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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지만 아주 다른 사람들, 농사 짓는 부모님 vs. 마케터 딸이 함께 농사일 하는 이야기.[기자말]
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혼자 트럭에 컨테이너 박스를 잔뜩 싣고 오셨다. 읍내 농민들이 작물 수확 때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양파 담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미 '박스를 가져왔다'는 것부터 엄청난 노동이 시작됐다.

컨테이너 박스는 3개에 한 세트로 적재하는데 그 너비가 약 1.5m 정도이고 부피가 커 한 세트 이상 들고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1차로 가져오신 박스는 100여 개. 길게 늘어진 고랑 사이사이 컨테이너 박스를 놓는다.

하루 반나 절 일한 동생은 나가떨어졌다. 양파대 자르기 작업 후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약한 녀석...이라기엔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성인에게 당연한 결과. 어쩐지 고랑을 하나씩 맡아 같이 출발해도 자꾸 멀어져 가서, 남이 두 골 할 때에야 한 골을 마치더라니.

등 뒤에서 들리는 말 "일을 잘 허네~"

농사일 자체는 작물을 오늘 알게 된 사람도 할 수 있지만, 누적되는 노동량을 버티는 것이 어렵다. 이제 나까지 낙오되면 안 되기 때문에 부모님은 내 안색을 살피신다. 밭으로 걸어가는 내 등 뒤에 "일을 잘 혀~"(일을 잘한다는 칭찬의 뜻)라는 말이 들린다.
 
양파 담기 작업
▲ 양파 담기 작업 양파 담기 작업
ⓒ 최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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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절 "일을 잘 한다"라는 뜻은 무엇일까. 10년 넘는 직장 생활 동안 궁금했던 말이다. 매출과 영업이익, 매출에 기여한 정도를 소상히 적는 증명, 십수 명의 동료와 상사 평가를 지나 몇 개의 등급으로 떨어지던 평가가 무색하게, 농사는 오늘처럼 내일도 밭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일 잘한다"라고 해주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 이상 무엇을 더 잘할 수는 없다.

부모님은 여러 날 밭을 돌보셨고, 양파는 땅 속에서 자라는 일을 했고, 수확철이 되자 다 자랐을 것을 믿고 뽑았다. 여름 볕을 몇 날 며칠 맞으며 바삭하게 마른 양파. 다 된 양파를 담는 사람이 매일 매일 일터로 나가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는다.

"단단한 놈으로만, 200g이 넘는 것만 담는 겨. 박스의 손잡이 부분까지만. 무게가 애매한 건 담지 말고."

너무나 단순한 기준. 일은 이렇게 진행된다. 첫째, 선두로 고랑을 나서는 사람이 누가 보아도 200g을 훨씬 상회하는 큰 양파를 컨테이너 박스에 담는다. 둘째,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 남은 양파 중 200g이 넘는 것을 골라 담는다. 셋째, 그리고도 남는 작은 양파를 망에 모은다. 그러나 역시 600여 평의 밭에 뿌려진 사람은 3명이다. 둘만 일하는 것을 볼 수 없어, 여전히 몸살로 아픈 어머니까지 어쩔 수 없이 나와계셨다.
 
227g을 기록한 양파
▲ 227g을 기록한 양파 227g을 기록한 양파
ⓒ 최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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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담기 작업은 양파대 자르기처럼 사람이 양파를 따라다녀야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양파를 담는 박스도 끌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훨씬 힘이 부친다. 혹시 일을 일부러 어렵게 하는 것일까? 바퀴 달린 수레를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양파 밖은 두둑이 넓고 고랑이 좁아 바퀴 달린 무엇이 구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머리를 굴려보지만, 무섭게도 무거운 박스를 끄는 것이 이곳에서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몇 박스 담아보니 한 박스에 대략 65개에서 칠십 서너 개까지도 담기는 것 같다. 박스의 무게는 대략 21kg를 상회한다. 그래서 양파는 얼마에 팔릴까.

'남지 않는다'는 말의 참뜻

"양파 가격은 어떻게 되나요, 아버지?"
"1kg에 750원."
"?!?!?!"


땀이 흐르는 여름, 가격 얘길 듣고는 내 등허리가 서늘해진다. 보수적으로 잡으면 한 박스당 약 만 오천 원이라는 계산이 떨어진다(20kg*750원). 가격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양파 수매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다. 선별을 했는지, 선별했다면 양파의 크기에 따라, 유통되는 규격에 맞게 망작업을 했는지가 도매 가격을 결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기본적인 선별만 하기 때문에 수매 가격이 높지 않았다.

이 구체적으로 작은 액수는, 아래 밭에 깔아둔 컨테이너 100박스에 양파를 다 담더라도(아직 반도 못 담았는데!) 수익이 약 150만 원 정도 된다는 간단한 결과를 보여준다. 더 슬픈 사실은 위의 밭도 비슷하게 추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 담아봐야 알겠지만 여기서 크게 바뀔 듯한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한 상자 가득 담긴 양파.
▲ 한 상자 가득 담긴 양파 한 상자 가득 담긴 양파.
ⓒ 최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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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손해 같은디...' 그때부터 나는 표정이 흙처럼 깜깜해지고 말이 없어진다. 5~6월부터 생산되는 양파는 중·만생종(수확시기 중후반에 나오는 품종)으로, 작년 10월부터 약 8개월을 밭에서 자랐다. 300평에서 약 150만 원+a 정도라는 수익이 예상되지만, 이건 아직 인건비와 자잿값 등 아무것도 빼지 않은 수익이다.

아, 이것이 마이너스라는 거구나. '남지 않는다'는 말의 참뜻을 알게 된다. 양파는 이 사정도 모르고 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연한 주황색의 껍질이 빛나고 탐스러워 보인다. 이익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듯한 농사를 수십년 지으시며, 어떻게, 어떻게 살아오신 것일까?

미스테리를 고민하다 머리가 아파올 무렵, 오전의 고됨을 잊을 만한 긴 점심시간(오전11시~오후3시)이 시작됐다. 그리고 다시 오후 내내 양파를 빠르게 담았다. 뜨거운 양파밭에 도착한 '귀인'과 함께.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양파, #농사, #농부,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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