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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서 생태위기를 맞이하게 된 원인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마주하는 두 가지 현상이 있다. 그런데 두 가지 현상이 사실은 하나의 본질로부터 비롯된 것 같다.

첫째, 지속적인 성장을 강요하는 자본 이데올로기이다. 지구촌의 각 국가는 경제 몸집을 불려가기 위해 GDP를 늘리는 것이 지상과제이다[1]. 개인은 이윤을 늘리려 자원을 채굴하고, 재화를 생산하며, 빠르게 유통해야 한다. 이것이 기후 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를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하는 사람이던 사업을 하는 사람이던 GDP를 늘릴 수 있는 사람이 능력자이고, 이들에게 정치력과 이익을 더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합의가 생겼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는 갈수록 자산 격차, 소득 격차, 문화 격차가 생기는 것에 무감각하거나 당연한 일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

둘째, 학교는 자본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마당이 되고 있다. 시대정신은 능력 있는 사람이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하므로 더 많이 가져야 하고,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며 능력통치가 세습통치를 대체하였다. 능력통치의 정당성은 '공정 경쟁'으로부터 비롯된다.[2]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정한 경쟁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은 환상일 뿐이다. 각 개인의 능력을 결정하는 가정과 사회의 경제문화 면이 너무 큰 격차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타고난 유전 기능과 인적 네트워크와 문화 자본이 융합하여 아이를 성장시키기 때문이다.[3] 인류는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매우 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기 때문에 사회환경 요인이 절대적이다. 심지어 성인에 이르러서도 인적 자본, 문화 자본은 계속 차이 나게 개인의 능력 형성에 영향을 준다.

학교가 자본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있는 까닭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애초, 학교의 평가는 서열을 세우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학교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도 각자 급에 따른 교육목표 및 성취수준이 다르다. 평가는 이를 달성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즉, 평가는 통과 및 불통과 여부를 확인하는 의미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런데 대학입학전형을 마치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로 변질시키면서 학교는 능력통치의 도구가 됐다. A급 대학교 대학생은 A 능력계급이요, D급 대학교 대학생은 시시한 능력계급이다. 대입에서 낙제한 학생은 낙제 능력계급으로 사회적 비용 부담만 일으키는 존재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학교는 능력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이자 제도가 되면서 결정적으로 성장 주도형 자본 이데올로기에 충성을 다하는 노예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학교는 학생 개개인을 이윤 추구를 위해서 끝이 없는 경쟁을 할 수 있는 전사로 키워야 한다. 내신 경쟁을 위해 미래의 장밋빛 삶을 담보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현재의 생활 패턴을 강요한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이를 만큼 잠을 줄이고, 각성제를 먹어가며, 인성 파괴적 학습 노동을 하게 한다. 학창시절은 학생이 이윤을 높이기 위해 자원 채굴, 과잉 생산, 과속 유통을 익히는 시기로 보인다. 여기에는 보호자, 학교, 학생 자신이 참여하는, 말하지 않는 다음과 같은 합의가 있고, 이는 그대로 자본 이데올로기의 판박이에 다름 아니다.

1. '유지'는 쇠퇴이니 '성장'하라. '미래'를 현재의 담보물로 삼고 모든 시간을 점수 향상에 투자하라.
2. 학교에서 '만족한 삶'보다는 학습 기계형 인간이 되어라.
3. 지구촌과 사회 문제에 신경 끄라. 현재 사회체제 안에서 네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 지만 생각하라.
4. 국제GDP경쟁처럼 공정한 경쟁 잣대는 상대평가, 지필평가, 정시고사, 일제고사이다.
5. 시험과 내신 경쟁은 피할 수 없으니 즐겨라.
6. 너보다 낮은 애들과는 상대하지 마라. 너의 자존감을 위해 수준 낮은 애들에게 차별적 시선을 보내며 즐기라.
7. 학교는 학생 간 협력보다는 경쟁을 통해 점수 향상을 일으키도록 총제적으로 준비하라.
8. OECD국가 모임처럼 능력계급 아이들은 그들끼리, 무능력계급 아이들은 그들끼리 모이도록 특목고와 자사고를 확대하라.
9. 교사는 능력계급 아이들이 더 많은 학습 기회를 갖도록 수업을 구성하라.
10. 교사의 긍지는 학생과 나누는 사유의 공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창의적으로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지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공교육은 어떠해야 할까? 학교가 자본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기능을 폐기할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을 능력통치의 지배자로 키우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대신 학교는 학생이 학교 안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발견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키우도록 가르쳐야 한다. 공교육 체제는 차별보다는 통합과 상생 철학을 실현해야 한다.[4]

