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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3%까지 치솟았던 물가상승률이 2%대로 하락했다. 현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전반적으로 물가가 안정세란 것이다. 그렇다고 물가 자체가 낮아진 것은 아니다. 물가상승률이 낮아진 것뿐이다. 소비자들에게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상태다. 시민의 관점에서 윤석열 정부 시기 물가 상황을 따져봤다.[편집자말]
2021년 11월 17일, 물가 관련 민생현장 점검에 나선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무를 보고 있다.
 2021년 11월 17일, 물가 관련 민생현장 점검에 나선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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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전통시장. 
서울 창동 하나로마트. 
서울 양재 하나로마트.

이들 장소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현직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아래 부총리)들이 모두 방문한 곳이다. 그 이유는 다음 사진 설명에 나와 있다.

"2021년 11월 17일, 물가 관련 민생현장 점검에 나선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홍 전 부총리는 국무조정실장 시절이었던 2017년 9월 27일 세종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2021년 2월 9일에는 서울 창동 하나로마트에 가서 경제부총리로서 물가 관련 민생 현장을 점검했다. 추경호 부총리 역시 취임 한 달 여 만인 2022년 6월 5일 서울 창동 하나로마트에 갔고, 세종 전통시장(2022년 9월 8일)에 이어 지난 17일 서울 양재 하나로마트를 각각 방문했다.

시장·마트는 어떤 정부든 물가 관리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과제란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들인 셈이다. 윤석열 정부에게는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더 급박한 과제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2022년 5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4%로 2008년 8월(5.6%) 이후 가장 높았다. 

홍 전 부총리의 첫 현장 방문 장소가 주 52시간 근무제 관련 자동차 부품업체였던 반면, 추 부총리가 취임 직후 찾은 곳이 서울 종로구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였다는 점은 이런 상황을 잘 대변해준다. 2022년 5월 16일, 당시 현장에서 추 부총리는 "원자재 가격과 물가 등 민생경제를 조속히 안정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나흘 전 윤 대통령이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한 말은 "제일 문제가 물가"라는 것이었다. 

통제
 
2022년 8월 11일, 물가 점검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 과일 코너에서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추석 장바구니 물가를 잡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2022년 8월 11일, 물가 점검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 과일 코너에서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추석 장바구니 물가를 잡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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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윤석열 정부는 직접적으로 물가를 통제하지는 않겠다고 공언했다. 추 부총리는 "물가를 강제로 끌어내릴 방법이 없고 만약에 그렇게 하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거나 "물가를 직접 통제하던 시대는 지났고 그것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작년 5월 31일 기획재정부 기자실에서 한 말이었다. 동시에 그는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서는 이런 말도 했다.

"기업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가격 상승 요인을 최대한 자체적으로 흡수해달라." (2022년 6월 2일 첫 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 생산성 향상 범위 내 적정 수준으로 임금 인상이 되었으면 한다." (2022년 6월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생산성 향상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묘한 말이었다. "기업과 임금 노동자가 협의해야 할 사안에 정부가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직접적으로는 물가를 통제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기업을 통해 물가를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부 나왔지만, 물가 관리 상황 자체가 매우 엄중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2022년 7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6.3%로 외환위기 당시(1998년 11월, 6.8%)와 근접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 첫 추석이 다가왔다. 윤 대통령이 2022년 8월 제5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한 곳 역시 양재 하나로마트였다. 윤 대통령은 "국민이 피부로 느끼도록 명절 장바구니 물가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대 성수품 관리대책이 나왔다. 돼지고기, 명태, 배추 등 평균 가격을 전년 추석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이었는데, 일각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MB 물가지수'와 흡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실상 직접적인 물가 통제 정책 아니냐는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작년 12월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경제당국이 올해 물가 관리를 잘 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가 뭘 뜻하는지 다음 해 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소줏값 인상 움직임이 있었던 올해 2월 국세청과 기획재정부가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6월 추 부총리는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다며 라면 값 인하를 업계에 직접 권고했다. 권고 중에는 "소비자단체가 압력을 행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포함됐다. 와중에 석유 가격이 역대급으로 하락했다. 6월 기준 물가상승률은 2.7%로 2021년 9월 이후 21개월만에 2%대로 하강했다.

