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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4월 고리2호기의 가동이 중단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인 고리1발전소의 두 원자로가 모두 멈춘 것이다. 그러나 2호기는 내년 재가동을 목표로 절차를 밟고 있다. 또한 새울3·4호기는 지금도 완공을 향해 막바지 공사를 진행 중이다. 한국은 세계 1위의 원전 밀집 국가이자 글로벌한 '핵' 이슈의 나라이다.

지난 1월 8일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선안전관리노동자를 만나 원전을 일터 삼아 형체 없는 위험인 방사선을 다루는 일에 대해 들어보았다. 느껴지지 않는 것을 재어보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닦아내고,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보려 애쓰는 일에 대하여 조심히 짐작해 본다.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했다. 

"작업자를 피폭으로부터 보호하고, 오염된 것들을 처리하죠"
 
고리원자력발전소와 송전탑을 배경으로 기장 바다에서 어민들이 뱃일을 하고 있다.
 고리원자력발전소와 송전탑을 배경으로 기장 바다에서 어민들이 뱃일을 하고 있다.
ⓒ 사진작가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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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습니다, 소개 말씀 먼저 부탁드려요.

"저는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상주 협력 업체 소속 방사선안전관리노동자로, 원전방사선 안전관리노동조합 활동도 하고 있어요." 

- 방사선안전관리노동자는 어떤 일을 하는지, 그밖에도 원자력 발전소 안에는 어떤 일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원자력 발전소 안에서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이 직접 하는 고유 업무인 발전을 제외한 네 개 분야에 상주 협력 업체가 들어와요. 한전의 자회사인 한전KPS가 시설 정비를 맡고, 발전소 안에 있는 계측기를 교정하거나 정비하는 계측제어 업체, 제가 소속된 방사선 안전 관리 업체, 그리고 원전에서 사용한 물을 처리하는 수처리 업체, 이렇게 있어요. 그 밖에도 프로젝트 방식으로 공사 용역을 받는 업체들도 오가고요.

방사선안전관리 업무는 방사선 관리구역 내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을 피폭으로부터 보호하고, 방사선에 오염되거나 피폭된 것들을 관리하고 처리하는 일이에요. 방사선 구역 제염 및 측정 관리, 방사선 관리 구역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피폭선량을 측정하는 일, 그 사람들이 입은 방호복을 세탁하고 샤워실과 라커룸을 관리하는 일, 제염 과정에서 나온 물과 찌꺼기를 처리하고 청소도구 등을 분리 폐기하는 일, 방사선 관리구역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드럼 처리해서 저장고로 보내는 일까지, 다섯 개 정도 팀으로 나뉩니다. 한 발전소에 평균 60명 정도의 방사선안전관리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14개 발전소(원전은 두 호기를 합쳐 한 발전소로 구분한다. 현재 한국에는 25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에 9개 업체 소속 900여 명이 이 일을 하고 있어요."
 
해변에서 바라본 고리원자력발전소 전경.
 해변에서 바라본 고리원자력발전소 전경.
ⓒ 사진작가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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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의 특성상 방사선에 상당히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피폭 문제는 없나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의 기준치를 따라 정해둔 방사선 안전 종사자들의 선량한도는 5년에 100mSv(밀리시버트)예요. 그러면 1년에 20mSv잖아요. 발전소 내부에서는 연간 15mSv를 기준으로 관리를 해요. 피폭량에 따른 작업 가능 여부를 관리하는 것도 저희 일이에요. 방사선량을 측정했는데 시간당 선량이 너무 많이 나온다면 작업자는 오늘 1시간밖에 작업을 못 한다거나, 공기 오염도가 높으면 마스크를 쓰라고 한다든지, 그런 식으로 제한하거나 보호조치를 취하는 거죠. 

저는 지금까지의 누적 피폭량이 160mSv쯤 돼요. 연간 18mSv까지 맞아본 적도 있어요. 그게 지금 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앞으로 미칠지는 알 수가 없어요. 제가 나중에 암에 걸리게 되더라도 그게 제 생활 습관 탓인지, 유전인지, 피폭 때문인지 증명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 높은 선량이네요. 피폭을 많이 받게 되는 공간이나 상황이 따로 있나요?

"제가 유독 많이 피폭된 편이죠. 저는 원자로에도 들어가 봤어요. 고방사선량율 구역에도 직접 들어가서 방사선량율을 측정한 후 해당 작업자들에게 작업장 방사선 정보를 제공해야 하니까요.

