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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세종 정신으로 공공언어 바로잡기 운동을 펴고 있는 세종국어문화원과 함께 우리 시대 <우리말글 가꿈이를 찾아서>를 연재한다. 공공언어 바로잡기에 애써온 단체와 우리말글 운동가들을 찾아 성과와 의미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말]
부산광역시에 있는 한국서체연구회 사무실에서 자신이 쓴 이론서를 들어 보이는 허경무 이사장
 부산광역시에 있는 한국서체연구회 사무실에서 자신이 쓴 이론서를 들어 보이는 허경무 이사장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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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한글이 반포(1446)된 지 577년이 된다. 이렇게 500년이 넘었음에도 한글이 존중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서예 분야이다. 우리나라 서예 법인단체 한 대표의 지적에 의하면, 서예가들 가운데 90%가 한자, 한문 서예를 한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이런 서예계의 한자 편향에 맞서 한글 서예를 진흥하기 위한 이론 연구와 또 서예가로서 실천해온 이가 허경무 (사)한국서체연구회 이사장을 7월 29일 기자가 부산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허 이사장은 과거 취학 전 한학자인 선친(경파 허채)을 따라 글씨(한자) 쓰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때로는 조교 역할로 한자 서예를 먼저 했다고 한다. 한자 중심 서예는 대학교까지 이어져 1975년 대학 2학년 때 국어국문학과 교양과정에 한문 서예가 있었는데, 교양과정 서예 선생님의 권유로 제1회 부산미술대전에 최연소로 입선할 정도였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한글 서예를 한 것은 바로 입선하던 1975년에 한글학회 고 허웅 회장이 초빙교수로 오셨고 한글 역사와 주시경 최현배 등 한글 위인들 강의에 감화되어 그때부터 '한글'을 나타내는 '한내'라는 필명(아호)을 짓고 한글 서예에 무한한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한글 서예는 왜 홀대 되는가
 
한글학회 1층, 주시경 선생이 1910년에 지은 ‘한나라말’ 앞에 선 허경무 서예가(2022년).
 한글학회 1층, 주시경 선생이 1910년에 지은 ‘한나라말’ 앞에 선 허경무 서예가(2022년).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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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국 서예계가 왜 한글 서예를 홀대하는지를 들어봤다(허 이사장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자 한글 서예 이론으로 최초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고 2022년 6종 한글서예 교본을 펴내기도 했다).

- 서예계가 한자, 한문 서예 위주로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뭔가요.

"서예는 아직도 대부분 도제식 교육으로 이루어지거든요. 선생의 대를 이어 한문 서예 위주로 공부해 왔으니 또 제자들이 그대로 배우게 되는 거죠. 서예 용어는 물론 용필법, 운필법 등 이게 다 선생님 지도대로 따라가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뭐랄까 시대를 앞서가거나 변혁시키기 힘든 한계가 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예술성의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고 선생님이 하던 것이니까 그대로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아요."

- 지금 현재 한글 서예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한글 서예의 필요성과 인식은 많이 향상되긴 했지만, 아직도 한자 중심 서예를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왜냐면 여러 한글 서체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드물기 때문이죠. 서예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므로 뜻이 있어도 잘할 수가 없어요. 체계적인 한글 서예 지도를 할 수 있는 분들이 적으니 대를 이어 이미 해 오던 한문 서예에서 못 벗어납니다.

이런 것이 안타까워 우리 서단에서 한글 서예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고자 여러 시도를 해봤으나, 도제식 교육으로 이어온 기예와 시점이 모두 닮아가는 특성으로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변화시키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집니다. 한글서예의 발전적 변화와 예술적 확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질적 노력이 절실한데, 오늘날의 한문 중심의 공모전 형태로서는 이루기 어렵고, 한문 서예가들이 주도하는 서단이나 공모전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 한글 서예를 6가지로 분류한 맥락은 무엇입니까?

"우리 한글 서체를 예술성 있게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학문적으로 분류한 게 7가지 서체인데 언해본체 진흘림은 고어가 많고 획의 축약이 심하여 체계화하여 교본으로 필사하기가 쉽지 않아 잠시 미루고 우선 여섯 가지를 내었습니다. 곧 (훈민정음)해례본체, (훈민정음)언해본체 정자, (훈민정음)언해본체 흘림, 궁체 정자, 궁체 흘림, 궁체 진흘림 등입니다.

언해본체(진흘림)은 미루었는데, 예컨대 추사 선생의 편지글의 경우 글자가 3개 4개 연달아 연결되기도 하고, 획을 많이 축약하여 꼬불꼬불한 'ㄹ'을 세로막대처럼 내려그어 마치 암호 같아서 글씨 판독이 가능한 가족에게 보낸 편지글이라, 요즘의 붓으로 써서 기준으로 제시할 교본으로 내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해서 과제로 남겨두었습니다."
 
한글 서예의 6가지 서체
 한글 서예의 6가지 서체
ⓒ 허경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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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이사장의 자세한 설명과 그의 이론서(허경무, 2022, <한글서체의 이론과 실제>, 한예술사)를 바탕으로 기자가 다시 정리해 보면 이렇다.

해례본체란 바른네모꼴의 직선적인 획형으로 목판에 새겨 창제 문자의 전형을 보여준 것과 같은 서체형으로 모태가 되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따라 명명하였다. 해례본체로 작성된 문헌에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하여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등이 있다.

언해본체란 한글 보급과 실용을 위해 붓으로 서사할 때의 필서의 맛이 있는 궁체를 제외한 모든 한글 붓글씨체를 뜻하며, 모태가 되는 '세종어제 훈민정음'(훈민정음 언해본)의 이름을 따라 명명하였다.

필서의 맛이 있는 체 중에서 궁중이라는 특수 환경을 배경으로 창안되어 자형이 특징적인 유형을 형성하고 있는 서체를 가리켜 궁체라고 한다. 궁체는 특수한 환경 즉 궁중이라는 공간적 특수성과 여성이라는 신분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창안된 서체로서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미려한 감각이 돋보인다.

한편, 허 이사장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일부러 찾아간 기자를 위해 먹향기가 가득한 사무실 곳곳을 설명하면서 앞으로 계획과 꿈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제가 체계화한 한글 서체를 널리 알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또한 세계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한글 서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글 발전은 문법이나 소리뿐만 아니라 문자의 예술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세계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요즘은 문자예술 곧 한글의 시각적인 면이 매우 중요하게 주목받고 있으므로 한글 서체를 더욱 늘리고 이런 서체를 활용한 산업화로 세계적으로 빛나고 한글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태그:#한글서예, #허경무, #한글서체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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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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