학교가 지구촌 생태위기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즉, 학교는 학생을 생태민주주의자로 키워야 한다. 생태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약자와 미래세대는 물론 비인간존재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들이나 이들의 대리인 혹은 후견인들이 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소통하고 숙의하고 행동하는 정치이다.[5] 학생의 철학과 행동이 성장 주도형 자본 이데올로기를 거부해야 한다. 학생이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비인간 존재와 미래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이 생태적 문제에 대한 책임과 실천의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시민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을 우리는 생태중심교육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올해 2월 말에 출범한 '생태중심교육 시민사회계약 운동본부'는 생태중심교육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생태중심교육이란 비단 환경교육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중심성을 탈피하고 생태적 시민성을 바탕으로 생태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인류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생태중심교육의 목표는 '다른 존재와의 상생', 유기적 관계성에 기초한 '공동체적 배움',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천 역량'이다."[6]
 
2024년 2월 29일에 열린 그 운동본부 출범식이다.
▲ 생태중심교육 시민사회계약 운동본부 출범식 2024년 2월 29일에 열린 그 운동본부 출범식이다.
ⓒ 신정호(혜안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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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학교는 학생을 생태민주주의자로 키울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어떻게 현재 자본 이데올로기 중심 공교육 체제를 생태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 사회는 생태 위기를 빙자한 생태권위주의를 피하면서 생태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당연하게도 이러한 합의를 이끄는 주체는 시민이어야 한다. 시민들이 나서서 "학교는 이러해야 돼!"라고 청사진을 그려주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서울시교육청 소속 서울혁신미래교육위원회(대표 강신만)'는 '생태중심교육 시민사회계약 동서남북 토론회'를 2023년 11~12월 거쳐 개최하고 다음과 같은 목록을 예시안으로 제시하였다.[7] 이를 통해 우리는 생태중심교육을 위해 시민이 어떠한 약속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서울혁신미래교육추진위원회는 생태중심교육 시민사회계약 동서남북토론회를 열고 예시 계약문을 작성하였다.
▲ 2023 서울혁신미래교육추진단 동서남북 토론회 시민사회계약 예시안 서울시교육청 산하 서울혁신미래교육추진위원회는 생태중심교육 시민사회계약 동서남북토론회를 열고 예시 계약문을 작성하였다.
ⓒ 설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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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위기를 맞이하여 시민의 대규모 사회적 계약의 필요성은 UNESCO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 보고서'를 통하여 절실하게 논의된 바이다.[8] 이 보고서는 생태위기의 시대에 사회가 맺어야 할 새로운 계약은 "인권에 근간을 두고 차별 금지와 사회 정의, 생명 존중, 인간 존중 및 문화 다양성에 기초해야 한다. 또한, 돌봄의 윤리, 호혜주의, 연대를 포괄해야 하며, 공동의 사회적 노력이자 공공재로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어떤 미래가 우리에게 열릴 지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현 공교육 체제를 존속할지, 생태중심교육 체제로 전환할지 판단해야 한다. 학교가 학생의 미래를 저당 잡고, 성적 경쟁의 도가니 기능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인지, 각자 다양한 성장을 이루며 만족한 삶을 누리는 마당이 되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 결정의 중심에 시민의 사회계약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1] 토마 피케티(2020). 자본과 이데올로기. 문학동네.
[2] 마이클 센델(2020). 공정하다는 착각. 와이즈베리.
[3] 로버트 퍼트넘(2016). 나 홀로 볼링. 페이퍼로드.
[4] 김용련(2023). 생태중심교육 방향과 사회적 합의를 위한 구상. 제2차 서울혁신미래교육포럼 자료집.
[5] 구도완(2022). 생태민주주의. 대구:한티재.
[6] 김용련(2024). 왜 생태중심교육인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미래교육. 생태중심교육 시민사회계약 운동본부 출범식 발표원고(미간행물).
[7] 서울혁신미래교육추진위원회(2023). 생태중심교육 시민사회계약 동서남북 토론회 기획안. (미간행물).
[8] UNESCO 국제미래교육위원회(2021).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 UNESCO 보고서.


태그:#생태위기, #생태중심교육, #시민사회계약, #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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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참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근무하고 있으면서 변화하는 사회가 학교에 요구하는 것도 있고, 학교가 변하면서 사회에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인지 자꾸 변하고 있으니 교육정책은 그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잘 반영해야 할 것입니다. 초중등교육 교육과정과 학교, 그리고 교원 양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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