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주택가, 번화가, 대형마트와 백화점 안,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전자제품 판매점. 이런 판매점은 전국에 1000여 개가 넘게 있다고 한다. 한 번쯤 동네 전자제품판매점에서 가전제품을 구입했거나 궁금한 제품이 있어 구경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자제품 판매점의 노동자들은 어떤 노동을 하고 있을까? 지난 3월 16일, 우리에게 친절히 가전제품을 설명해주는 전자제품판매 노동자 이강건씨를 만나 이 노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객을 직접 응대하며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삼성전자판매 노동자 이강건 님.
 고객을 직접 응대하며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삼성전자판매 노동자 이강건 님.
ⓒ 이강건

관련사진보기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전자제품판매 노동자 이강건입니다. 2019년에 입사해서 현장에서 전자제품을 소개·판매하는 영업사원이었고, 2021년부터 삼성전자판매지회 사무장을 맡고 있습니다."

온라인 구매 시대, 전자제품판매점의 영업사원

- 전자제품판매 사원은 어떻게 입사해서 무슨 일을 하나요? 

"삼성그룹에서 계열사 공채를 통해 입사하는 경우와, 삼성전자 판매 공채를 통해 입사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인사발령이나 사내직원공모제(job posting)을 통해 본사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매장 가면 만나시는 직원분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크게 가전, 모바일, 갤럭시 컨설턴트(삼성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무료로 알려주는 일) 이렇게 세 개의 직군으로 나눠져 있고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 반까지 근무합니다."

- 하루 9시간 이상 근무하시네요?

"네. 10시부터 업무를 하기 위해서 9시 30분에 출근해서 유니폼 갈아입고 전산 확인하고, 8시 반까지 근무인데 매장 클로징 시간이 8시 반이에요. 끝나고 나서 뒷정리와 잔여 업무를 하고 나면 퇴근시간은 저녁 9시나 9시 반쯤 되죠.

휴게시간도 1시간 30분으로 돼 있는데요. 실제로 이렇게 쉬지 못하고 조합원들도 잘 모릅니다. 노조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도 쉴 수 있는 30분의 휴게시간을 알고 있었다는 응답이 50%가 안 됐습니다. 이를 실제로 사용해본 적이 있냐는 분들도 10%가 안 됐고요.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휴게시간이므로 노동시간을 조정하기 위해 노사가 근무시간 TF를 꾸려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온라인 구매가 늘다 보니 손님도 줄고 그만큼 채용하는 직원도 줄고 그럴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저도 입사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아직까지는 오프라인 매장도 괜찮은 것 같아요. 2019년도에 매출이 2조8000억 원, 2020년도에 3조3000억 원, 2021년도에 3조8000억 원, 2022년도도 3조5000억 원 정도였어요. 그래도 점점 줄어들 것이라 예상돼서 작은 매장을 줄여나가고 메가스토어는 남기는 식으로 바꾸는 추세인 것 같아요."

직원들 일상 생활에까지 영향 미치는 실적 압박

- 영업사원이다보니 실적 압박도 엄청 날 것 같은데요?

"어마어마하죠. 흔히 영업 조직에서 나래비(일본어 '나라비') 세운다라는 단어를 많이 쓰거든요? 실적에 따라서 줄 세운다 이런 거에요. 하루하루가 굉장히 스트레스에요.

지점장도 위에서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다 보니 직원들을 압박해서라도 실적을 내기 위해 폭언·욕설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어느 정도냐면, 저는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결혼식에 가본 적이 없어요. 못 갔던 거죠. 회사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경우에도 다른 직원들한테 청첩장 주는 게 어려워요. 못 오니까요. 저도 정말 친한 지인분들의 결혼식이 있었던 날 거기서 불과 몇 백 미터 정도 떨어진 웨딩박람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종일 서서 일하는 현장, 가장 심각한 건 감정노동
 
전자제품판매점 여성노동자의 경우, 명함 속 전화번호로 불쑥 연락을 취하는 고객도 있다고 한다(자료사진).
 전자제품판매점 여성노동자의 경우, 명함 속 전화번호로 불쑥 연락을 취하는 고객도 있다고 한다(자료사진).
ⓒ pexels

관련사진보기

 
- 근무하면서 생길만한 직업병이라든가 건강상 이상이 있는 경우가 있을까요?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 반까지 고객과 테이블에 앉아서 상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속 서 있다 보니 힘들어요. 앉아 있으면 고객들이 안 좋게 본대요. 저는 신입사원 때 발이 너무 부어서 신발이 꽉 껴 아팠던 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조금 큰 걸 샀죠. 아침에는 신발이 널널한데 저녁이 되면 다시 또 꽉 껴요. 또 간혹 매장에 있는 물건을 저희가 직접 옮기기도 해요. 가전제품이 무거운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 일을 하지 않던 영업사원이 옮기다 보면 다치는 경우가 있고요.

