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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찬 전 문재인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
 정현찬 전 문재인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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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 없지 않은가. 농어업은 국민의 생명권, 건강권 유지가 존재 이유이다. 문제는 국민의 생명권, 건강권과 직결된 농어업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땅과 바다의 오염, 자연생태계의 파괴, 기후위기는 미래의 우려가 아니라 당장 우리 코앞의 현실이다. 농어업이 환경·사람 중심으로 가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현찬(75) 전 문재인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 위원장이 <여럿이 함께 기어이 벽을 넘는, 농민이 잘 사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낸 회고록에서 강조한 말이다.

진주시 금산면 관방마을에서 태어난 정현찬 전 위원장은 1970년대 말경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했고 이후 진주, 경남에 이어 전국적으로 농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가톨릭농민회 경남연합회 이사, 전국농민회총연맹 진주시농민회장, 민주주의민족통일 서부경남연합 의장, 전농 부산경남연맹 의장, 우리영농법인 대표, 전농 의장, 진주시민버스 대표, 6월민주항쟁기념서부경남추진위 대표,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공동대표, 백남기농민범국민대책위 상임대표, 박근혜퇴진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 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 이사장, 전국민주화운동동지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농민운동에 뛰어든 배경에 대해 그는 "농사를 짓던 내가 농민운동가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진주라는 공간적 환경과 군사정권의 농민수탈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적 배경,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고 했다.

임술년 진주농민항쟁 등을 설명한 그는 "1976년 진주를 중심으로 가톨릭농민회 경남협의회가 결성되어 조직적으로 쌀값 제값 받기와 농협 민주화 활동이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으로 볼 수 없었다"며 "진주는 농민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농민운동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 지역보다 앞서 비닐하우스를 시작했던 그는 관방원예작목반을 만들어 활동했다. 그는 "비닐하우스 시설재배는 논농사와 비교해 그나마 수익성이 높았으나 상인들이 농자재 가격 농간을 부려 농민들의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며 "이웃을 설득해 농자재 공동구입, 농산물 공동판매를 추진했고, 이것이 큰 성과를 거두면서 본격적인 농민운동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고 했다.

"동지들이 나를 1세대 농민운동가로 부르는 것은 나이도 있지만, 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 농민운동이 이때부터 본격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1980년대부터 농민운동이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는 농민들과 함께 벼 이외의 작물에 부과하는 지방세인 '을유 농지세' 인하 투쟁에 이어 1984년에는 '수세 현물납부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 당시 그와 진주 농민들은 '불량종자 피망 피해보상운동'을 벌였고 이는 전국으로 번져 나가는 기폭제가 되었다.

2000년에 전농 의장이었던 그는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기치를 내걸고 제네바, 멕시코 칸쿤에 가서 투쟁을 벌였다.

유년 시절을 떠올린 그는 중학교 때 선생님이 해주었던 "교육이란 콩나물에 주는 믈과 같다. 콩나물시루 구멍으로 물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콩나물은 물이란 양분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지 않느냐"고 했던 말씀을 기억하며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고 술회했다.

농민·민주 투쟁에 앞장섰던 그는 "운동과 투쟁의 중심에 늘 농민이 있었고,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각성하며 앞장섰다. 농민들이 주도해 마을 조직을 만들고 읍면과 군, 전국 단위로 상향하는 조직 결성의 힘을 알게 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였다"고 했다.

"농민운동 과정에서 참여 농민 모두의 의사를 통해 현물납부에서 납부 거부, 폐지로 투쟁의 강도를 높였고, 끝내 이겼다는 데서 농민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투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농민운동가로서 자세를 고쳐 잡은 계기였다. 현장에 먼저 도착하고 늦게 떠나고, 많이 듣는 경청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1990년 4월 '전농' 출범 때 참여했던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 농민 단일조직인 전농의 결성은 치열했던 80년대 농민운동의 성과물이었다"며 "수많은 투쟁 속에서 농민들이 각성하고 대동단결해 이뤄낸 단일대오 농민조직이다"라고 했다.

그는 농민운동하다가 구속·수배를 당하기도 했다. 정 전 위원장은 "1990년, 통일벼 소매 투쟁으로 난생 처음 감옥 신세를 지게 되었다"며 "통일벼는 정부가 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도입한 벼 종자인데 밥맛이 떨어졌고, 찰진 밥을 좋아하는 우리 식성에 맞지 않아 시중에서 찾는 사람들이 드물었다"고 했다.

정부가 수매할 것으로 믿고 재배했던 관방마을 농민들은 뒤통수를 맞았다며 통일벼 나락을 경운기에 싣고 진주시청으로 항의하러 나섰고, 전경대원들이 막으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이른바 '똥물 투척 사건'이 벌어졌고, 여러 마을 주민들이 연행되었다가 그와 농민회 총무(정명환)가 구속되었던 것이다.

199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저지 투쟁을 벌였던 그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김영삼 대통령 정부에서 수배령을 내린 바람에 1년여간 도피 생활을 하기도 했다"며 "역사의 아이러니이고 정치의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우리영농조합법인, 날로 번창했다" 

진주농민회가 만들었던 우리영농조합법인 초대 대표이사를 맡았던 그는 "민족의 생명줄인 농업을 지킨다는 긍지로 경제협동사업을 통해 무한 봉사의 자세로 함께 하는 '참'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신조가 '항상 농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농업·농민을 위해 희생 봉사하기'였다"며 "우리 조합은 날로 번창했다"고 소개했다.

우리영농조합법인은 이후 여러 곳에 분점을 냈고, 주유소 2곳과 농약 판매점 3곳, 퇴비 제조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진주농민회는 조합 운영을 통해 진주지역의 농약 가격과 면세유류 가격을 하향 안정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했던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가 끝내 숨을 거두자 그는 '백남기 농민 범국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 '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백남기 농민의 나라 사랑, 민중 사랑, 농민 사랑을 계승하는 것이 살아 있는 이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백남기 농민의 정신을 이어받아 농업문제와 함께 평화, 통일, 민주, 인권을 지키는 사업을 계속해나갈 참이다"고 했다.

문재인정부 때 대통령 직속 농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현장 농어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제시에 주력하여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평가는 갈릴 수 있고 스스로 아쉬움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량 안보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비싼 미국산 전투기를 왜 사 오는가. 경제 논리로도 이해할 수 없는 국가 안보 차원의 지출이다. 식량도 마찬가지다. 식량 안보 측면에서 보면, 공산품을 수출해서 농산물을 사 먹으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천만이다. 농어업에 돈, 자본을 뛰어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농정이 효율과 경제성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환경과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돈이 아무리 좋아도 목숨과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회고록에는 문성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김현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최창호 산림조합중앙회장, 임준택 수협중앙회장, 진홍근 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 이사, 박흥식 전 전농 의장, 전강식 전 경남통일농업협력회 대표, 이병철 가톨릭농민회 경남연합회 초대회장, 박미정 진주농민회 간사 등의 축사가 실려 있다.

'정현찬 위원장 회고록 출판기념회 준비를 위한 후배 일동'은 오는 3월 4일 오후 6시 진주 금산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회고록 출판기념회를 연다.  
 
정현찬 전 문재인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여럿이 함께 기어이 벽을 넘는, 농민이 잘 사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낸 회고록을 펴냈다.
 정현찬 전 문재인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여럿이 함께 기어이 벽을 넘는, 농민이 잘 사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낸 회고록을 펴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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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현찬, #진주시농민회, #우리영농조합법인, #백남기 농민, #관방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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