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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골짜기는 고요하다

창문을 열자 싸늘한 바람이 훅 넘어온다. 앞 산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 여기가 골짜기임을 알려준다. 초겨울이 찾아온 골짜기는 고요하지만 벌써 혹독한 겨울이다. 언제나 떠들썩하던 이웃집 닭도 입을 다물었고 작은 새소리도 놓치지 않는 동네 지킴이도 입을 닫았다. 걸걸한 목소리로 호령하던 도랑물도 몸이 쇠잔해져 가느다란 숨소리만 내는 골짜기다. 초겨울이 찾아온 골짜기는 벌써부터 겨울 준비로 부산했다.

봄이면 파란 새싹이 올라오기 전부터 북적이는 동네다. 작은 도랑을 따라 길게 늘어선 전원주택가, 1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작은 동네다. 아침부터 동네 모습이 궁금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던 골짜기다. 좁은 도로를 간신히 지나야 해서 불편해도 찾아온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곤 한다. 서서히 여름이 가고 가을이 깊어지면서 동네는 겨울 속으로 빠져들며 동네 모습이 달라진다. 초겨울 골짜기임을 고요함이 먼저 알려주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고, 아침 닭 울음소리가 잦아들며 간간히 오고 가는 택배 차량만이 고요함을 흔들어 놓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동네를 호령하던 고라니도 자취를 감추었다. 앞산을 놀이터 삼아 뒤뚱대던 고라니는 밤이면 님을 찾아 울어댔다. 처절하리만큼 절절한 소리는 오간데 없고, 간간히 먹이를 찾는 산고양이만이 동네를 오고 간다. 초겨울이 서서히 찾아오면서 겨울준비를 위해 골짜기는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겨울이 찾아 온 골짜기는 고요하지만 겨울을 준비로 부산하다. 동물들을 돌봐야 하고 집안을 손봐야 하며, 기나긴 겨울 준비를 해야해서다.
▲ 초겨울 속 골짜기 풍경 초겨울이 찾아 온 골짜기는 고요하지만 겨울을 준비로 부산하다. 동물들을 돌봐야 하고 집안을 손봐야 하며, 기나긴 겨울 준비를 해야해서다.
ⓒ 박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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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골짜기 모습이 변한다

기나긴 무더위보다는 추위가 반가웠다. 혹독한 추위도 버틸 수 있었음은 젊음이었다. 선풍기와 에어컨은 듣도 보도 못한 시골살이에 더위보단 추위는 언제나 만만했다. 운동으로 가능했고 부지런함으로 떨쳐낼 수 있었다.

추위가 힘들다는 어머님을 이해할 수 없던 젊음이었다. 서서히 세월이 지나며 추위가 실감 나는 계절이니 혹독한 추위가 두렵고도 견딜 수 없는 몸이다. 초겨울이 찾아온 골짜기는 사람보다 봐줘야 할 것이 많다. 일 년을 같이 해온 식구들을 돌봐야 해서다.

우선은 야외 수도를 감싸 주어야 한다. 부직포로 감싸고 끈으로 묶어 고정해야 겨울을 버틸 수 있다. 몇 년째 붉은 홍시를 기대하는 감나무도 겨울을 감내하기 어렵다. 혹시나 한파가 몰아치면 푸른 잎새마저 구경도 할 수 없으니 월동 준비를 해줘야 한다. 

몇 년째 몇 알만을 건네주는 대추나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해발 300고지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겨울을 버텨내는 고단함으로 갚아야 한다. 골짜기의 겨울모습은 봄을 기다리는 식구들이 몸을 숨겼다. 

도랑가에 자리 잡았던 황금낯달맞이꽃이 몸을 잔뜩 움츠렸다. 황금빛으로 동네를 빛내주던 아름다운 달맞이꽃, 어느새 잎은 수그러들었지만 아직은 파랑이다. 고집스러운 푸름에 찬 서리를 버티고 있다.

뒤뜰을 장식했던 황겹매화도 겨울준비 끝을 냈다. 축 늘어진 가지지만 푸른 핏줄이 성성한 황겹매화, 올 테면 와보라는 기세로 추위와 맞서고 있음이 새봄을 기다리는 눈빛이다. 푸름은 텃밭에도 남아 있어 아내가 뿌려 놓은 시금치다.

구수한 된장에 어울리고 살짝 데쳐 간장과 만난 맛이 대단했던 시금치다. 골짜기에 내린 서리를 얹고 햇살을 기다리는 시금치가 추운 겨울을 실감하게 한다. 추운 날씨에 견딜 수 없는 인간은 온몸으로 맞이해야 했다.