그리고 제일 심각한 건 아무래도 감정노동이죠. 간혹 고객분들이 저희에게 '여기서 알바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여기 다 알바 아니에요?'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세요. 물론 저희가 엄청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공채를 통해서 들어왔는데 '나의 직장, 지금의 내 직무가 이렇게 무시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하죠. 그리고 판매사원, 영업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있잖아요. 그러한 무시 속에서 생기는 여러 애로사항이 있죠.

또 사람들이 삼성전자 제품을 사거나 삼성전자 판매사원들에게 원하는 바가 있으신 것 같아요. 일단 내가 피해를 봤다는 것에 대해서 화풀이 대상이 필요하고, 그 화풀이 대상이 '나한테 제품을 팔았던 사람'인 거죠.

분에 못 이겨서 직원을 폭행하는 걸 실제로 목격한 적도 있어요. 매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고객님들이 '왕'이 돼요. 신뢰를 토대로 제품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관계에서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직원으로서도 속상하고 죄송한 마음이에요. 그렇게 어떻게든 해결해주려 하지만 고객님 마음에 들지 못 할 수도 있죠."


- 그래도 규모가 있는 회사인데 고객응대조치라든가 악성 고객들에 대한 대처방법이 매뉴얼화 돼 있다거나 그런 건 없나요?

"대부분의 매뉴얼이 직원을 보호하기 보다는 고객에게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해결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또 저희가 명함을 드리잖아요. 명함이 다 개인 번호예요. 여성 직원들한테 개인적 연락을 하는 고객님들도 간혹 있어요. 제게는 새벽 네다섯 시에 전화해서 불만을 얘기하시는 분도 계셨어요. 가족들에게 미안하죠. 주말에도, 가족, 연인과 식사를 하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전화를 받습니다. 사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죠.

저는 공황과 불안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어느 순간 모든 게 다 어려워지더라고요. 눈 감고도 매번 했던 작업들도 못하고, 자꾸 집중이 안 되고, 한동안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쓰러질 것 같더라고요. 또 전화를 받는 게 너무 무섭고 싫었어요. 핸드폰 진동이 느껴지면 그냥 확 긴장이 되는 거예요.

회사에서 마음건강센터란 곳에서 상담을 받게 해줬어요. 좋은 제도지만 사전에 직원들의 마음건강에 대해서 신경 써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회사와 임금단체협약에서 마음건강에 대한 복리후생 부분을 많이 넣고자 했고, 현재 회사와 교섭중입니다."


뜻을 모아 노동조합을 설립하기까지

-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회사 내부에서 '우리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오픈 채팅방이 만들어졌어요. 이런 저런 불만들을 토로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여러 노조에 도움을 줄 수 있냐고 연락을 했고, 그중 금속노조가 가장 우리 회사를 잘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금속노조를 통해 설립하게 됐습니다."

-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바뀌게 된 점이 있나요?

"굵직하게 무언가를 해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없지만 그냥 사람들끼리 술 한잔 하면서 얘기되어 휘발될 수도 있는 일들이 좀 더 올라와서 노조에 전달되면서 해결할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었던 점들이 있죠.

모든 일까지는 아니지만 회사가 무슨 일을 결정할 때 노조의 의견을 묻는 일도 생겼습니다. 우리 손으로 작년에 처음으로 회사와 임금교섭을 했었는데요 엄청 높지는 않지만 그 동안의 임금 상승분 중에서는 가장 높았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직원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관리자가 직원들한테 폭언, 폭행을 서슴지 않게 했던 것들도 눈치 보는 이들이 생겼고, 직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을 수 있었던 복리후생이나 복지혜택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저희한테 연락이 와서 저희가 받게 해드리는 경우도 많고요.

영업하는 회사다 보니 고객 중심의 영업을 해야 한다는 것은 직원들도 이해해요. 그런데 그건 직원이 고객을 상대로 고객 중심의 회사를 만드는 거지 회사가 고객 중심으로 해서 직원을 소외시키면 안 되는 거잖아요. 회사는 직원 중심으로 가야 하고, 직원은 고객 중심으로 가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맞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인 김도하·유형섭씨가 썼습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4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삼성전자_판매노동자, #판매노동자_성과압박
댓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