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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 이항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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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세의 늦은 나이에 망명하여 그야말로 풍찬노숙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70고개에 다달았다. 날이 갈수록 포악성이 더해가는 일제의 포위망은 드넓은 만주땅을 종횡하며 압박하였다. 위기감을 느낀 후배 독립운동가들이 안전을 위해 더 깊은 산중으로 거처를 옮기도록 하고 신변을 보호해 주었다. 그의 목에 걸린 거액의 현상금은 중국인들도 넘보았다. 

마음은 아직 팔팔한 청춘인데 육신은 노쇠하여 행동을 억제하였다. 환후의 소식은 멀리 고향 종친들에게까지 전해지고, 망명 때 봉제사를 위해 고향에 남기로 했던 첫째 동생이 만리길을 찾아왔다. 환국을 권하러 온 것이다. 손부의 기록이다.

석주어른께서 병을 얻어 일곱 달째 병중이란 소식 듣고 장로님인 증조부(이상동)께서 난국(亂局)을 불고하고 서간도로 나오셨다. 이분은 3.1운동 때 안동에서 최초의 만세시위를 일으킨 분이다. 문중에서 환국할 여비와 일행들 인솔비용하라고 300원을 해주어서 그것 가지고 환국을 권하러 오신 것이다. 

형제 숙질분 상면하자 집수통곡(執手痛哭)의 그 비감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형님을 보자마자 손을 덥썩 잡고,

"형님, 이제 한국으로 들어가십시다, 이렇게 고생하실 줄 알았으면 왜 여기 나왔겠습니까?"

그랬더니, 잡은 속을 획 빼치면서

"나 죽기 전에는 여기를 못 떠난다. 일을 이렇게 벌여 놓고 나만 들어갈 수 없다. 씨나 떨어뜨리게 나 죽고 나거든 남은 가족들은 들어가게 하겠다."고 하셨다. (주석 3)

얼마 후 중국 하얼빈에 사는 둘째 동생이 찾아왔다. 서로 편지로 연통했던 것이다. 손부의 기록은 더 이어진다.

서로 서신 연락이 되어서 하얼빈에 사는 셋째할아버지도 때맞춰 오셨다. 아우되는 두 형제 분이 간곡히 권했으나 종내 '안 간다'는 말만 했다. 

그때까지 나라는 아직 독립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전 만주를 누비며 함께 일해 온 동지들을 버려두고 혼자 고국땅을 밟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당신이 이 땅에 왔다 간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다는 말씀과 나머지 가족들은 귀국해서 안정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할 수 없이 둘째 할아버지는 혼자 한국으로 도로 들어갔다. 법흥동 토지 일부를 팔아서   준비해 온 돈은 길림에 있는 집안 친척에게 맡겨 놓고 갔다. 돈을 지닌 채 들어오면 중국인에게 다 뺏기니까 서란현에 들어오기 전에 길림에 맡겨 두었는데 그 돈은 그대로 거기 두고 가셨다. (주석 4)

이상룡은 1926년 은신처에서 <도연명(陶淵明) 귀거래사에 화문하다>라는 시를 지었다. 62행에 이르는 장시다. 중간 부문 28행을 제하고 싣는다. 이 시기 그의 심기가 담긴 듯하다.

도연명 귀거래사에 화문하다

 돌아가리라
 나에게 밭과 농막이 있으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만사는 모두 하늘의 뜻에 따라 정해지는 것
 어찌 실패하였다고 비통해 하겠는가
 애초 이미 생각해 보지 않고 발을 내놓았으니
 비록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일
 모두가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탓이니
 어찌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하리요
 헛된 명예로 자신을 묶는 일 부끄러워서
 드디어 결산하고 걷어붙이고 나섰노라
 어떤 이는 경솔하다 갑작스럽다 말했지만 
 나는 실로 그 낌새를 살핀 바이라
 양함에 몸을 싣고 바다를 지나
 앞 길을 바라보며 치달렸다네
 험난한 만리 길 지나고 나서
 어느덧 내 집 대문 앞에 당도하였지
 처자는 반갑게 맞이하여 인사하고
 이웃들은 옛날 그대로 즐겁게 살고 있네
 오른 손으로 어린 손자 손잡고
 왼 손으론 향기로운 술 두루미 쥐었네

          (중략)

 한가한 나그네 찾아오면
 오는 손님 막지 않고 가는 손님 잡지 않네
 광복의 대 사업만은
 내 어찌 감히 잊으리요
 그러나 민중이 자각하는 때가
 광복의 운이 도래하는 날 일세
 부끄러운 뜻을 씻어내자고 물을 대고
 나쁜 생각을 지우자고 김을 매노라
 관 뚜껑 덮어야 사나이 할 일 끝난다고
 옛 시에 있다고 듣지 못 하였는가
 아아!
 단군 이래 오천년 역사는
 영원하며, 단절이 없다는 것도 의심치 않노라. (주석 5)


주석
3> 허은, 앞의 책, 158쪽.
4> 앞의 책, 158~159쪽.
5> <석주유고(상)>, 259~26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이상룡, #석주이상룡평전, #이상룡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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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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