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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가 월 20일 일하고 천만 원 넘게 번다는 보수언론의 보도는 진짜일까?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연구원은 지난 5월 8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 970명을 대상으로 '특수고용노동자 임금 불안정 실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업종에 상관없이 개수임금제, 공짜노동, 각종 부대비용 및 본인 부담금 발생, 초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실태를 연속 보도한다.[기자말]
학습지 교사의 하루

"선생님, 신상품 출시로 인해 특별 전체 교육을 실시하니 O월 O일은 꼭 출근해 주세요. 꼭 참석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O월 O일 예정되었던 토요일 산행은 교육으로 취소되었습니다."

업체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학습지 교사들은 입사 후 6개월까지는 일주일 내내 출근을 해서 상품 교육을 받고, 경력이 쌓이면 일주일에 2~3번 관리자가 지정한 요일에 출근을 합니다. 하지만 신상품이 나왔다거나 그달 영업 실적이 부진할 경우에는 지정한 출근일 외에도 교육과 홍보를 위해 출근을 합니다.
 
학교 앞에서 학습지 홍보를 하고 있는 학습지교사
 학교 앞에서 학습지 홍보를 하고 있는 학습지교사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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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출근 전 오전 8시부터 담당하는 지역의 아파트에서 등원 홍보(아파트 단지나 학교 앞에서 학부모를 만나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상품을 소개하는 일)를 합니다. 몇몇 학부모들이 관심을 보여주곤 하는데 나눠준 전단지를 보고 상담 신청을 하면 참 좋습니다.

신규 회원 유치를 위한 상담은 지역 담당 교사가 직접 해야 합니다. 요즘은 대부분 맞벌이 가정이라 토요일 또는 일요일에 상담을 갑니다. 평일에는 정해진 수업 때문에 상담할 시간이 없습니다. 신규 회원 유치가 성사되면 그달에는 영업 실적으로 더이상 압박을 받지 않을 것이고 가짜 회원을 만들어서 내 돈으로 회비를 대신 내는 일은 줄어듭니다.

등원 홍보를 마치고 사무실에 출근했습니다. 방학 대비 회원 상담을 위한 전체 교육이 있어서 한 시간 동안 교육을 들었고 마감 영업 실적 달성을 위한 팀별 회의를 하고 홍보에 사용할 홍보물을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배송된 교재가 있어서 교재를 정리하고 수업할 회원의 교재를 점검하고 오늘 수업할 각 가정에 방문 문자를 발송했습니다. 가끔 수업을 잊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회원들이 있는데 수업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다음 회원 수업 시간이 줄줄이 늦게 되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닙니다.

오전 일과를 정리하다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했는데 벌써 12시가 넘었습니다. 동료 교사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서 점심 밥값을 지출하기 부담스럽지만 하루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식사라서 꼭 챙겨 먹습니다. 시간에 쫓겨서 사무실에서 3500원짜리 꼬마김밥을 먹는 날도 많습니다.

학습지 교사는 오후 4시부터 8시까지는 화장실 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바쁜 시간이라서 저녁 식사 시간을 따로 가질 수 없습니다. 일주일의 수업은 회원들의 방과후 학습, 학원 일정과 고려해서 시간표가 정해집니다. 또 학원 다녀온 아이들의 간식 시간이나 저녁 식사시간도 확인을 해서 일정을 조정해야 합니다.

학습지 교사일을 하려면 내야 하는 돈이 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정리해 둔 교재를 들고 수업을 나갑니다. 차에 교재를 싣고 오늘 수업할 회원 중에 선물을 지급할 목록을 들고 차에 실려있는 선물 상자에서 선물을 챙깁니다.

학습지 교사들의 차 트렁크에는 문구점을 방불케 할 만큼의 선물이 가득 실려 있습니다. 회원에게 정기적으로 선물을 지급하는 것은 학습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회원의 이탈을 막기 위함입니다. 회원의 이탈은 학습지 교사의 소득 감소로 직결됩니다.
 
