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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영상 통화를 하고 싶으니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셨다. 영상 통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하자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전화를 받으셨다.

엄마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뜨개옷을 한 벌씩 짜주고 계신다. 애증의 남편(아빠)에게도 한 벌, 고마운 시동생에게도 한 벌, 우리집 큰 아이에게도 한 벌, 오빠네 둘째 아들에게도 한 벌, 지금 짜고 있는 옷은 우리집 둘째의 후드 가디건이다.
   
만드실 때마다 옷을 입을 사람에게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신 후 작업을 시작하신다. 딸래미에게는 보라색 점퍼를 만들어 주셨고 오빠네 둘째에게는 검은색 후드 점퍼를 짜주셨다.

그런데 검은색 실로는 코가 잘 안 보여서 짜다가 실수를 해서 한 단을 풀어야 할 때, 다시 코를 걸 때 고생을 하신 모양이다. 우리집 둘째도 검은색을 좋아한다고 하니 검정은 피해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 만들고 있는 후드 가디건은 잿빛이 나는 파랑색이다.
 
옷을 이루는 부분들을 잇고 있는 중
 옷을 이루는 부분들을 잇고 있는 중
ⓒ 최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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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할 때마다 뒤판을 다 짰다, 앞판을 다 짰다, 소매를 다 짰다고 진척상황을 알려주시더니 각각의 조각들을 다 짰다고 보여주고 싶어서 영상 통화를 하자고 하신 것이다. 뜨개질 해놓은 옷 조각들을 비추는 핸드폰 카메라의 흔들리는 앵글 사이로 엄마의 신남이 느껴졌다.

북한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중2들 때문이라며 모든 사춘기적 반항과 까칠함의 대명사가 된 중2지만 아이는 할머니의 앵글이 비추는 대로 감탄사를 발사한다. 원래 원하는 색으로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할머니에게 "아니에요, 저 파랑색도 좋아해요"라고 싹싹하게 답하기도 한다.

외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진 것

아이와 엄마의 다정한 통화를 듣고 있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국민학교(그땐 초등학교가 아니었다!) 입학 전에 살던 빌라 옥상, 초록색 물탱크 앞에 서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기억 속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가 틈날 때마다 짜서 마침내 완성한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어색하게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가만있자, 그러고보니 주말을 맞아 혼자 외가에 가서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 먹고, TV를 독차지하고 앉아서 당시 케이블TV에서 해주던 중국 무협드라마를 1박2일간 정주행하던 날도 스쳐 지나간다.

집에 가야할 시간이 되었는데 입고 갔던 반바지에 얼룩이 묻어서 입을 옷이 없었다. 하루 왔다갈 거라 따로 옷도 챙겨오지 않았던 터라 난처해하고 있을 때였다. 할머니는 패턴도 없이 쓱쓱 재단해서 앉은뱅이 책상에 앉으시더니 모터를 달아놓은 검은색 싱거 미싱을 드르륵드르륵 돌려 반바지를 만들어주셨다.

패턴 없이 눈대중으로 만드는 것이다보니 밑위가 잘 안 맞아서 몇 번이고 입고 벗고 다시 덧대어서 마침내 바지가 완성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바지는 이불 호청을 만들려고 보관하던 원단으로 만든 거라 예쁘거나 멋진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집에서 이렇게 뚝딱 옷이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 천지개벽의 순간이었다.

잊고 있던 그 순간이 떠오르자 외할머니가 한복 바느질을 했었다는 이야기도 같이 떠올랐다. 여태까지 나는 공부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빠듯한 살림살이 때문에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결혼 후 변화한 환경이 나를 이쪽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실은 언제 땅 위로 싹을 틔울지 모르는 씨앗이 모계를 통해 내려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엄마가 첫째에게 떠주신 가디건
 엄마가 첫째에게 떠주신 가디건
ⓒ 최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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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만들어주신 옷을 본 지인들이 너는 엄마의 손재주를 닮았구나,라든가 금손의 대물림이라는 황송한 말을 했을 때 과연 그런 게 나에게 있었던 걸까? 이렇게 티 안나게 물려받는 재능도 다 있나? 의아했었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셨고 대학에서 배구선수를 하셨던 아빠를 닮아서 남들보다 언어를 익히는데 조금 더 거부감이 적었다거나, 운동신경이 좀 발달했다거나 살이 안 찌는 체형을 물려받았다는 건 내가 느낄 수 있는 대물림이었다면 바느질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도 가르치려 하거나 배우려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모계로 3대째 바느질이든 뜨개질이든 옷을 만들어 입는 결과가 나타났다. 바느질의 영역에서 내가 가진 거라고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재미있다는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것을 과연 물려받은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자고로 재능을 물려받았다는 말을 하려면 패턴만 봐도 옷이 어떤 모양으로 완성될지 머리에 떠오르거나, 패턴이 없어도 옷만 보면 비슷하게 옷을 만들어낼 수 있거나, 옷 한 벌을 만들어도 누가 봐도 만듦새가 남다른 그런 옷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여전히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는 내 유전자를 이루는 A,C,G,T 단백질 어딘가에 바느질을 좋아하라고 써있는 생명체인 걸까? 옷을 집에서 만들어 입을 수 있다는 걸 자각하게 해준 환경이 남들과 달랐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이건 유전이라기보다는 환경이 아니었을까? 환경이냐, 유전이냐, 오랜 심리학의 갑론을박 연구 주제가 오늘도 내 안에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한 가지는 알겠다

3살 때부터 엄마가 만들어 준 옷을 입고 자란 고등학생 딸은 이제 "나도 나중에 크면 엄마처럼 옷 만들어 입을래요!"라고 말한다. "옷을 왜 만들어 입고 싶어?"라고 물으니 "내 마음에 딱 드는 스타일로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으니까요"라고 아이는 답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정말 옷을 만들어 입는다고 해도, 그래서 결과적으로 4대째 옷을 만들어 입는 모계 라인이 완성된다고 해도 이 현상이 유전인지 환경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걸 알려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의 인생을 대상으로 인지, 성격, 지능 등을 검사하는 것처럼 변인을 통제해야 하는데 딸아이에게는 이미 나의 유전자와 우리집이라는 환경이 뒤섞여 버렸기 때문이다.

드라마 <환혼>에는 요괴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모계로만 이어지는 진요원이라는 소재가 등장한다. 우리 집안도 알고보니 옷을 만들어 입는 능력이 모계로만 이어지는 진요원의 바느질 버전인 건지, 그저 옷을 만들어 입어야 했던 혹은 옷을 만들어 입는 게 당연한 환경이 이 모든 궁금증의 원인인지 앞으로도 정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옷 만드는 일을 즐거워하고, 그 즐거움을 누리는 결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옷을 만들어 주면서, 받은 사람은 그 옷에 담긴 사랑을 잘 느끼면서 아껴주며 살면 그걸로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나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바느질, #유전, #환경, #뜨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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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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