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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2024.1.2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2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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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험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 운영이 정치(포퓰리즘)나 이념 편향에 좌우된다면, 이는 경제가 망가지는 지름길일 것이다. 지난해 12월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과도한 정치와 이념이 경제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막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기업이 곧 국가"라는 건배사에 200%, 300% 동의하고 공감한다고 화답했다. 기업이 국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상 경제 상황이라면 딱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경제 여건이 좋을 때면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며 민간 주도, 시장 중심, 즉 기업주도 성장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비상 상황에 직면해 있고, 고금리·고물가 충격에 노출된 민생경제는 사실상 금융위기 수준이란 점이다. 국민이 어려울 때 힘이 되면 좋은 경제정책이지만, 그 틈새를 좌편향이나 우클릭이 파고들면 일순간에 정치와 이념에 병든 정책으로 변질된다. 민생대란의 위기를 뒤에 남겨 두고 정부가 시장주의 이념만 무한 반복하는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시장 실패를 경험하는 경제 주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데 시장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한다. 

이처럼 경제 상황과 괴리된 '선택적' 건전재정 신념과 민간과 시장 중심 이념은 모두 윤 정부의 친기업·친자본 편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법인세 인하,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상향 등 부자감세 뒷문을 활짝 열어놓고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한다. 민생경제는 건전재정 병증인 법인세발 세수펑크 공백을 메우느라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우리 경제가 유례없는 글로벌 복합위기에 직면했다 정색하면서도, 한편에서는 "上底下高(상저하고)·수출 회복"이나 OECD 35개국 중 2등과 같은 장밋빛 전망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정치가 경제 위에 군림하며 과도한 시장주의 이념을 주입하면, 배가 산으로 가기 마련이다. 우리 경제 곳곳에 스며든 과도한 정치와 철 지난 시장주의 이념을 뿌리째 뽑아내야 하는 이유다.

잘못된 상황 인식의 주범은? 

정부가 건전재정을 강조할 때는 맥락도 없이 글로벌 복합위기 등의 수사가 자주 등장하지만, 민간과 시장 중심의 경제 질서를 설명할 때는 경제의 역동성을 띄우는 낙관적인 전망이 자주 등장한다.

추경호 1기 경제팀의 근거 없는 '上底下高'(하반기 경기 반등) 전망은 결국 1.4% 안팎의 저성장 충격으로 막을 내렸다. 가계 실질소득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목전에 두고 있고, 1인당 국민소득도 2021년 3만5523달러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대로라면 저출산과 실질소득 감소의 협공을 받아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도 단지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2기 최상목 경제팀은 한술 더 떠 '역동경제론'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재부도 최근 수출 회복세 등에 힘입어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인다며 민간 주도, 시장 중심의 경제 체질개선에 나서야 할 적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경제의 역동(Reverse Shift)을 걱정해야 할 때다.

경제성장률은 2021년 4.3%로 강한 상승 복원력을 보여준 이후 2022년 2.6%, 2023년 1.4%(IMF 전망치) 등으로 성장 궤도가 저점을 낮추고 있다. 급기야 1%대 성장이 굳어지는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위기의 민생경제는 고금리·고물가 충격의 직격탄을 맞아 각자도생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다. 정부가 정치와 이념의 과몰입 상태에 빠진 게 아니라면 역동경제를 운운하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설명할 길이 없다.

시장주의 이념에 무너진 증권과세 체제
 
12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장보다 10.91포인트(0.42%) 오른 2,613.50으로 집계됐다.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11.45포인트(1.35%) 오른 859.79로 거래를 마쳤다.
 12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장보다 10.91포인트(0.42%) 오른 2,613.50으로 집계됐다.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11.45포인트(1.35%) 오른 859.79로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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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가 단행한 주식양도세의 대주주 기준 완화는 정치와 이념의 과몰입이 규제의 틀을 망가뜨린 대표적인 사례다. 대주주 보유 기준을 종목당 1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올리면, 과세대상 대주주가 1만3000명에서 4000명으로 대폭 줄어드는데, 투자자에 견주면 그 범주가 0.1%에서 0.03%로 좁혀지게 된다. 이 정도면 사실상 대주주 비과세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시행령 정치를 통해 밀어붙일 정도로 대주주 감세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 친자본 편향을 부정하기 어렵지만, 대선공약으로 이미 검증받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눈치 보며 좌고우면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태도다. 하여, 세수펑크 충격과 재정 악화를 감수하더라도 개인투자자(?)를 위해 2조 원 정도의 양도 세수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주주 기준 상향의 목적이 증시 수급 안정이든 대주주 감세든 부자감세임은 틀림없다.

먼저, 대주주 감세가 얼마나 확고한 대선공약인지 살펴보자.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선별 감세(세수의 원천은 대주주)인 '주식양도세 폐지'를 증권과세 공약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보편감세(세수의 원천은 개인투자자)인 '증권거래세 폐지'를 공약으로 발표했다가 막판에 다시 주식양도세 폐지로 급선회한 것이다. 따라서, 그 당시 국민은 무엇이 대선공약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일관되게 '증권거래세 폐지'를 중심으로 증권과세 체제를 재편해야 한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다시 돌아와서, 정부가 작전하듯이 대주주 감세를 단행함에 따라, 민주당을 중심으로 부자감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시행령 정치를 통해 법인세 뒤를 잇는 부자감세 2탄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부자감세에 매몰돼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부자감세가 아니라, 대주주 기준 상향이 주식시장 과세체제의 전체 틀을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주식시장 과세 제도, 얽히고설켜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ㆍ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윤 대통령, 2024 증시 개장식 축사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ㆍ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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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이념에 물든 주식시장은 크게 세 가지 갈래의 과세제도가 얽히고설켜 있다. 첫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주식양도세의 대주주 기준 상향이고, 그 다음은 진로가 불투명한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즉 주식양도세 전면 과세 도입이다.

