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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2020년 충남의 한 미용실에서 주 6일 하루 10시간여 일했지만 '프리랜서' 계약서상 근무시간은 주 5일 하루 6시간 근무로 돼있어 한달에 120만원, 총 1400만원 상당 임금을 체불 당한 이유진(38, 가명)씨. 이씨가 지난 11월 3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당시 계약서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9~2020년 충남의 한 미용실에서 주 6일 하루 10시간여 일했지만 '프리랜서' 계약서상 근무시간은 주 5일 하루 6시간 근무로 돼있어 한달에 120만원, 총 1400만원 상당 임금을 체불 당한 이유진(38, 가명)씨. 이씨가 지난 11월 3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당시 계약서를 보이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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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38, 가명)씨는 "평생 굶어 죽진 않는다"는 아버지 권유로 서울의 한 실업계고등학교 미용과에 입학해 고등학교 3년 내내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교 끝나자마자 오후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다섯 시간씩 일하면서 월 35만 원을 받았다. 2001~2003년 일이다.

이씨는 고3 때 미용사 국가자격증을 땄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서울 압구정동, 성수동, 신촌의 미용실에서 수년간 스텝으로 경력을 쌓았다.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12시간 일했고, 월급으로 50~60만 원을 받았다. 2004~2009년 사이 일이다.

그러다 스물 다섯 나이에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았다. 첫째가 태어난 2010년 이후 이씨 경력이 끊겼다. 8년 넘게 육아를 하던 이씨는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거주지인 충남 A시 주변에서 다시 미용실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어느새 30대 중반인데다 경력이 단절됐고 아이가 둘 있다고 하면 취직이 안됐다".

어렵게 취업이 된 곳이 충남 A시 내 B미용실이었다. 원장 한 명과 '인턴' 2명, 총 세 명이 일하고 고객용 의자가 세 대 있는 10평 남짓한 동네 미용실이었다. 이씨는 경력이 있었지만 다시 '인턴'으로 들어가야 했다. 주6일 하루 10시간 이상 일해 월급 110만 원을 받았다. 2019~2020년 일이다.

경력 단절 미용사가 받은 첫 월급 110만원
  
이유진(38)씨가 지난 11월 30일 충남 아산시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이유진(38)씨가 지난 11월 30일 충남 아산시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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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씨가 B미용실과 맺은 계약서가 문제였다. 미용실은 이씨와 근로계약서를 쓰면서 동시에 '프리랜서' 계약을 요구했다. 통상적인 사용자-근로자 관계라면 근로계약서를 쓰고, 사용자로부터 업무지시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 개인사업자라면 프리랜서 계약을 맺기 때문에 본래 두 계약은 양립할 수 없다. 이씨는 "계약서상 근무시간도 월~금 주5일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돼있었지만, 실제로는 월~토 주6일 오전 9시 4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일했다"고 했다. 계약서엔 교육비로 50만원, 식비로 30만원을 공제한다고도 써있었다. 임금 부분은 공란이었다.

미용실은 손님이 많으면 하루 20명, 한달 600명까지 될 정도로 바빴다고 한다. 화장실도 매번 남성 원장의 허락을 구하고 가야 했을 만큼 업무지시와 지휘감독이 엄격했다. 이씨는 참느라 방광염에 혈뇨까지 앓았다고 했다. 마감에 임박해 파마 손님이 오면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저녁 9시 30분에 일을 마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일해 이씨가 2019년 10월 받은 첫 월급은 110만원. 원장이 계약서에 기재된 '주5일, 하루 6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지급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씨가 실제 일한 '주6일, 하루 10시간 근무'를 2019년 당시 최저임금 8350원으로 계산하면 월 230만원은 받아야 했다. 월 120만원 상당의 임금을 못 받은 셈이다.

2019년 9월 입사한 후 1년을 버틴 이씨는 결국 2020년 10월 B미용실을 그만뒀다. 퇴사 후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에 진정을 넣었지만, 퇴직금 명목으로 220만 원 정도를 더 받았을 뿐 임금 차액분은 받지 못했다. 이씨가 1년간 일하면서 받지 못한 임금을 계산하면 1400만원에 이른다. 이씨는 지난 8월 노동청에 다시 진정을 낸 상태지만, 체불 임금 대부분 이미 소멸시효 3년을 넘겨 1400만원 중 300만원 정도만 남았다. 근로기준법 49조에 '임금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돼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 조항을 알게 된 이씨는 "내 돈이 사라졌다는 게 너무 허무했고 누구 하나 이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화장실도 못 가 방광염에 혈뇨… 이게 프리랜서인가"
  
이씨가 지난 2019~2020년 사이 일했던 미용실의 원장이 '인턴' 직원들에게 오전 9시 40분까지 출근하라고 지시했던 메시지를 찾아 보여주고 있다.
 이씨가 지난 2019~2020년 사이 일했던 미용실의 원장이 '인턴' 직원들에게 오전 9시 40분까지 출근하라고 지시했던 메시지를 찾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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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청년유니온의 첫 실태조사 이후 프리랜서 계약으로 위장한 미용업 종사자들의 근로자성 문제가 대두됐지만, 10년이 지나도록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지난 3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두발 미용업 종사자는 총 15만 1800여 명에 달한다.

