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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 이만규는 개성에서 외과의사였지만 항일민족주의 교육운동가로 전무후무한 교육사서 <조선교육사>를 집필했다. 해방 공간 조선 최고의 교육자로 이만규, 이극로, 백남운 3인을 꼽는 데 이견은 없다.
▲ 배화여고보 교무주임 시절 야자 이만규(출처 : 박용규 박사 제공) 야자 이만규는 개성에서 외과의사였지만 항일민족주의 교육운동가로 전무후무한 교육사서 <조선교육사>를 집필했다. 해방 공간 조선 최고의 교육자로 이만규, 이극로, 백남운 3인을 꼽는 데 이견은 없다.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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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기사 <강처중과 박치우... 윤동주의 벗을 아십니까>에서 이어집니다.)

대한민국 교사들에게 '조선의 페스탈로치' '이만규'를 물으면 아는 이가 거의 없다. 해방 공간 '조선 최고의 교육자'였음에도 그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남쪽에선 완전히 잊힌 인물이 돼버렸다. 마찬가지로 이상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함으로써 식민지 조선의 슬픈 현실을 서정성 짙은 아름다운 시어로 노래했음에도 일반 대중은 그가 카프 출신인 줄은 잘 모른다. 

이데올로기가 낳은 비극은 또 있다. 이기영의 <고향>은 일제강점기 농촌을 배경으로 한 당대 최고의 농촌소설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농촌소설로 심훈의 <상록수>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심훈의 <상록수>도 유명하지만 당대 최고의 농촌소설은 이기영의 <고향>이라는 게 당대 역사의 평가다.

그러나 일반 대중은 아마도 처음 듣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작가 이기영이 카프 출신이었기에 의도적으로 배제시킨 탓이다. 그만큼 문단 내 왜곡과 은폐가 극심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1970, 1980년대 서정주를 비롯해 친일 작가들 작품이 교과서에 버젓이 실렸던 게 사실이다. 자라나는 학생들은 시험에 나올세라 머릿속에 암기하고 외우며 그 시절을 보냈다. 식민지 시절 유랑하던 조선 민중의 참담한 삶을 묘사한 작품으로 최서해가 쓴 <탈출기>가 있다. 최서해 역시 카프 출신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소설 <인간 문제>를 쓴 강경애도 그렇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수탈과 참담한 노동 현실을 소설로 탁월하게 형상화한 최고의 작가가 강경애다. 강경애가 쓴 <인간 문제>를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식민지 조선이 처한 노동 현실을 이토록 탁월하게 표현한 작품을 찾기는 어렵다.

모르긴 몰라도 <인간 문제>는 식민지 조선 사회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과 국어 교사나 알까 일반 대중은 전혀 모르는 생면부지 인물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학교 교육에서 의도적으로 배제시켰기 때문이다.

카프 서기장을 역임했던 카프의 맹장, '청년 임화'로 들어가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청년 임화의 경우 문학사에서 망각과 왜곡이 가장 극심한 경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청년 임화'를 연구하고 있는 문예비평가 늘샘 김상천에 따르면 그 왜곡의 중심에 기존 내로라하는 문학비평가들의 잘못이 컸음을 지적했다. 늘샘은 불순한 이데올로기 장애를 뛰어넘어 좌우를 아우르는 통섭의 문예비평가다. 그는 <임화 연구>를 썼던 김윤식 전 서울대 교수가 그 책에서 '거대한 사이비 조직체'로 카프를 비난했다는 사실을 한탄했다.
 