또 오버홀(계획예방정비) 때 피폭 가능성이 커져요. 발전소는 일정 기간 가동을 하고 나면, 한동안 가동을 중지하고 핵연료를 교체하거나 설비점검과 정비를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걸 오버홀이라고 해요. 발전소마다 발전소의 형태와 원리에 따라 그 주기가 달라져요. 연료 다발이 많이 들어가고, 발전량이 많을수록 계획예방정비 주기와 기간이 늘어납니다. 기간은 짧게는 한 달 반쯤에서 길게는 석 달을 넘길 때도 있어요. 

이 기간에는 상주업체 외에도 공사 및 정비 업체 등, 출입자도 훨씬 많아지고 원자로 건물도 열어 온갖 정비 업무를 하니까 당연히 방사선안전관리 업무의 양도 크게 늘죠. 사람들의 출입과 업무공간의 선량을 관리하고, 정비 중 발생한 온갖 비품과 폐기물을 다 처리해야 하니까요."

- 방호복을 꼼꼼히 갖춰 입고 일하는 환경에서 화장실 문제는 없나요?

"그 안에는 화장실이 없어요. 경상 업무 때에는 보통 두 시간 안에 작업을 하고 나와서 쉬었다가 다시 들어가는 식이라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오버홀 때 배탈은 큰일이에요. 원자로까지 들어가는 데에만 10분 이상 걸려요. 급한 신호가 오면, 그 과정을 다시 되돌아 라커룸으로 갈 때까지 버티기 어려울 때도 있죠.

그리고 발전소 가동할 때는 보통 보조 건물에 있는 공조설비로 온도제어가 되는데, 오버홀 기간 중 공조설비를 점검, 정비할 때는 가동이 정지되기도 해요. 그러면 여름이랑 겨울에 정말 힘들죠. 여름엔 방호복 차림이라 곱절로 덥고, 겨울이면 작업자들이 하루에 몇 백 명씩 들어오는데 너무 추우니까 옷을 막 두 겹씩 입고 들어오거든요. 우리 방호팀이 그 옷 다 세탁해야 하니까 껴입지 말라고는 하는데, 입고 들어온 걸 벗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 단순 세탁이 아닌 제염의 개념으로서 세탁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세탁기에 빨래를 한다는 점은 같은데, 일반 세제가 아닌 제염제로 세탁해요. 빨기 전에 검사해서 오염도가 기준치 이상이면 폐기하고 나머지만 세탁합니다. 세탁 후에도 다시 검사해서 기준치 이하여야만 지급해요. 빨래할 때 사용된 물은 탱크에 모아서, 물은 증발시키고 슬러지는 폐기물 처리를 해야 하고요. 제염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일이 비슷한 순서를 거쳐요. 관리구역 제염도 일반 청소랑은 다르죠.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겉으로는 깨끗해 보여도, 오염도가 높을 수 있거든요. 구역마다 샘플 용지를 문질러서 측정한 후 오염이 확인되면 제염제로 닦고, 다시 측정해 보고, 수치가 기준치에 들어올 때까지 반복하는 거죠."

"안전이 비용이 되어버린 사회... 그래서 입법이 중요합니다"

- 협력업체 소속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일터나 계약 관계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것인가요?

"직원들은 계속 여기에서 일하고 회사만 바뀌어요. 누가 입찰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다음번 사장이 정해지는 거죠. 저는 그동안 회사가 여덟 번 바뀌었어요. 입찰이 3년 주기인데, 간혹 한 업체가 연속으로 낙찰되는 경우도 있어요. 방사선안전관리노동자는 발전이 멈춘 후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선량을 측정하고 안전을 책임질 중요한 사람들이거든요. 동료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만들어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노동조합활동도 함께 하고 있는 거고요."

- 방사선안전관리노동자로서, 안전관리노조 활동가로서 '안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안전은 비용인 것 같아요. 요 몇 년 사이에 산업안전을 되게 중요시하기 시작했어요. 위험 요소가 있으면 발전소에서 먼저 작업을 중지시키기도 해요. 안전은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돈으로 바꿔 먹을 수 있는 무언가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처음부터 선택했어야 하는 간절한 기회비용이잖아요. 안전이 곧 비용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여러모로 고민이 많아져요. 사람 목숨이 비용보다 덜 중요시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입법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법 개악도, 중대재해처벌법 개악도 꼭 막아내야죠."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메밀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4년 2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고리원자력발전소안전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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