이씨는 현재 수천 만원 빚을 내 충남 아산시에 미용실을 차리고 종업원 없이 홀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인턴 형식으로 착취당하는 걸 더 견딜 수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제 숍을 냈다"고 했다. 이씨를 지난 11월 30일 아산시에서 만났다.

- 2019년 B미용실과 맺은 계약서를 보면 '프리랜서'라고 적혀있다.

"표준근로계약서 뒷면에 '프리랜서 근무'라고 적어야 했다. 원장님이 종이를 주면서 그대로 베껴 쓰라고 하셨다. 당시 상황을 녹음까지 해두셨던 것 같더라. 실제론 프리랜서가 아니었다. 프리랜서면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야 하지만, 매장 안에서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원장님의 지시와 통제 속에 이뤄졌다.

정말 창피한 얘긴데, 오죽하면 화장실도 제 마음대로 못 갔다. 매장이 바쁘면 원장님은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이따 가라고 하셨다. 하도 참아서 방광염이 생겼고 심해져서 혈뇨까지 갔었다. 생리대 갈 시간도 없었다. 하루는 남성인 원장님께 '제가 오늘 그날이라 화장실을 좀 자주 가야 될 것 같다'고 미리 말씀드렸더니, 나중에 따로 부르셔서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냐, 화장실 가고 싶으면 더 빨리 움직이라'고 하셨다. 이런 게 프리랜서인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4대 보험은 당연히 안 됐고 계약서에 식비 30만원, 교육비 50만원이 공제된다고도 써야 했다. 그땐 법을 몰라서 이게 이상한 계약서라는 걸 몰랐다. 설사 부당한 계약서라는 걸 알았다 해도 그때로선 선택지가 없었다. 출산 후 육아와 함께 찾아온 경력 단절, 그리고 나이가 좀 있다는 이유로 다른 미용실들은 취업이 어려웠으니까. 원장님은 대놓고 이런 말까지 하셨다. '아줌마들은 배우고 싶어도 취직이 어려워서 90만 원만 줘도 일해. 왜? 간절하니까.'"

- 실제로 월 90만 원만 주는 경우도 있었나.

"있었다. 저는 그래도 과거 경력이 있다 보니 월급이 10만원씩 두 번 정도 오르긴 했지만, 저를 제외한 나머지 한 명 인턴 자리는 1년 동안 3명이나 바뀌었다. 그 중 한 명은 20대 중반의 아이 둘 가진 애기 엄마였고, 나머지 두 명은 40대 중후반의 여성들이었다. 40~50대 여성들이 뒤늦게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미용실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이유는 거의 다 똑같다. 남편 퇴직이 가까워오면서 안정적인 소득을 궁리하다 미용 일을 생각하는 경우다. 노후 대비용이다.

인턴으로 들어오셨던 40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면접을 보러 처음 숍에 오셨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면접을 끝낸 아주머니가 매장 밖으로 나가자 원장님이 저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월급 90만원만 주기로 했다'고. 아줌마들은 이만큼만 줘도 된다고. 나이가 많아서 어차피 딴 데 갈 곳도 없다고. 그런 간절함들을 악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숍에서는 부당하게 프리랜서 계약서를 써놓고는 변호사 등을 통해 공증까지 받는다고 들었다."

"남편 퇴직 걱정에 미용실 '인턴' 기웃대는 40~50대 여성들"
  
이씨가 미용실에서 쓰는 가위를 잡고 있다.
 이씨가 미용실에서 쓰는 가위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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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약서에 근무시간은 낮 12시부터 저녁 6시까지고 토요일, 일요일은 쉰다고 명시돼있다.

"전혀 아니었다. 미용실 자체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였다. 휴무일인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40분에 출근했다. 전날 썼던 파마 기구들부터 정리하고 거울 닦고 바닥을 쓴다. 손님들에게 나가는 일회용 테이크아웃 컵에다 얼음을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놓고, 커피나 스낵도 준비한다.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샴푸도 하고 염색약도 바르고 파마도 말았다.

