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18년간 가장 노릇을 하던 아내. 대학원 석사 시절에 결혼해서 박사, 강사를 거쳐 유럽 대학 교수가 되어 떠난 남편.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를 넘어 일 년에 서너 번 보는 롱디 부부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
남편이 '연습'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냈다. 본문은 없었다. '이게 뭐야?' 물으니 학교 소속 메일 계정이 생성되었다고 한다. 직책과 학교 로고가 들어간 서명이 메일 끝에 들어가도록 설정을 했는데 그게 잘 표시되는지 봐달라고 보낸 거였다.
"아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다시 수정해서 보냈다고 카톡이 왔다. 이번에는 보였다. 선명한 학교 로고, 소속 단과대학과 직책.
서명 3줄을 적기까지
서명에 기재된 Faculty(교수진)라는 단어를 보니 오랫동안 남편이 강사로 재직했던 학교의 홈페이지에 실린 같은 과 교수님들의 사진을 보면서 느꼈던 부러움, 남편은 언제 교수가 되나 막막했던 마음, 다음 학기에 또 수업을 맡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늘 도사리고 있던 불안함 같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말했다.
"메일 끝에 이 서명 3줄을 적기까지 참 오래 걸렸네. 고생 많았어."
그가 말했다.
"그러네. 당신도 고생 많았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실감은 사무실에 앉아 회사의 서류를 검토하는 8시간의 업무 시간이 아니라 출입증 카드를 회사 건물의 보안 출입구에 댔을 때 초록불과 함께 유리문이 열리는 순간 더 강렬하게 경험하는 게 아닐까 하는.
집을 계약했을 때도 그랬다. 저기서 살고 싶다고 오래 생각만 하고 있었던 아파트 단지에서 드디어 살게 된 것을 실감했던 때는 무사히 잔금을 치르고 부동산에서 계약을 마무리했던 순간이 아니었다. 인테리어를 끝내고 이삿짐을 들이던 순간도 아니고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을 때였다.
종량제 쓰레기통을 열 수 있는 카드를 기계에 태그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의 뚜껑이 열리는 순간, 내가 계약서를 쓰고 그 돈을 치러서 산 것은 이 단지의 음식물 쓰레기 배출 카드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인간이란 긴 시간 넓은 공간에 스며들어 있는 경험보다 손에 잡히는 뭔가, 눈에 보이는 뭔가를 매개로 응축된 것에 더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작고 사소한 어떤 것이, 크고 중요해서 한 번에 파악할 수 없는 본질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회사에서 매일 워크로그라는 것을 쓴다. 누가 나에게 어떤 업무를 의뢰했고 그 일을 다 하는데 몇 시간이 걸렸는지 하루 8시간의 업무시간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그 기록은 나에게 업무를 의뢰한 팀에 내 인건비를 청구하는데 쓰이기 때문에 매달 마지막 날이 되면 그 달 치 워크로그도 작성이 완료되어야 한다.
매일 업무 일지에 누구에게 의뢰 받은 어떤 일을 몇 시간 했는지 써뒀다가 월말이 되면 한 달 치 워크로그를 업데이트하는지라 월말이 되면 슬슬 스트레스가 차오른다.
엄밀히 따지자면 회사 일을 하는 것이 본질이고 한 일에 대한 워크로그를 쓰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지만, 월급은 이 워크로그에 적힌 결과에 따라 정산되니 어떨 때는 회사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한 일에 대한 워크로그를 쓰고 월급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워크로그를 쓰기 싫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면 이게 내가 매일 하는 일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말자고 자기 최면을 건다. 이거 쓸 시간에 일을 더 하거나 쉬는 게 나은 거 아닌가 생각하며 워크로그를 쓴 지 몇 년 만에 내린 결론이다.
어차피 해야하는 일인데 불평을 하느라 내 스스로가 브레이크를 걸어가며 동시에 액셀을 밟으며 나아가려고 하는 것 같은 엇박을 냈구나 깨달았던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소한 것에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게 정성을 들인다. 아마도 부차적이고 작은 일로 치부되는 것들이 사실 본질적이고 거대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악마는 혹은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 게 결국 그런 뜻인가 싶기도 하다.
겪어봐야 아는 것들
남편도 'faculty(교수진)'라는 타이틀을 걸고 일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적응하는데 정신이 없는 와중이다. 수업도 해야 하고 학생들 상담에 논문지도도 해야 하고 자기 논문도 써야 하고 학회에서 발표도 해야 하고 그 외 대외적인 자리에 참석해야 할 때도 왕왕 있었다.
왜 지도교수님이 새벽에 연구실에 나와서 남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하루치 공부를 끝내놓는다고 했는지 이제 알겠다고 남편은 혀를 내둘렀다. 그도 앞으로는 수업과 연구논문이라는 본질을 더 잘 해내고, 잘 한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스트레스 받아가며 해야할 것이다.
연구를 부지런히 하고 논문을 써서 학회 발표를 잘 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하다가 학회 참석 비용 정산을 하려고 영수증에 풀칠을 해야할 때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은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오래 무탈하게 하려면 사소하다고 폄하하는 일들이 사소하지 않음을,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하는 치타를 떠올리며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인터넷 비용 내는 걸 까먹어서 집 인터넷이 끊어졌다는 남편 얘기를 들으니 이 생각이 근거 없는 걱정은 아닌 것 같아 더 걱정이지만, 멀리서 잔소리를 하면 뭐하나 싶어 입을 닫는다. 그런 일들을 여태 누가 했는지 알겠느뇨?라는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오는 건 막지 못했지만 곧 덧붙였다.
"인터넷이 끊어져서 당황했겠다. 은행 계좌도 만들었으니 자동이체를 걸어두면 되겠다."
"응, 그래야겠어."
예전에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보아야만 아는 내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찍어 먹어보고 알게 된 것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찍어 먹지 않고도 알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잔소리가 되고 비난이 되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똥이든 된장이든 자기 몫만큼 찍어 먹어서 알아낸 것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지켜보며 응원해주는 게 내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외국 생활을 하며 새로운 일에도 적응해야 하는 남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이리 저리 생각해 보아도 결국은 '말을 예쁘게 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요즘이다. '당신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 '내가 당신을 걱정해'라는 진심은 예쁜 포장지에 싸서 건네야 온전히 받아들여질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나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