수업할 회원 집에 방문하기 전, 회원에게 지급할 선물을 싣고 체크하는 학습지 교사
 수업할 회원 집에 방문하기 전, 회원에게 지급할 선물을 싣고 체크하는 학습지 교사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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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집에서 4과목 수업을 하고 나왔는데 다음 수업 시간을 맞춰야 해서 차에서 25분 동안 대기를 합니다. 한 회원이 갑자기 외출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수업을 못하게 되었으니 보충 수업을 해야하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밤 11시에 온라인 수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보통은 늦은 밤보다 주말에 보충을 하는데 회원 가족이 캠핑을 가기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갑자기 비게 된 한 시간 정도를 때워야 해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돌며 오전에 준비했던 홍보물로 홍보를 했습니다. 홍보물만 전하기 민망해서 지난주에 미리 사둔 젤리를 함께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수업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요즘 아파트는 정기 출입을 할 때 보증금을 받는 곳이 많아서 보증금만 이10여 만 원을 냈습니다.

밤 10시가 되어서 수업을 마쳤습니다. 10시 반쯤 집에 도착해서 서둘러 간식을 먹으며 저녁을 해결하고 11시 온라인 수업을 시작합니다. 40여 분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그날 수업했던 회원들의 교재를 채점하고 진도를 입력합니다.

어느새 새벽 2시가 된 것을 확인하고 씻고 자리에 눕습니다. 내일은 늦잠을 잘 수 있겠지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들고 잠시 유튜브를 보려다가 신상품 교육으로 사무실에 출근하라는 문자가 생각나서 얼른 내려놓고 잠을 청해봅니다. 그래도 내일은 수수료를 받는 날이라 미소가 지어집니다.

특고 학습지 교사의 공짜노동 실태

방문학습지는 구몬, 대교, 웅진씽크빅, 재능교육 등의 회사가 있고, 이 회사에 소속된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 교사는 회사에서 수수료를 받습니다. 수수료는 대개 회원이 한 달에 내는 교재비의 35%~59%를 교사 개인에게 해당하는 수수료율에 따라 받습니다. 이 수수료율은 근무연차와 상관없이 영업실적으로 정해집니다. 그래서 1년 차 교사의 수수료보다 20년 차 교사의 수수료가 더 적은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 50% 고정된 비율로 수수료를 지급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한 달에 보통 100과목에서 120과목의 수업을 하고 평균 200여 만 원의 수수료를 받습니다. 특수고용직인 학습지 교사도 2021년부터 고용보험 적용을 받게 되었지만, 수수료를 평균 보다 적게 받아 돈이 없어 보험료 내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습니다.

학습지 교사들이 받는 급여는 임금이 아니라 수수료라고 부릅니다. 홍보물을 준비하고 홍보를 하는 시간과 홍보물 게시판 부착 비용, 출근해서 상품 교육, 영업 교육을 받는 시간, 회원에게 보내는 방문 문자, 시도 때도 없는 온라인 보충 수업, 주말에 하는 보충수업과 영업 상담시간, 회원에게 지급하는 선물, 수업을 하기 위한 대기 시간과 이동시간, 수업을 하는 지역의 주차 보증금,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 수업을 마친 후 퇴근을 하고도 채점을 하고 진도를 조정하는 시간 등 회원 관리를 위해 할 수밖에 없는 학습지 교사의 노동은 대가를 받지 못합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지불받지 못하는 노동을 공짜노동이라고 부릅니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조합원들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조합원들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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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 교사들의 급여를 임금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통신비·유류비·선물비는 모두 교사가 부담합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4대보험, 퇴직금, 주휴수당도 없습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연구원에서 2023년 5월 중 진행한 '경제위기 시기 특수고용노동자 임금 불안정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월평균 233만 원을 받는 학습지 교사의 수수료에서 제반 비용을 빼고 임금으로 계산하면 학습지 교사의 시급은 6850원입니다. 2023년 최저시급 9620원에 2770원이나 모자라는 금액입니다.

"당신 아이의 학습지 교사는 오늘도 '사명감 페이'로 일하고 있다"는 기사의 제목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노동을 더이상 공짜노동이라 부르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공정한 대가를 받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비스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여민희 집행위원장이 기고했습니다.


태그:#학습지 교사, #특고 노동자, #특수고용, #서비스연맹, #학습지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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