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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창설된 조선의 신식군대. 임오군란 발발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음.
▲ 별기군 1881년 창설된 조선의 신식군대. 임오군란 발발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음.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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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881년 3월 김홍집을 수신사로 재차 일본에 파견한데 이어 5월 어윤중·홍영식·유길준 등 60명으로 구성된 일본시찰단을 보냈다. 그 사이에 서울에서 임오군병(임오군란)이 일어났다. 

민씨정권이 일본인 교관을 초빙해서 훈련시킨 신식군대 별기군을 우대하고 구식군인들을 홀대한 것이 발단이 되어 1882년 6월 9일 구식군인들이 봉기하여 정부고관의 집을 차례로 파괴하고 일본공사관을 포위했다. 봉기군은 별기군 교관 일본인 하리모토를 살해하고 일본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는 스스로 공사관에 불을 지르고 본국으로 달아났다. 군인들은 왕궁으로 몰려가 왕비 민씨를 체포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측근 민겸호 등 민씨정권의 고관들을 처단했다.

이 사건은 국내 정치는 물론 청·일 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일본공사관이 불타고 하리모토가 피살되었다. 일본은 그해 8월 군함 4척 등 병력을 이끌고 제물포에 상륙하여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8월 30일 제물포조약이 체결되고, 조약에 따라 일본은 병력의 주둔, 조선의 군비부담, 일본 상권의 확보 등 조선침략의 발판을 마련했다. <제물포조약>이다.

제1. 금일부터 20일을 기하여 조선국은 흉도를 체포하고 그 괴수를 엄중히 취조하여 중죄에 처한다. 일본국은 인원을 파견하여 입회 처단케 하되 만일 그 기일 내에 체포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응당 일본국이 처리한다.

제3. 조선국은 5만 원을 내어 해를 당한 일본 관리들의 유족 및 부상자에게 급여하여 그들을 구휼한다.

제4. 흉도의 폭거로 일본국이 받은 손해 및 공사를 호위한 육해군 경비 중에서 50만 원은 조선국이 채워준다. 매년 10만 원씩 5개년 동안 완납한다.

제5. 일본공사관에 군인 약간을 두어 경비한다. 방영의 설치 수선 및 유지비는 조선국이 부담한다. 

이 사건은 국내적으로는 실각되었던 대원군이 재집권하고, 국외적으로는 일본세력의 확대를 우려한 청국이 재빨리 4척의 군함에 3천명의 군대를 조선에 파견했다. 그리고 7월 13일 대원군을 톈진으로 납치했다. 이로써 민씨정권이 부활되고, 조선에는 일본군과 청군이 함께 주둔하게 되었다. 청국이 대원군을 납치한 것은 그가 일본에 대해 강경책을 취하면 일본에게 무력개입의 빌미를 줄까 염려한 때문이었다.

대원군을 납치하고 민씨정권을 다시 세운 청나라는 오장경(吳長慶)·원세개(袁世凱,위안 스카이, 1859~1916) 등이 지휘하는 군대를 상주시켜 조선군대를 훈련시키고, 마건충(馬建忠, 1845~1900)과 독일인 묄렌도르프(P. G. Möllendorff, 1848~1901) 등을 정치와 외교 고문으로 보내 관제와 군제를 개편한 후 외교와 내정에 깊이 간섭했다. 또한 조중상민수륙무역장정(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 등의 무역조약을 맺어 경제침투에서도 일본을 앞서갔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프랑스 등 서양 여러 나라의 침략에 시달리던 청나라는 일본의 조선 진출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임오군변을 계기로 조선에 대한 종래의 의례적 종속관계를 실질적 식민지배관계로 바꾸기 위해 외교와 내정에 적극적으로 간섭했다. (주석 1)
한말 조선(대한제국기 포함)에서 일어난 큰 사건은 대부분 내생적(內生的) 요인과 외생적(外生的) 요인이 겹쳐 발생하였다.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이 작용과 반작용의 복합성인 것이다. 그 배경은 청국과 일본의 패권다툼에서 기인했다. 조선은 두 마리 포식동물이 노리는 먹잇감의 신세가 된 것이다.

김옥균은 그동안 보인 대원군의 행적과 관련 더러는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었지만, 청국이 국왕의 친부를 납치한 일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가 갑신정변을 주도하면서 내건 <14개조 정강>의 첫 항에서 "대원군을 즉각 환국토록 할 것"을 제시하였다.


주석
1>  강만길, 앞의 책, 18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옥균, #김옥균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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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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