한국문학사를 인물 중심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한 <네거리의 예술가들>은 기존 문학비평서와 달리 코뮤니스트 작가 임화를 객관적 시각에서 다룸으로써 한국문학사의 지평을 크게 넓혀준 저작물이다. 저자는 역사학자 김용직의 <임화문학연구>를 인용해 임화가 기존 문단의 인식과 달리 친일활동을 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 청년 임화를 비롯해 한국문학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기술한 역작<네거리의 예술가들>  한국문학사를 인물 중심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한 <네거리의 예술가들>은 기존 문학비평서와 달리 코뮤니스트 작가 임화를 객관적 시각에서 다룸으로써 한국문학사의 지평을 크게 넓혀준 저작물이다. 저자는 역사학자 김용직의 <임화문학연구>를 인용해 임화가 기존 문단의 인식과 달리 친일활동을 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 김상천(사실과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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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어떤 문학비평가는 <한국문학의 가능성>에서 "카프는 단 한 편의 우수한 작품도 내놓지 못했다"며 이런 막가는 태도에 임화 연구자 늘샘 김상천은 분노했다. 심지어 조동일은 <한국문학통사> 5권에서 "임화는 일본 군국주의의 찬양자가 되었다"고 기술하기까지 했다. 동서양 철학을 섭렵하고 좌우를 아우른 문예비평가 늘샘 김상천의 연구에 따르면 임화는 선구적으로 리얼리즘적 단편서사시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는 대단한 독서가로서 일찍이 <조선지광>에 1929-1930년 발표된 <거리의 순이> <우리 오빠와 화로>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 <양말 속의 편지>를 통해 조선적 리얼리즘을 획득했다고 평가했다. 늘샘 김상천은 임화 연구에서 특히 김남천이 임화의 <양말 속의 편지>가 1930년 신간회 평양 집회 당시 노동자들로부터 열렬히 환영받았던 작품이었음을 회고했다며 오래된 자료를 제시했다. 당시 임화의 작품들은 '인간해방서사'이자 '쟁의서사'로서 식민지 조선 사회가 직면한 노동쟁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이다. 모두 마르크스가 쓴 <임노동과 자본>에 대한 독서의 결과였다고 평가했다.

임화는 우리 근대문학이 이식을 통해 전통을 재창조했다고 보는 이식문학론을 주창했다. 이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권영민(전 서울대) 교수는 임화를 한국문학사 서술과 문학사 이론에 역사성과 과학성을 부여한 인물로 평가했다. 늘샘 김상천의 연구 또한 임화의 단편서사시 전통은 이후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로, 그리고 김지하의 <오적>으로 이어졌음을 논증했다.

남쪽 문인들이나 문단 내 비평가들은 김일성주의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식민지 조선의 1930년대 '조선학운동'을 이끌었던 임화, 김태준을 비롯해 사회주의 계열 문인들에 대해서 혹독하게 폄훼하거나 혹평을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젠 연구의 게으름을 성찰하고 이데올로기적 폄훼를 멈춰야 한다. 1930년대 '조선학운동'이 이른바 민족주의 계열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에도 학교 교육을 통해서 임화, 김태준이 주도한 30년대 '조선학운동'에 대해 한마디 서술이나 언급조차 없었음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일제의 탄압으로 30년대 카프가 해체되는 속에서도 30년대 임화는 <개설 신문학사>를 펴내고 김태준은 <조선한문학사> <조선소설사> <조선가요집성> <춘향전> <청구영언> <고려가사>를 펴냈다. 그들의 뛰어난 '조선학운동'에 대해 "왜 대한민국 문단은 그동안 언급하지 않았고 학교는 왜 가르치지 않았을까"를 우리는 성찰해야 한다.

아직도 냉전의 고도(孤島)로 남은 채, 낡은 이념의 굴레에 포획돼 편협한 골목 비평을 더 이상 받아들여선 안 된다. 1945년 10월 미군정 당국이 경성대 학장으로 미 해군 대위를 전격 임명했다. 그러자 12월 경성대 조교들이 <조선소설사>를 쓴 코뮤니스트 김태준을 경성대 학장으로 선출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모두 분단 질서가 낳은 역사 진실의 비틀기이자 은폐이며, 따라서 다분히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것이고 편향된 성격이 매우 짙다고 볼 수 있다. 분단 질서는 그 자체가 역사의 '퇴행'으로 '죄악' 그 자체다. 분단 질서는 살아있는 역사의 진실조차 왜곡시키는 이데올로기 모순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이젠 21세기 '반쪽짜리 문학사'로는 한국문학, 나아가 K-문화를 풍부하게 숙성, 발전시킬 수 없는 시대다. 한국문학사 서술에서 윤동주와 인연을 맺었던 코뮤니스트들을 있는 그대로 언급해야 한다. 나아가 카프를 배제한 '반쪽짜리 우리문학사'를 성찰해야 한다. 성찰이 없는 학문 연구는 하지 않음만 못하기 때문이다.

태그:#이만규,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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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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