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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이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오천시장을 현장 방문했을 당시 모습. 윤 대통령 오른쪽에 서 있는 이가 임성근 해병대1사단장이다.
 2022년 9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이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오천시장을 현장 방문했을 당시 모습. 윤 대통령 오른쪽에 서 있는 이가 임성근 해병대1사단장이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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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사한 해병대 수사단은 왜 임성근 해병1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보고 관련 내용을 적시해 경찰로 넘겼을까? 이 물음은 사건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의문이다.

안전 장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포병여단 병력이 하천으로 투입됐다가 채 상병이 급류에 휘말려 숨진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바로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가 있었는가'와 '그 지시는 누가 내렸는가'하는 점이다.

임성근 사단장은 "(자신은)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음에도 물에 들어가라고 지시한 간부의 작전 개념이나 상황 인식이 문제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단장이 명시적 입수 지시를 내렸는지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채 상병이 숨지기 하루 전인 7월 18일 오후 임 사단장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가리키며 '가슴장화'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관련기사: 채 상병 사고 전날 해병1사단장, 손짓으로 '가슴장화' 언급 https://omn.kr/25saj).

수색 첫날부터 난감해했던 대대장들

사실 이날 아침 포병대대 장병들이 실종자 수색 작전에 나서기 전 현장 정찰을 한 포병대대장들은 수변 일대 수색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난감해했다. 포병대대장들의 단체 채팅방에는 "수변일대 수색이 겁납니다. 물이 아직 깊습니다. 사진 보내 드려 보겠습니다(포7대대장)", "이거 정찰을 어떻게 할지... 도로 정찰해야 할지 완전 늪지대처럼이라 하루 1km도 힘들겠다(포11대대장)"는 글이 올라왔다.

특히 포병대대장들 중 선임인 포11대대장은 이후에도 "내일은 사령관님도 오신다는데. 신속 대응이 아니라 슈트(잠수복) 입은 IBS(고무보트) 대대들이 와야 할 듯"이라고 걱정했다.

그런데 수중 수색을 명령받은 것도 아닌데 포11대대장은 왜 '슈트'와 '고무보트'를 언급했을까. 이는 현장 상황이 하천 본류와 수변 지역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포병대대장들은 처음부터 수변 지역 수색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현장 여건이 도저히 이를 실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했기 때문에 둑길이나 도로를 걸어서 이동하면서 육안으로 살피는 도보 수색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해병대원과 소방이 7월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일대에서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해병대 장병을 찾고 있다.
 해병대원과 소방이 7월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일대에서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해병대 장병을 찾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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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 "포병이 비효율적으로 수색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본 임 사단장은 7월 18일 오후 4시께 열린 화상회의에서 '위에서 보는 것은 수색 정찰이 아니다'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보면서 찾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가슴장화를 손짓으로 언급했던 그 회의에서 한 이야기다. 

이후 회의에 참석했던 포11대대장은 오후 4시 20분께 "내일(7월 19일) 사단장님 0800 현장 작전지도 예정(보병 1개 부대, 포병 1개 부대)"이라고 공지하면서 사단장 지시 사항 중 하나로 "작전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개개인의 경계구역을 나누고 4인 1개조로 책임주고 찔러가면서 확인할 것(1열로 비효율적으로 하는 부대장이 없도록 바둑판식 수색정찰을 실시할 것) (특히 포병이 비효율적임)"이란 내용도 함께 전파했다.
 
7월 18일 오후 포11대대장이 전파했던 사단장 지시 사항
 7월 18일 오후 포11대대장이 전파했던 사단장 지시 사항
ⓒ 김경호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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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적이고 양립하기 어려운 지시 가능성 

수색 첫날인 7월 18일부터 사단장으로부터 질책 당한 포병대대장들은 이튿날 다시 현장 방문을 예고한 사단장의 공지에 보다 적극적인 수색 정찰을 실시해야 할 압박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하천 본류 수색'과 '수변 지역 내 물속 투입'은 작전 범위나 동원되어야 할 장비에서 차이가 있지만, 이미 본류와 수변 지역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천이 범람하고 물웅덩이가 곳곳에 도사린 상황이었다.

결국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지침과 '수변지역으로 내려가 바둑판식으로 무릎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 보면서 정성껏 탐색하라'는 지시는 적어도 내성천 수색 현장에선 상호 모순적이고 양립하기 어려운 명령이었던 셈이다.

채 상병이 급류에 휘말려 실종되었던 7월 19일 아침 내성천 수색 현장 상황은 전날보다 더 악화되어 있었다. 전날인 18일 많은 비가 내린데다, 수색 지역도 하류 쪽으로 더 내려갔기 때문이다.  장병들은 가슴장화 차림이었지만 다른 안전장구는 지급받지 못했다.

다만 포7대대장은 50m 로프 2개를 이용해 '간부가 수변에서 강물 쪽에 서고 각 간부는 자신의 몸에 로프를 연결해 마치 해수욕장 안전지대 역할을 하고 그 안에서 병사들이 수색'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채 상병이 속해 있던 조는 로프조차 없었고 7월 19일, 오전 9시 3분께 채 상병은 급류에 휘말려 실종됐다가 14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호명면서 수색하던 해병대 장병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해병대 특수수색대가 실종 지점에서 수색에 나서고 있다.
▲ 실종된 해병장병 찾는 전우들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호명면서 수색하던 해병대 장병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해병대 특수수색대가 실종 지점에서 수색에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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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들 단체채팅방에 임 사단장 지시 사항 상세히 전파 

임성근 사단장은 합참 단편명령(특정 부대에 임무·전술 변경을 알릴 때 사용하는 간략한 작전명령)에 의해 수해 현장에 투입된 해병1사단 병력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육군 50사단장이 행사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7월 17일 오후 수해복구 출동을 명령받은 해병1사단 예하 포병여단이 주둔지를 출발한 뒤부터 사고가 난 19일 오전까지 포병대대 간부들, 대대장 단체채팅방에는 작전과 관련한 50사단장의 지시 내용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수색정찰 방식에 대한 지시를 포함해 복장 상태·경례 태도 지적 등 임 사단장의 시시콜콜한 지시 사항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포병여단 간부들은 이러한 사단장 지시에 당혹해하면서도 충실히 이행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통상 고위 지휘관은 현장의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큰 틀의 방침만 제시하고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현장 지휘관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예천 지역에 투입된 포병대대장들에겐 사단장의 지시에 따르는 것 외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던 걸로 보인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최초 해병대 수사단이 피의자로 분류했던 임 사단장 등을 제외하고 포병대대장 2명에 대해서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해 지난 8월 24일 경북경찰청에 재이첩했다.

태그:#고 채 상병, #박정훈 대령, #해병대 수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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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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