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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표가 없다. 몇날 며칠 틈만 나면 검색해 보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표가 없다는 메시지만 나타난다. 망했다. 뜸을 들이고 들이다 결국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이번 추석에는 아무래도 못 갈 것 같아요. 비행기표가 없네요. 죄송해요. 일 년에 한 번만 얼굴 보면 된다. 안 되면 영상통화라도 하면 되지. 시어머니는 너그럽게 상황을 이해해 주셨다.

제주 자영업자의 명절
 
관광지에서 자영업을 하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명절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늘 고민거리이다.
▲ 명절 차례상 관광지에서 자영업을 하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명절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늘 고민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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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살고부터 명절이 좀 달라졌다. 명절을 앞두고 가장 먼저 고민하는 건, 명절에 며칠이나 장사를 하느냐다. 

명절은 더 이상 대목이 아니라지만, 관광지에서는 여전히 대목이다. 코로나 때처럼 국내 관광지가 반사이익을 얻어 사시사철 관광객이 몰려올 때는 괜찮았지만, 요즘처럼 해외로 관광객이 대거 빠져나가 명절이나 황금연휴에만 손님이 있는 상황이 되면, 명절 장사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돈만 보면 그렇지만, 양가 부모님을 생각하면 또 다른 고민에 빠진다. 멀리 살아 자주 뵙지도 못하는데 명절에라도 찾아봬야 하는 게 아닐까. 친정과 시댁의 거리도 상당히 멀기 때문에 짧은 연휴 동안 두 곳을 모두 방문하는 건, 시간과 비용 면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매번 고민에 빠진다. 이번엔 어디를 며칠 동안 가야 할까. 남편은 친정만 가거나 시댁과 친정을 모두 가자 하고, 명절에 놓칠 손님이 아쉬운 나는 시댁만 가자고 한다. 

아이들을 생각해도 머리는 복잡해진다. 연휴 내내 가게 문을 열면 아이들은 꼼짝없이 집에 머물러야 한다. 명절 느낌도 내지 못하고, 좋은 곳으로 휴가를 가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장사하는 집이니 아이들도 이런 부모의 삶을 체득해 나가야지, 싶다가도 벌써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며칠이라도 가게 문을 닫거나, 부모님댁을 방문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고민이 너무 길었나 보다. 뒤늦게 시댁만 며칠 들르기로 결정을 하고 비행기표를 알아 보니 표가 없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친정 쪽도 마찬가지였다. 제주에서 육지로 가는 비행기는 있는데, 돌아오는 비행기가 없다. 예전에는 금액이 좀 비싸도 자리는 있었는데, 이번엔 자리조차 없다. 항공사들이 제주행 비행기를 대거 해외로 돌렸다더니, 그 여파인 모양이다. 

게다가 6일이라는 긴 연휴가 예고됐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방문하기 위해 미리 표를 구입했을까.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검색해 보았지만 자리는 결국 나지 않았다.

긴 고민이 무색하게, 명절 육지행은 자동으로 무산되었다. 이럴 땐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섬이라는 게 절절하게 실감난다. 귀성, 귀경객과 관광객이 한바탕 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게 명절이라니. 

주변을 돌아 보니 제주 이주민들이 명절을 대하는 자세는 제각각이다. 

제주로 이주한 다자녀 가정의 경우, 명절에 움직이는 건 꿈도 꾸지 않는다. 가뜩이나 연휴라 비행기표가 비싼 데다, 명절 장사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인인 한 친구는 간만의 긴 휴가 덕분에 아이들을 데리고 육지에 간다며 잔뜩 들떠있다. 반 년 전에 특가표를 구해, 저렴한 비용으로 다녀온다고 한다. 그야말로 얼리버드다.

자녀가 없고 자영업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장사를 선택한다. 자녀가 있고 자영업을 하는 집은 연휴 기간 절반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절반은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으니, 중간 어디쯤을 선택하는 것. 이런 경우 육지에 있는 부모님도 사정을 잘 알아, 명절이 아닌 날에 오가는 걸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신다.

명절을 보내는 가장 현명한 방법
 
명절이든 연휴든, 결국 몸과 마음이 편한 게 최고가 아닐까.
▲ 바닷가를 거니는 가족 명절이든 연휴든, 결국 몸과 마음이 편한 게 최고가 아닐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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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한 우리집 앞에는 이제 두 가지의 선택지가 남아있다. 연휴 내내 가게 문을 열거나, 연휴 절반은 아이들과 쉬고 절반은 가게 문을 여는 것. 아무래도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제주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볼까 싶지만, 이번에는 방을 구하는 게 만만치 않다. 괜찮은 숙소는 모조리 예약이 꽉 찼다. 적당한 숙소를 구하자니, 그럴 거면 차라리 집에서 자는 게 낫지 싶다. 집에만 있자니 뭔가 아쉽고. 진퇴양난이다.

장사를 하는 데다 즉흥적으로 떠나는 걸 선호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점점 연휴를 즐기는 건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수개월 전에 이미 교통과 숙박 예약을 마치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다. 게으른 내가 설 자리는 없다. 

각성을 하고 내년 설에 시댁에 갈 비행기표를 검색해 보니, 벌써부터 자리가 없다. 비싼 표만 몇 개 남은 상황. 네 식구 움직이면 비행기값만 80만 원쯤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이거라도 잡아야겠다. 장사는 장사대로 못하고, 돈은 돈대로 나가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럴 땐 빨리 잊는 게 상책이다. 이주해 오고 처음 몇 해는 돈을 손에 쥐지도, 놓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어떤 선택이든 놓치는 게 너무 크다 보니, 선택을 마친 뒤에도 자꾸 뒤를 돌아보며 한숨을 쉰 것. 

지금은 장사를 하면 돈을 벌어 감사하고, 부모님을 뵈면 이렇게라도 뵐 수 있어 감사하다. 한쪽을 선택하고 나면, 다른 쪽은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같은 상황이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마음은 훨씬 편안함에 이른다. 

아직 선택은 남았고, 연휴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잔뜩 헝클어진 머릿속을 비운다. 적당히 놀고 적당히 벌며, 적당히 즐겨야지. 연휴랍시고 명절이랍시고, 즐기기 위해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너무 애를 쓰면, 결국 내 속만 문드러진다. 될 대로 되라지. 안 되면 말고. 그저 흘러가는 게 때로 약이 된다. 

어쩌면 명절을 보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단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몸도 마음도 편하게 보내는 것. 홀로든, 가족과 함께든, 집이든, 휴가지든, 결국 몸과 마음이 편해야 진짜 연휴가 아닐까. 이번 추석엔 모두가 그런 시간을 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게재합니다.


태그:#명절, #추석, #자영업,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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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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