미 소멸 고위험 지역인 태안과 위험지역인 당진, 서산, 보령 등은 회복하지 못할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고, 소멸 위험지역은 아니나 부품사가 밀집되어 있는 천안, 아산도 무시하지 못할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기후위기 시대, 산업전환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런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대책 없는 산업 전환은 기후 위기가 불러일으킨 재앙이 될 것이다.
재앙적 지방소멸 막을 마지막 기회
폐쇄를 앞둔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발전소 폐쇄 반대'가 결코 아니다. 발전산업의 전환과 이에 수반되는 화력발전소의 폐쇄는 필연임을 받아들이고 이에 동의한 것이다. 기후위기의 심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정든 일터를 폐쇄하는 데 동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다. 지역 그리고 지구 공동체의 뭇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한 결단이 아니었을까.
대신 이들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요구한다. 발전소 폐쇄와 산업전환을 받아들이되 산업전환에 따른 재교육과 고용 승계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단순히 자신들의 고용 문제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누군가가 배제된다면, 결국 그 후유증은 도미노처럼 모두를 덮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도미노가 넘어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화력발전소 폐쇄가 재앙적 지방 소멸의 시작이 될지, 모두가 함께 사는 기후정의의 첫 걸음이 될지 결정될 때까지 1년 남짓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지금이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그런 절박한 마음을 안고 330 충남노동자행진에 참가하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사루씨는 2023년까지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충남 지역 대학에 재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