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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대한민국 서울 이태원에서는 안전관리 미흡으로 159명이 압사하는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위원회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난 총괄, 지휘업무의 책임자인 행정안전부장관의 법적·실질적 책임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탄핵 심판의 사회적·헌법적 의미를 짚어보려 합니다.[기자말]
공무원은 자신의 직무상 행위의 과정 및 이유를 보고하고 그 행위의 타당성을 설명할 책임을 진다. 이것을 공무원의 '책무성(Accountability)'이라고 한다. 자신의 직무 수행에 대해 설명해야 하므로 공무원은 자신의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책무성은 공무원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는 개념이다.

공무원제도에 대한 헌법적 논의는 신분보장 및 정치적 중립에만 집중된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7조 제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의 결정례 역시 위 두 가지 쟁점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공무원이 그 책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2차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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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공무원의 책무성을 구체화한 규정은 상당히 많다. 책무성의 원칙에 관한 총론적 규정이 없을 뿐이다. 예컨대, 국무총리, 국무위원, 정부위원이 국회에 출석해 국정 처리 상황을 보고할 의무(헌법 제62조 제1항), 대통령이 긴급명령 또는 긴급재경경제명령을 했을 때 국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을 의무(헌법 제76조 제3항), 공무원이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거나 관련 서류를 제출할 의무(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국회법 제65조 제1항, 제128조 제1항) 등은 모두 공무원의 책무성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같이 개별적인 규정이 여러 법에 분산돼 있기 때문에, 법의 영역에서 공무원의 책무성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책무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공무원에 대한 제재와 벌칙에 대한 논의도 빈약한 상태다.

이태원 참사에 관해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많은 문제를 노출했다. 이상민 장관의 행위는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주로 문제된 것은 재난안전법상 의무 위반이었고, 생명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생명권의 규범적 지위를 경시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가 정치적 책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이상민 장관이 공무원의 책무성을 망각한 문제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이 장관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가장 해야 할 일이 많았던' 장관이다. 당연히 직무수행행위의 과정과 이유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이 가장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을 가장 불성실하게 했던 사람이 바로 이상민 장관이다.

탄핵소추의결서의 "고위공직자로서 국회에서 한 진술" 항목 부분에는 이상민 장관이 몇가지 사항에 관해 위증을 한 내용이 기재돼 있다. 그중 특히 문제되는 것은 유족명단 확보 여부 및 재난관리주관기관 지정에 관한 위증 부분이다. 이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상민 장관이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알 수 있다.

이상민 장관의 책무성 망각 하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2022년 1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2022년 1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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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상민 장관은 유족 명단 확보 여부에 관하여 발언하면서 책무성을 망각한 태도를 보였다.

이상민 장관은 2022년 11월 16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행정안전부는 유족 명단 및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국무위원이 하는 말을 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꾸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라고까지 했다. 또한 이 장관은 2022년 12월 27일 국정조사 제1차 기관보고에 증인으로 출석해 "서울시가 유족 명단을 넘겨주지 않는다"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다. 행정안전부는 참사 이틀 뒤인 2022년 10월 31일 서울시로부터 유족의 이름과 연락처가 정리된 자료를 전달받았고, 이를 활용해 각 지자체에 지방세 감면 대상 유족 명단을 통보했던 것이다.

유족들은 서로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해 여러차례 유족 명단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것은 유족들이 유가족협의회를 만들어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요구였다. 견디기 어려운 충격을 받은 유족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위로할 필요도 있었다. 사실 행정안전부가 유족의 명단과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 데다 명단을 주지 않을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이 때문에 이태원 참사가 정권에 부담을 주는 사건으로 번지는 것을 꺼려 이상민 장관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만일 이상민 장관이 유족 명단 확보 여부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상태였다면, 단정적으로 명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 게 아니라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답변하겠다고 했어야 한다. 적어도 이상민 장관이 유족 명단 확보 여부에 대하여 직무상 행위를 정확하고 성실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이상민 장관의 책무성 망각 둘
 
이태원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1차 기관보고가 2022년 12월 27일 여의도 국회에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한오섭 국정상황실장, 손광제 위기관리센터장 선임행정관(위기관리센터장 전 직무대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태원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1차 기관보고가 2022년 12월 27일 여의도 국회에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한오섭 국정상황실장, 손광제 위기관리센터장 선임행정관(위기관리센터장 전 직무대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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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과 관련해서도 이상민 장관은 더할 수 없이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상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은 중수본을 신속하게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 재난안전법 및 같은 법 시행령 해석상 이태원 참사의 경우 재난관리주관기관은 명백히 행정안전부이기 때문에, 이상민 장관은 신속하게 중수본을 설치해 운영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중수본을 아예 설치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 심각한 업무 태만이다.

그 후에도 문제는 이어졌다. 이상민 장관은 2022년 12월 27일 제1차 기관보고에서 "10․29 참사의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이 누구냐"는 질문에 "지금 재난관리주관기관은 따로 정해진 바가 없다"라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2023년 1월 6일 제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재난관리주관기관을 지정했는지 여부에 관하여 계속 말을 바꾸며 횡설수설했다. 심지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중수본을 구별조차 하지 못해 "(재난관리주관기관을) 정했기 때문에 중대본을 구성했다"라는 엉뚱한 말을 했다. 당시 발언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상민 장관은 이태원 참사 발생 두 달 뒤까지도 중대본과 중수본의 기능 및 역할,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처럼 자신의 업무가 무엇인지 파악도 하지 못했으니, 직무수행에 관해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상민 장관의 책무성 망각 셋
2023년 5월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이 열리고 있다.
 2023년 5월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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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무성이 정무직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국무위원과 같은 고위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대외적 책무성은 보다 중요한 헌법적 의미를 갖는다.

즉, 국무위원이 국회에 출석해 직무수행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헌법상 권력분립원리를 구체화한 권력통제제도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무위원이 국회에서 성실한 태도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이상민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 것은 헌법적 문제이다. 따라서 '위증'이라는 형법 용어가 정확한 것인지 따지거나 위증죄로 형사처벌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 것이다. 이상민 장관이 책무성을 망각해 헌법적 문제를 일으킨 만큼, 그에 대한 헌법적 제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국회가 탄핵소추라는 헌법적 수단으로 대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은 그동안 법의 세계에서 관심 밖에 있던 책무성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기회다. 헌법재판소가 이 부분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면, 이번 탄핵사건은 헌법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천윤석씨는 민변에서 이태원참사TF 활동 중인 변호사입니다. 이 기사는 10.29 이태원참사 홈페이지(www.1029act.net)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위원회, #이상민장관
댓글13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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