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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음악학교를 다시 시작합니다. 바이올린 수업을 먼저 오픈합니다."

교회에서 코로나 이후로 중단되었던 음악학교를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느닷없는 바이올린이란 말에 갑자기 주변이 멍해졌다.

"엄마 바이올린 배우고 싶어"라는 내 말에 엄마는 "피아노나 열심히 쳐"로 응수하셨고 결국 로망이던 바이올린을 배우 지 못한 채 유년 시절은 끝났다.

'이 나이에도 악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와 '그래 지금이 바로 바이올린을 시작할 때다'라는 두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걱정은 슬쩍 되었지만 호기롭게 바이올린 수업을 신청했다.

어린 아이들 틈에 껴서 혼자 버벅거릴까 봐 두려운 마음이 앞섰는데 웬걸 바이올린 신청자들은 한 사람만 빼고 전부 내 또래들이었다.

"휴 다행이다."

걱정하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선생님은 바이올린을 전공한 음대생.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악기를 주문하는 과정은 너무나 순탄했다. 그 순탄함이 장차 닥칠 일들의 복선이라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레슨 첫날의 날카로운 기억
 
새로 구매한 연습용 바이올린
▲ 뉴비바이올린 새로 구매한 연습용 바이올린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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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레슨 첫날. 새로 구입한 바이올린은 내 마음처럼 반짝 빛났다. "자~ 악기를 꺼내서 턱받침을 끼워볼게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악기를 꺼낸 바로 그 순간부터 무언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활 털에 송진을 듬뿍 바르고, 턱 받침을 끼운 바이올린을 턱에 댔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선생님 원래 이렇게 불편한가요?"
"처음이라 그래요. 편안한 자리를 찾아보세요.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예요."


그래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왼쪽 턱 아래에 턱받침을 끼운 바이올린을 어설프게 받치고 자세를 잡고 활 잡는 법을 차근차근 배웠다.

"오른손으로 활을 잡아볼게요. 검지를 감듯이 잡고 약지는 세워서 활 끝부분에 댈게요. 검지와 약지의 힘으로 지탱하고 나머지 손가락들은 가볍게 얹는 정도로 잡아주세요. 활이 올라갈 때는 새끼손가락에 무게 중심이 쏠리고, 내려갈 때는 검지로 무게 중심이 옮겨갈 거예요. 자세는……."

여기까지 들었는데 내 머리는 이미 과부하 상태이다. 분명히 선생님의 말씀대로 활을 잡았는데도 오른손이 너무 어색하고 불편했다.

'이게 맞나?'

손 모양을 고쳐서 잡았는 데 활을 그을 때마다 손 모양이 망가졌다. 활을 긋고, 손을 고치고, 활을 긋고 손을 고치고의 무한 반복이었다. 선생님의 시범을 보여 주실 때는 우아하게만 보이던 활 긋기가 내가 하니 통나무처럼 뻣뻣하기 그지없을 뿐더러 또 왜 이렇게 듣기 싫은 소리가 나는 건지 원~!!

'와~~ 나 이거 할 수 있을까?'

악기를 잡은 지 5분 만에 진심 그만한다고 선언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내 자세는 움츠러들었는데, 선생님은 인내심 있게 자세를 계속 교정해 주셨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는 등 뒤의 날개 뼈를 더 조여주세요. 활을 업 할 때 어깨를 일부러 빼지 말고, 활을 올리면서는 오른손 손목을 더 꺾어주세요. 네 좋아요. 팔에 힘을 더 빼세요."

손목을 꺾고 어깨는 살짝 빼고 팔꿈치는 홱 돌리고 심지어 날개 뼈까지 조여야 하다니. 게다가 이 모든 행동들은 힘을 빼고 하라니.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선생님 저 오십견 있어요. 한쪽 날개 뼈는 이미 잘 움직이지 않고요, 테니스 엘보에 손목 터널 증후군까지 있어요'라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아~ 전혀 몰랐다. 바이올린 연주가 이렇게 온 몸을 다 써서 해야하는 줄 말이다.

이래서 악기는 어렸을 때 해야 하는데... 그동안 앉아서 일하느라 굳어버린 날개 뼈를 움직이랴, 손목을 꺾으랴, 레슨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았는데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수업에서 딱 한 가지 활 긋기만 배웠는데, 앞으로 나갈 진도들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이거 내가 할 수 있는 거 맞아?'라는 의문이 들 때 뭔가가 보였다.

흉터처럼 남은 자국. 선생님은 8살 무렵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그래 어렸을 때부터 했으니 쉽게 배웠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바이올린 몸체가 닿는 턱 부분에 까맣게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바이올린을 얼마나 많이 연습하면 턱에 자국이 생길까? 음대에 들어갈 정도라면 엄청난 시간을 연습했겠지……. 그래서 마치 바이올린과 한 몸인 것처럼 멋지게 연주 할 수 있는 거겠지.

내가 또 망각했다. 뭐든 처음부터 잘 할 수 있는 일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익숙해지고 잘 하게 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또 수많은 연습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오해도 했었다. 손에 악기를 딱 잡는 순간 멋지게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오해 말이다. 

내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이올린 연주자
 비이올린 연주자
ⓒ Image by Niek Verlaan f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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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을 나는 처음 배웠다. 처음이란 누구에게나 실수 투성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익숙한 일들이 많아진다. 그래서인지 새롭게 시작하는 것들을 버벅대는 것을 견디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고 힘들다. '못하고 서툰 나'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시간을 견뎌내야 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못 하는 나를 견디는 일이 어찌보면 제일 힘든 일이다. 오십견과 손목터널증후군 테니스 엘보라도 조금 조심해서 해보지 뭐. 그래도 뭐 어쩌랴. 안 돌아가면 더 천천히 하면 되겠지. 

40대의 내가 바이올린을 시작했으니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쌓아간다면, 50대의 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될테니 말이다. 못하는 나를 조금 더 견뎌 봐야겠다. 이런 시간을 견뎌내야 내가 어릴 적 내가 소망하던 바이올린을 연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겠지. 조금은 늦었을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을 만나야겠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바이올린, #40대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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