원장님이 커트를 하시면 인턴 한 명이 샴푸를 하고 다른 인턴은 원장님 서브를 본다. 손님 얼굴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털어드리고 찾으시는 게 있으면 갖다 드린다. 한 인턴이 샴푸를 하고 머리를 말리는 동안 원장님 커트가 끝나고, 다른 인턴이 그 다음 샴푸에 들어간다. 이렇게 공장 돌아가듯이 쉴새 없이 반복이다. 네다섯 시간 동안 한 번도 못 앉고 서서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마감 시간인 저녁 8시에 가게 문을 닫으려면 일하는 틈틈이 뒷정리를 해야 했고, 저녁 6시 이후엔 파마 손님을 받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6시 넘어 파마 손님이 오시면 원장님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인턴들에게 '오늘 좀더 일할 수 있지?'라고 하셨다. 집에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이었던 아이들이 엄마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린 애들이 엄마 없이 매일 저녁 스스로 밥을 차려 먹어야 했다는 게 아직까지 미안하다."

- 계약서상엔 '지정된 시간 외 근무는 하지 않고, 근무 외 시간은 교육 시간에 포함된다'고 적혀있다.

"실제론 그런 구분도 없었고 다 똑같은 근무시간이었다. 소규모 미용실이었지만 하루에 손님이 20명도 왔고 한달에 650명까지 받은 달도 있었다. 간단한 커트 손님이면 한 명당 20~30분이면 끝나기도 하지만, 염색만 해도 1시간 반, 파마는 2시간, 열펌은 3시간 반까지 걸린다. 인턴 둘 없이 원장님 혼자선 절대 처리할 수 없는 양이다.

바쁜 날은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오후 3~4시에 점심을 먹기도 했다. 그나마도 주변 중국집이나 분식집에서 배달을 시켜 5~10분 안에 흡입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서있어야 했다. 빈 속에 일하다 보면 오후 1~2시만 돼도 배에서 자꾸 천둥이 쳐서 옆에 앉은 손님들이 오히려 괜찮느냐고 미안해 했다."

"조직된 단체 없어 목소리도 못내… 착취 그만해야"
   
이씨는 계약서상 '프리랜서'라고 돼있지만 실제로는 원장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근로자와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거나 파마, 간단한 커트, 염색하는 일 등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이씨는 계약서상 '프리랜서'라고 돼있지만 실제로는 원장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근로자와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거나 파마, 간단한 커트, 염색하는 일 등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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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미용실들도 비슷한 사정인가.

"그렇다.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 했던 것까지 합하면 총 여섯 군데 숍을 거친 것 같다. 지나고 보면 대우가 좋아지긴 했다. 고등학생 때 학교 끝나고 오후 4시부터 밤 9시까지 다섯 시간씩 일할 땐 한달에 35만원 받았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자격증 딴 뒤로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 일하면서 50만~60만원 받았으니까. 지금은 '인턴'이라고 하지만 그땐 주로 '스텝'이라고 많이 불렀다. 심지어 그때 스텝들은 원장님이나 선배들 밥까지 차려 올려야 했다.

아이들 키우고 거의 10년 만에 다시 미용 일 알아보면서, 하루 10시간 근무하는 인턴이 90만~100만원 받는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그래도 많이 올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경력이 단절된 애 엄마들이, 남편 퇴직 걱정 하는 아주머니들이, 이제 갓 스무살 넘긴 젊은 사람들이 최저임금의 절반밖에 못 받고 방광염까지 참으며 일하는 걸 다시 보면서 그제야 알겠더라. 이건 그냥 착취구나. 나도 이런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되겠구나.

우리 업계는 아직도 '내 미용 기술이 새어나가는 거니까 임금도 안 주고 부려 먹어도 괜찮다'는 마인드가 있다. '왜 날로 배우려 하냐'는 얘기도 많이 한다. 하지만 미용만 그런가? 공장이든 사무직이든 신입들이야 처음이니 모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경험 있는 선배들에게 배워가며 일하는 게 순리 아닌가. 그리고 '인턴'이든 '스텝'이든 신입들이 진짜 '날로 배우나'? 제일 힘들게 몸 갈아서 일한다.

그런데도 미용실 인턴들은 뿔뿔이 흩어져있고 단체나 조직도 없어서 목소리를 못 낸다. 요즘은 원장들이 구색 맞추려고 임금을 제대로 준 다음 교육비 명목으로 수십 만원씩 현금으로 페이백을 받는다고도 하더라. 사실은 인력이 필요해서 쓰는 거면서 기술 배워간다고 돈 떼 먹는 식이다.

아직까지 제겐 너무 먼 얘기지만, 제 가게가 잘 되고 손님들이 많아져서 직원을 고용하게 된다면, 나한테 남는 게 적더라도 드릴 몫은 다 드릴 거다. 내가 당했다고 나도 똑같이 한다면 끝이 없지 않나. 적어도 일해놓고 돈 못 받는 일 같은 건 더 없었으면 좋겠다. 정부나 노동청도 동네 미용실 정도라고 외면하지 말고 이런 피해를 좀더 제대로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태그:#미용실, #인턴, #프리랜서, #근로자, #임금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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