터널의 끝

 
윤석열 대통령의 하나로마트 양재점 방문이 있고 이틀 후, 2022년 8월 13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강원도 강릉 소재 고랭지 배추밭을 방문했다. 현장에서 추 부총리는 "꼭 밥상물가를 지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하나로마트 양재점 방문이 있고 이틀 후, 2022년 8월 13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강원도 강릉 소재 고랭지 배추밭을 방문했다. 현장에서 추 부총리는 "꼭 밥상물가를 지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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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들이 더해지면서 추 부총리 발언에도 자신감이 실렸다. 연초 YTN 인터뷰를 통해 "물가 안정 기조가 확고해지면 모든 정책 기조를 경기 쪽으로 턴(turn,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던 추 총리, 그의 입에서 "터널의 끝"이란 말이 나왔다. 지난 7월 12일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추 부총리는 "터널의 끝이 멀지 않았다"고 했다. 앞서 6월 8일 관훈클럽 토론회를 통해서도 그는 "하반기로 가면서 서서히 좋아질 것"이라며 "제가 생각하기에는 터널의 끝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터널의 끝은 아직 멀게 느껴지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지난 3월 의류 및 신발 물가는 6.1% 올라 1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5월 기준 가공식품 물가는 7.3%, 외식 물가는 6.9% 올랐고,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장바구니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12%나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458개 품목을 대상으로 산출하는 통계청 물가지수와 그 중 일부 품목을 구입하는 일반 소비자들의 '물가지수'는 여전히 격차가 컸다.

올해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근원물가도 불안요소다. 근원물가는 기후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 농산물이나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류 등의 품목을 제외하고 산출한다. 외부 요인에 덜 취약하기 때문에 소비자물가와 달리 상대적으로 변동폭이 크지 않다는 특징을 보인다. 통상적으로 등락폭은 1∼2% 내외인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작년 동기보다 4.5%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2009년 1월∼7월 당시 4.2%보다도 높은 수치다. 설상가상 국제유가는 최근 폭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 입장에서는 "생산성 향상"이란 추 부총리의 원론적 주문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가격 인상 카드를 계속 손에 쥐고만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유 원유 가격 상승에 따라 서울우유 등 유업체들이 내달 1일 유제품 가격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현재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는 설탕 가격으로 인해 식품업계·외식업계의 인내심도 바닥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지난 8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들 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한 것 역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정부 임기는 이제 중반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모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 추석 농축수산물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 추석 농축수산물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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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어려움은 전반적으로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 등이 바탕에 깔린 데다 사실은 상당 부분이 대외 요인 때문이다. 국민께 좋은 경제 모습을 만들어드리지 못하는 여러 상황에 마음의 무거움이나 책임감을 갖고 있다. 지혜가 부족하고 성과가 덜 나타난다는데 늘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2022년 11월 11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추경호 부총리)

작년만 해도 한껏 자세를 낮췄던 경제당국의 수장이 정치적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것도 큰 불안요소다. 지난 4월 G20 회의 당시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상에서 정상화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던 추 부총리, 지난 6월 국민의힘 친윤(친윤석열) 모임에 참석해 "야당이 함부로, 엉터리 경제학자들이 아무나 튀어나와 비판하는 것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8월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가계 부채 세계 1위를 만든 것은 바로 지난 정부"라고 비판했다. "사실은 상당 부분이 대외 요인 때문"이라고 했던 앞서 그의 말과 대조되는 정치적 언사들이다.

이와 같은 그의 언행이 경제수장으로서 왜 위험하고 문제가 있는지는 과거 추 부총리 스스로도 밝힌 바 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국회의원 시절이었던 2018년 9월, 그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과거 정부가 잘못했으니 경제가 안 좋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세가 틀렸다고 본다"면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답답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1년 4개월이 지났고 곧 2년이 된다. 3년차 접어들게 되는데 그동안 수없이 많은 경제통계가 실적으로 나온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였다면 '우리가 아직 우리의 것을 보여주고 성과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한다면 일부 이해될 수 있으나, 아시다시피 경제는 매일매일 통계가 나온다. 월, 분기, 연단위 통계가 나오기 때문에 1년이 지났으면 정책으로 심판받을 수 있는 통계가 다 나오는 상황이다.

각종 경제지표는 빨간색이다. 고용, 소득분배 지표가 최악이고 오늘도 GDP는 0.6%의 성장에 그쳤으며 국민소득은 오히려 1% 줄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과거 정부와 과거 정책탓을 하고 있다. 과거 정부 탓 실컷 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면 그 주술을 계속 외워라." (2018년 9월 10일자 세정일보)


하나로마트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1년 6개월이 지났고 곧 2년이 된다. 추 부총리 말대로 "1년이 지났으면 정책으로 심판 받을 수 있는 통계가 다 나오는 상황"이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아직도 "각종 경제지표는 빨간색"에 가깝다. 특히 물가 상황은 추 부총리가 2022년 5월 인사청문회 당시 했던 말 그대로 여전히 "매우 엄중하다"는 것이 팩트다. 

2021년 11월 17일, 물가 관련 민생현장 점검에 나선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무를 보고 있던 당시 소비자물가상승률(2021년 10월 기준)은 3.2%였다. 추 부총리가 역시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추석 물가 상황을 점검하며 사과를 들었던 지난 17일 8월 기준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4%다. 

그때나 지금이나 2012년 1월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태그:#추경호, #홍남기, #물가상승률, #밥상물가, #추석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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