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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세컨드 하우스를 갖는 것이 로망이다. 특히 퇴직하신 분은 텃밭이 딸린 세컨드 하우스를 갖고 싶어 한다. 나도 그렇다. 강원도에 친정 엄마가 사시던 집이 있다. 우린 그 집을 팔지 않고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내려가기에 조금 멀지만,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어서 든든하다.

대학교 동창이고 첫 발령 동기인 친구가 퇴직하고 가평에 세컨드 하우스를 구입하고 텃밭을 가꾸며 산다. 서울에 집이 있고 손주도 돌봐야 해서 세컨드 하우스에는 주로 주말에 내려간다고 한다. 첫 발령 동기인 친구 네 명은 지난 8월에 그동안 이야기로만 들었던 친구의 세컨드 하우스를 찾아갔다.
 
텃밭에서 딴 채소를 봉지에 담아주어 가지고 왔다.
▲ 친구의 세컨드 하우스 텃밭에서 딴 채소를 봉지에 담아주어 가지고 왔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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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이라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다. 평일인데 길이 조금 막혀서 1시간 30분 정도 걸려 도착하였다. 위치도 큰 도로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워서 접근성도 좋았다. 세컨드 하우스는 그리 크진 않았지만, 가족이 와서 지내고 가기엔 딱 좋았다. 가끔 손님이 찾아와도 1박 정도는 하고 갈 수 있도록 방도 2개다. 차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아늑한 다방도 있었다. 마당에는 텃밭이 있어 오이와 방울토마토, 상추, 양배추 등이 심겨 있었다.

방문한 날 점심은 나가서 먹자고 했는데, 친구가 텃밭에서 따온 채소로 훌륭하게 차려 놓았다. 가지나물, 호박볶음, 고구마순 볶음 등 나물과 미리 만들어 놓은 장아찌 등 정말 꿀맛이었다. 풋고추와 상추, 당근 등 말 그대로 건강 밥상이었다. 거기다 토종닭 백숙까지 먹고 나니 내 몸이 건강해진 기분이 느껴졌다.

친구와 남편이 가꾸는 텃밭을 보러 갔다. 텃밭은 집에서 내려다 보였는데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넓었다. 마을의 어르신 밭인데 그냥 농사 지으라고 분양해 주신 거라고 했다. 시골의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텃밭에는 고추와 고구마, 땅콩이 제법 많이 심겨 있었다. 양쪽 자투리땅에 들깨와 옥수수가 심겨 있었다.
 
여름 햇빛을 받아 잘 자라고 있다.
▲ 친구의 땅콩밭 여름 햇빛을 받아 잘 자라고 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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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간 친구가 "나, 고춧가루 예약할게" 하니 또 다른 친구가 "난, 땅콩" 한다. "나도 땅콩" 이렇게 마음으로 농사가 잘 되길 함께 기원했다. 지난주에 친구가 땅콩 수확하는 사진을 올렸다. 땅콩을 캤다며 주문하라고 했다.

초보 농사꾼 친구는 땅콩을 수확하며 들떠 있었다. 나는 깐 땅콩 5킬로그램을 주문했다. 큰아들, 작은아들과 시누이네까지 나눠 먹으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땅콩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했다.
 
더운 데 땅콩을 수확하고 말리는 장면이다
▲ 땅콩 수확하는 모습 더운 데 땅콩을 수확하고 말리는 장면이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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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가 다시 문자를 올렸다.

"땅콩이 마르고 나니 수량이 얼마 안 되네......ㅎㅎ 초보 농부라 의욕만 앞서서…… 땅콩 깔 시간도 없어서 이번 판매는 힘들겠네."

기다렸는데 어쩔 수 없었다. 실망이 많이 되었지만, 내년에는 농사가 잘 되어 맛있는 땅콩 많이 수확하라고 덕담을 해 주었다.

사실 친구가 작년에 발목을 다쳐서 철심을 박았는데 요즘 입원해서 철심 빼는 수술을 했다고 한다. 2주 정도 기다렸다가 실밥만 풀면 된다고 했다. 치료가 잘 되어서 다행이다. 땅콩 깔 시간이 없었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건강 챙기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에는 모두 공감하기에 건강 잘 챙기라고 응원하였다.

땅콩 일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이가 드니 포기도 빠르고 지난 것은 바로 잊어버린다. 그런데 알림이 울리고 친구가 쉬면서 땅콩을 조금 깠다며 맛이나 보라고 조금 보내준다고 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주소를 보냈더니 다음 날 땅콩 2킬로를 택배로 보내왔다.
 
친구가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보내준 땅콩입니다.
▲ 택배로 보내온 땅콩 친구가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보내준 땅콩입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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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농사꾼의 정성이 보였다. 정성 들여 포장한 땅콩을 받으니 마음이 심쿵했다. 한 알 한 알 까느라 고생이 많았겠단 생각이 드니 고마움이 밀려왔다. 봄부터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까지 얼굴도 까맣게 타며 지은 농사라서 보내준 땅콩이 소중한 보물 같았다.

땅콩은 알도 굵고 실했다. 소분해서 포장을 해 주어 한 봉지씩 볶아 먹으면 되겠다. 마침 금요일 저녁에 작은아들이 쌍둥이 손자를 데리고 왔다. 땅콩이 도착하면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었다. 한 봉지를 프라이팬에 넣고 친구가 알려준 대로 중불에서 약 10분 정도 노릇노릇하게 볶았다.
 
(좌) 볶기 전 땅콩 / (우) 볶은 후 땅콩
▲ 껍질 깐 땅콩 (좌) 볶기 전 땅콩 / (우) 볶은 후 땅콩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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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레인지에 10분으로 타이머를 맞추고 타지 않도록 중불로 볶았다. 보기에도 잘 볶아진 것 같았다. 땅콩이 식은 후에 먹어 보니 정말 고소하고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땅콩은 처음인 듯 자꾸 손이 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에 작은아들이 축구 중계를 시청하며 땅콩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신 것 같았다. 남편도 작은아들도 땅콩이 맛있다고 한다. 고생한 친구 덕에 맛있는 국산 햇땅콩을 먹을 수 있었다. 농사짓는 일이 힘든 일임을 알기에 친구가 고마웠다. 다시 한 봉지를 볶아서 식은 다음에 지퍼백에 담아서 아들 갈 때 보냈다. 며느리랑 맛있게 먹으면 좋겠다.

나도 작년 8월 말에 퇴직하였다. 퇴직한 지인 중에 강화도, 양평, 가평 등에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하신 분이 여럿 있다. 가끔 초대 받아 가보면 정말 좋다. 일주일 중 본가에서 며칠 지내고, 형편에 따라서 주중이나 주말에 세컨드 하우스에서 지내면 지루하지 않고 사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지인 덕에 가끔 힐링하는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내년에는 친구가 땅콩 농사를 많이 지어 더 많은 땅콩을 주문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친구도 농사 2년 차가 되니 올해보다는 잘하겠지.

"고생 많았다, 친구야! 맛있게 잘 먹을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발행될 예정입니다.


태그:##세컨드 하우스, ##초보 농사꾼, ##땅콩, ##국산 땅콩, ##땅콩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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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교원입니다. 등단시인이고, 에세이를 씁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기사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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