2022년에 여야 원내대표가 예산안 부수 법안으로 세법개정안에 합의한 내용이다. 즉, 대주주 기준은 현행 10억 원을 유지하되, 금투세 시행은 2년간 유예해 2025년부터 정상화하기로 한 것이다. 금투세는 주식 양도차액 5000만 원 이상에 대하여 20~25%의 양도세를 부과하는 과세다. 만약, 2025년부터 금투세가 합의대로 시행된다면, 사실상 주식양도세 범주가 대주주에서 일반 투자자 전반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주식양도세는 병립하기 어려운 두 제도가 층계가 다른 형태로 혼재해 있는 상태다(윤석열 대통령이 1월 2일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법을 개정해야 가능한 사안이라 실제 적용 여부는 지켜봐야한다 - 기자 말).

주식양도세의 대주주 비과세 기준이 악법인 이유를 살펴보자. 주식양도세 전면 과세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매긴다는 조세정의에 부합하는 제도다. 그럼에도, 여야 합의대로 2025년부터 금투세가 시행된다면,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정치권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설 것이다. 공매도 혁신을 요구할 때보다 더 큰 조세저항에 부딪힐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하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금투세를 폐기하고 대주주 비과세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거의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일이다. 정리하자면, 주식양도세 문제는 대주주 선별 과세든 일반 투자자 보편과세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총체적 난관에 봉착해 있다.

여기에, 3중 과세체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증권거래세 문제까지 겹치면서 주식시장이 무질서하기가 복마전을 방불케 한다. 증권거래세는 투자자의 손익과 관계 없이 누구나 주식을 팔기만 하면 세금(2024년 0.18%, 2025년 0.15%)을 내야 한다. 일종의 통행세인 증권거래세는 조세정의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세수의 원천도 대주주가 아닌 일반 투자자가 그 대상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둘 중 하나를 포기해 중복과세를 해소해야 한다면, 2조 원 안팎의 대주주 양도세를 포기하고, 매년 10조 원 안팎의 거래세를 거둬들이는 것이 남는 장사다.

증권거래세 폐지하는 대신 금투세 취지 살려야

그렇다면, 정치와 이념을 뺀 제대로 된 증권과세 체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당연히, 유례를 찾기 어려운 다중과세 체제를 해소해 시장 참여 유인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외인 단타 시장으로 국내 증시를 장기투자 하기 좋은 시장으로 체질개선을 유도하는 것이다. 즉, 좋은 주식을 오래 들고만 있어도 돈이 되는 증시 환경조성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첫째, 큰 틀에서 주식양도세와 증권거래세 중 하나만 선택해 다중 과세체제를 해소해야 한다면, 통행세인 증권거래세를 폐지하는 것이 맞다. 국내 증시가 만성 발달 장애를 앓고 있는 이유는 공매도 등 투기성 외인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세를 폐지해 1400만 개인투자자가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내국인 투자자의 시장 지배력을 한 차원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곳간지기가 매년 10조 원 안팎의 거래 세수를 포기할 리 만무하다.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거래세에 포함된 농어촌특별세(0.15%)를 빼면 사실상 증권거래세는 폐지된 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투자자의 눈으로 보면, 이게 농특세든 거래세든 개인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세법 개정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즉, 증권거래세는 폐지하고, 농특세 문제는 농특세 사업계정에 주식양도세를 포함하면 된다. 증권거래세를 폐지한다 해도 이로 인한 세수 충격은 주식양도세를 통해 흡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둘째, 주식양도세는 대주주 주식양도세를 폐지하고, 금투세(주식양도세 보편과세) 체제로 통합해야 한다. 이 경우 모든 대주주가 과세대상에 포함된다. 다만, 금투세의 비과세 기준인 "양도차액 5000만 원 이상"을 상향해 일반 투자자를 더 두텁게 보호할 필요가 있다. 만약, 연 10%의 수익을 올리는 시장에서 금투세의 양도차액 기준을 양도세의 보유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5억 원 이상을 보유한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과세하는 셈이다.

물론, 이 경우 연말 대주주 물량 폭탄으로 증시가 폭락할 수 있다는 비판이 봇물 터지듯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대주주 봐주기 감세가 아니라 장기투자 유인책을 마련해 해결해야 한다. 오래 들고만 있어도 세금을 줄어드는 데 굳이 물량을 던질 이유가 없다. 따라서, 주식투자의 경우에도 부동산처럼 '장기보유 특별공제' 제도를 도입해 보유 기간에 따라 세금이 내려가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끝으로, 금융위기에 준하는 민생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민간 주도, 시장 중심"만 외치면, 이것이 바로 과도한 정치고 이념이다. 결국, 시장도 죽고 재정도 망가지는 대참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불필요하게 이것저것 손대기보다는 시장 실패를 조기에 감지하고 특단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화력을 집중할 때다. 글로벌 자산버블 붕괴 우려에 부동산발 경기충격, 자영업발 부채위기 등 정부가 맨발로 나서 진화해야 할 중대 위험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송두한은 국민대 특임교수(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입니다.


태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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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한 박사 ㆍ국민대학교 특임교수 ㆍ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ㆍ전) 농협금융연구소 소장 ㆍKDI 경제정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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