엉거주춤한 몸짓은 몸놀림마저 힘겹고 움직임이 머뭇거리는 세월이 된 지 오래다. 한 겨울을 버티려면 체온을 지켜야 하고 방한을 해야 한다. 여기엔 감당하지 못할 돈이 오고 가야 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시골살이의 서러움을 한껏 느껴야 하는 골짜기다.
 
골짜기에는 한겨울 추위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장작을 패야하고 기름통을 채워야 하며, 바람을 막아야 한다. 골짜기에서 장작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 겨울준비 골짜기에는 한겨울 추위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장작을 패야하고 기름통을 채워야 하며, 바람을 막아야 한다. 골짜기에서 장작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 박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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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준비는 완벽해야 했다

부지런한 이웃은 벌써부터 겨울을 준비했다. 우선은 지킴이 집을 보수했다. 두터운 부직포로 집을 둘러 집을 지킨 보답을 한 것이다. 일 년 내 아침을 알려주며 먹거리를 주던 닭들도 있다. 추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닭들이 안쓰러워서다. 두터운 부직포로 닭장을 둘러치고, 곳곳에 바람을 막았으니 이미 겨울 준비는 끝을 맺었다. 사람들의 겨우살이는 한층 복잡한데, 추위를 막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다.

둔탁한 트럭 소리가 들려옴은 겨울이 왔음을 알려준다. 큰돈으로 주문한 장작용 나무를 실은 트럭이 올라오는 소리다. 굵직한 참나무를 마당에 쏟아 놓으며 고요한 골짜기를 깨워 놓는다.

톱소리가 들려오고 장작 패는 소리가 골짜기를 메운다. 겨우내 추위를 막아줄 땔감을 준비하는 골짜기의 풍경이다. 아버지가 할 수 없음에 아들이 와야 했고, 기어이 사위까지 동원되는 일 년의 거대 행사다. 골짜기 겨울준비는 고단함을 마다하면 대가가 필요하다.

기름을 넣어야 하고 가스의 힘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엔 리터당 700원 정도 하던 보일러유는 어느덧 1400원이 훌쩍 넘었다. 한 드럼이라는 200리터가 14만 원에서 28만 원이 되었으니 작은 추위는 견뎌내야만 한다. 오가는 중에 주유소마다 눈이 가는 이유다.

올 겨울은 얼마의 난방비가 있어야 할까? 기 십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팍팍한 시골살림의 어려운 점이다. 기름값이 폭등했고 가스값이 그러하며, 전기요금이 대폭 올랐으니 어렵기만 한 골짜기의 삶이다. 
 
골짜기의 한겨울 추위는 혹독하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장작을 때야하고 보일러를 가동해야 한다. 초겨울 골짜기에서 만난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추위를 막아내기 위한 모습이다.
▲ 연기나는 마을 골짜기의 한겨울 추위는 혹독하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장작을 때야하고 보일러를 가동해야 한다. 초겨울 골짜기에서 만난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추위를 막아내기 위한 모습이다.
ⓒ 박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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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해도 움직여야 한다

밝은 햇살이 산을 넘은 아침, 불쑥 솟은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난다. 소박한 초가지붕이 연상되는 모습이지만 어림도 없다. 초가지붕 위로 감나무가 있고 소박한 까치밥이 바람에 흔들린다. 초가지붕 위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은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하얀 연기는 골짜기 초겨울 추위를 막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고단한 운동으로 추위를 떨칠 수 있던 세월은 지나갔다. 늙을 줄 몰랐던 몸뚱이가 세월을 이길 수 없어서다. 언제나 성성할 줄 알았던 몸뚱이는 움직임이 서투르고 이내 무릎도 골을 부린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신음 소리가 어쩐지 낯선 겨울이다. 비싼 기름값도 만만치 않고, 전기요금도 쉬이 넘길 수 없는 세월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겨울을 넘길 수 있는 방법은 적당한 운동이다. 탄탄한 근육은 보여주려는 것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느닷없는 위험에 몸을 지탱하며 버티는 힘은 근육만이 할 수 있다. 

오르지 내 몸을 지켜줄 수 있는 버팀목이다. 탄탄한 근력으로 건강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초겨울 추위가 어슬렁거려도 체육관으로 가야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찬 바람이 찾아온 골짜기는 고요한 겨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 처음으록 게재하는 글이다.


태그:#초겨울, #골짜기, #겨울준비, #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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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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