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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다. 일요일이라 도로가 번잡할 걸 알지만 집을 나섰다. 비 오는 날 다니는 것보단 덜 번거로울 것이란 생각에. 시내에 볼일이 있었다. 장바구니를 챙겨 차에 오르니 남편이 "마트에 가게?"라고 물었다. 

"오늘 길에 들릅시다. 우유가 똑 떨어졌어."

매일 아침 요구르트를 먹는다. 요구르트 만드는 기능이 있는 제빵기를 이용하면 몇 일분을 두고 먹을 수 있다. 볼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보러 갔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농협 하나로 마트로. 1, 2층은 매장, 3~5층은 주차장으로 인근에선 꽤 큰 편이다.

우유와 두부, 계란 정도만 사 올 생각에 혼자 매장으로 내려갔다. 미리 적어 둔 물건을 사고 한 바퀴 더 둘러봤다. 그러다가 몇 가지를 더 샀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내 장보기도 그렇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굳이 갔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묶어 파는 물건을 욕심부려 구입하고, 꼭 필요하다 싶어 구입했는데 소용에 닿지 않는 일도 있었다.

카트엔 당당한 우유와 두부 옆에 목록에 없던 고등어와 애호박, 양파가 구석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뻘쭘하니 앉아 있었다. 계산대 쪽으로 나오고 있는데 앞사람이 진로를 방해했다. 간신히 비집고 지나오면서 힐끗 쳐다봤다. 뽀얗게 다듬어진 고랭지 알타리. 그 순간 알타리와 나 사이에 강력한 전류가 통했다.
 
어렵게 구한 천일염으로 담근 알타리김치
▲ 알타리김치 어렵게 구한 천일염으로 담근 알타리김치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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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알타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매끈하고 통통하니 잘 생겼다. 게다가 가격까지 마음에 들었다. 카트에 담으려는 순간 멈칫했다. 가져가면 사서 고생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생각났다. 다음주에 아들이 온다고 했다. 설에 다녀간 후 일주일에 한두 번 목소리만 들려주는 유정한 녀석.

자취를 하고 있으니 뭐라도 챙겨 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었다. 고민 따위는 가라. 냉큼 두 단을 카트에 담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알타리를 다듬고, 씻어 자르는 번거로움은 안중에도 없었다. 풀을 쑤고 김치 양념을 만드는 모든 과정은 생략되고 말았다. 오직 때깔 좋고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알타리 김치만 떠올랐다. 사냥에 나선 전사들이 멧돼지라도 잡은 것처럼 만족스러웠다.

계산대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 천일염을 사야 했다. 남은 양으로 알타리를 절이기에 부족할 듯싶었다. 5킬로그램 짜리를 살 생각이었다. 카트가 무거워져 운전하기가 마뜩잖았다. 낑낑대며 소금이 놓여 있는 곳으로 갔다. 없었다. 평소 가격대가 다른 세 종류의 소금이 진열되어 있음을 분명히 아는데 매대가 텅텅 비어 있었다.

이게 뭔 일이래. 1킬로그램 봉지가 진열되어 있던 윗 칸으로 눈을 돌렸다. 이번에도 없었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불안감 때문에 천일염을 사두는 사람이 많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덧붙여 소금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얘기까지. 매대가 텅 빈 걸 보고서야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이 많이 찾는 대형마트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집 근처 다른 매장에 들렀다. 천일염만 없었다. 난감했다. 알타리 무를 샀으니 김치는 담가야 하는 데. 할 수 없이 집을 지나쳐 인근 읍 소재지로 갔다. 그곳에 큰 마트와 식자재 마트가 나란히 있었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마트의 천일염 매대 역시 텅텅 비어 있었다. 허탈했다.
 
마트에서 구매한 천일염
▲ 천일염 마트에서 구매한 천일염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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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달아오르며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바로 옆의 식자재 매장으로 가는 짧은 순간이 천리나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있다. 있어. 평소 사용하던 제품이  있었다. 소금을 보고 이렇게나 반가울 일인가. 1시간 반 만에 천일염을 샀다. 
  
여태껏 소금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소금이란 말의 어원이 소(牛)나 금(金)처럼 귀한 물건, 작은 금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데 너무 흔해서 소중하다는 걸 잊고 지냈다. 지금 사람들이 걱정하는 천일염은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에 증발시켜 만든다. 우리나라에선 천일염의 쓰임새가 많다.

간장, 된장을 담그거나 김치, 젓갈류, 생선을 절일 때도 주로 사용한다. 나 역시 김치를 절일 때 천일염을 쓴다. 천일염의 주 생산지는 전남 신안군 일대이다. 사람들의 불안이 가중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건강한 먹거리, 믿을 수 있는 식품을 원하는 국민들의 소박한 바람이 무시되지 않았으면 한다.
 
텃밭에서 재배한 오이와 부추로 담근 김치
▲ 오이 깍두기 텃밭에서 재배한 오이와 부추로 담근 김치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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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분을 돌아다니며 어렵게 구한 천일염으로 알타리와 오이 깍두기를 담갔다. 가을에도, 내년에도 아무 걱정 없이 국내산 천일염으로 배추김치와 알타리 김치를 담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 스토리에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천일염, #김치, #알타리, #건강한 먹거리, #오이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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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생활을 하며 은퇴 후 소소한 글쓰기를 합니다. 남자 1, 반려견 1, 길 고양이 3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을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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