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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다바오 한·필 직업훈련센터(Korea-Philippines Vocational Training Center)에 온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일상의 시간은 더디 가는데 지나고 보니 훌쩍 지났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날들이 이국의 낯섦에 묻혀 지루할 새가 없었을 것이다.

거처하고 있는 방은 임지에 파견되기 열흘 전 실시한 현지 OJT 기간에 구입했기에 한시름 덜 수 있었다. 근무지와 가까운 도심 외곽의 주택가에 30㎡ 정도의 원룸이라 혼자 살기에는 불편함이 없다.

학창 시절에 줄곧 자취를 하고, 직장 생활 후반기 15년을 주말부부로 보내서 혼자 사는 데는 어느 정도 이력이 붙어 이곳에서도 적응이 쉽다. 이곳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그래서 근무시간도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사과, 토마토, 바나나 등 몇 가지 과일과 채소를 갈아 식사를 대신한다. 오랫동안 쌓인 식습관이라 여기서도 번거롭지 않고 속이 든든해서 좋다. 7시 출근길에 들어서면 해는 벌써 반 중천에 와 있다. 해 가리개나 선글라스 없이는 섣불리 나서기 힘든 길이다.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붙어선 집집 사이로 난 옹색하고 좁은 골목길에는 출근하고 등교하느라 다소 부산스럽다. 골목의 주 교통수단은 모터사이클이다. 가장은 아내나 아이들을 태우고 좁은 골목길을 잘도 달린다. 바쁠 것 없는 개와 닭들만이 골목에서 한가롭다. 열대의 환경에 맞게 몸피를 줄인 가축들은 다소 야윈 모습으로 어슬렁어슬렁 골목을 누비며 낯선 사람이 지나가도 본체만체다.

골목만 벗어나면 바로 한길이다.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교차로에 띠붕코 재래시장이 붙어 있어 전쟁터나 진배없다. 세상의 모든 굴러다니는 것들은 다 모여서 악다구니를 쓰면서도 질서정연하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먼저 배려한다. 이제 지프니(jeepney, 필리핀 사람들의 주요 대중교통 수단, 버스와 지프의 중간 형태) 타는 것도 익숙해졌다. 교통수단 중에 이처럼 사람과 사람 간에 인간적인 공간은 없는 것 같다.

좁다 싶으면 엉덩이를 밀어 자리를 내어주고, 요금과 거스름돈도 승객들이 손에서 손으로 전달한다. 차가 다소 지체되거나 손님이 많아도 누구 하나 불평 한 마디 없다. 이들이 열대를 살아가는 지혜로운 여유일 것이다.
 
각종 차량과 지프니, 트라이시클, 오토바이 등이 한데 얽혀 출근길이 분주하다.
▲ 띠붕코 재래시장 교차로의 아침풍경 각종 차량과 지프니, 트라이시클, 오토바이 등이 한데 얽혀 출근길이 분주하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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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출발해 20여 분 정도면 도착하는 한·필 직업훈련센터는 다바오만이 내려다보이는 다바오시 북동쪽 부나완의 해변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7㏊ 규모의 캠퍼스에는 산업 자동화 및 메카트로닉스 기술, 토목공학 기술, 자동차 기술, 농업 및 생물 시스템 공학 기술 등 총 9개의 디플로마 과정에 300여 명의 학생이 면학에 정진하고 있다.

한·필 직업훈련센터는 한국과 필리핀 간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부터 1, 2차에 걸쳐 건축물과 교육기자재를 구축했다. 우리나라에서 500만불을 투자하여 2016년에 마무리 지은 사업이다. 지금은 필리핀 기술교육개발청(TESDA)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의 요청에 따라 1년에 한두 명의 KOICA 봉사단원을 파견하고 있다.

캠퍼스 앞으로는 해변을 끼고 판-필리핀 고속도로(Pan-Philippine Highway)가 나 있다. 아침저녁으로 콘테이너 화물차, 트럭, 버스, 봉고 등 대형차량이 지프니, 트라이시클, 오토바이 등과 얽혀 경쟁하듯 질주하며 요란한 굉음 속으로 매연과 먼지를 품어댄다. 교육환경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나마 탁 트인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어 위안이 된다.
 
판-필리핀 고속도로 너머로 다바오만이 푸른 하늘에 구름을 피워 올리고 있다.
▲ 한필 직업훈련센터에서 내려다본 다바오만 판-필리핀 고속도로 너머로 다바오만이 푸른 하늘에 구름을 피워 올리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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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가을이 무르익어 갈 한국의 날씨와는 달리 이곳은 우기와 건기만 있을 뿐 일년내내 온도변화가 크지 않다. 건기에 접어드는 지금은 한없이 청명한 하늘에 뭉게구름이 꿈처럼 피어올랐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곤 한다. 적도에 가까워 거의 매일 오후에는 스콜이 잠깐씩 쏟아져 크고 작은 나무들을 씻겨주고 대지를 적신다. 스콜이 지나간 뒤는 대기가 청량하여 시원하다.

9월 초 새학기가 시작되어 학생들은 어느 정도 면학 분위기를 갖추고 학업에 열중이다. 상위를 푸른 제복으로 갖춰 입은 교직원과 학생들은 월요일이면 아침 8시에 어김없이 국기 게양식으로 한 주를 시작하고, 금요일 오후 5시에는 하기식을 한다. 내 파릇파릇하던 학창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풍경이다.

아침시간의 짧은 통근거리 임에도 사무실에 도착하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마주치는 학생들의 상큼한 인사가 하루의 시작을 즐겁게 한다. 오전에는 주로 강의자료 준비와 어학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한다.

수업은 동영상과 PPT를 활용하므로 효과적이다. 기후환경 변화에 따른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고, 자연환경 보전을 위한 유기농업의 중요성을 함께 공유하고 토론한다. 토양을 살리고 자연을 보전할 수 있는 천연 유기농자재 제조방법도 실습을 통해 함께 배워나갈 계획이다.

안전한 환경에서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구촌의 젊은 친구들이 지구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플라스틱은 필리핀뿐만 아니라 동남아 모든 나라가 심각한 문제다. 그럼에도 쉬이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이대로 가다가는 맑고 투명한 바다가 플라스틱과 쓰레기에 점령당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에게 환경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해 나가자는 것이다. 꿈으로 가득한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희망의 열매가 알알이 영글 수 있도록 날마다 힘차게 응원하고 있다.

태그:#코이카봉사단, #KOICA, #필리핀, #다바오, #한필직업훈련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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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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