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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책표지
 <밥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책표지
ⓒ 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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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논어'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책을 내셨다. 그런데 어라, 구태여 왜 이렇게 글자를 뒤집어 놨을까? 책을 읽다보니 알겠다. 바로 거꾸로 된 이 책의 제목이 책을 쓰신 박석준님이 세상에 던진 화두구나. 

이 책은 공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책, 함께 공부하는 동학 선배님 출판사의 책이다. 하지만 그런 인연만이 이 글을 쓰게 한 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이 난무하는 세상에 이 책을 통해 먹거리의 본연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밥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아래 밥상을 바꾸면)>는 맛으로 범벅이 된 세상에 문제 제기를 한다.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란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먹어야 하는 거지? 
 
도가 밝아지지 못하는 이유를 내가 알았다. 잘난 사람은 지나치고 어리숙한 사람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마시고 먹지 않는 이가 없지만 맛을 아는 이가 드물다 . 

<중용> 속 한 문장이 등장한다. 대학 논어 맹자, 그리고 중용, 그 사서(四書)의 중용이다. 아니 밥상 얘기를 하는데 '중용'이 왜 필요한가? 

"이것이 제일 맛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지나치고,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은 맛도 모르고 아무거나 먹거나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말을 좇아 '맛집' 앞에 줄을 서기 때문에 진정한 맛, 곧 맛의 중용을 찾기 어렵다. 맛에서 중용이란, 우선 몸에 좋은 맛일 것이다. 오래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 오래, 그리고 많이 먹어도 몸을 해치지 않는 맛"이라 저자는 중용을 들어 맛을 정의한다. '단짠단짠'이나 맛의 포르노라는 말이 더는 특별한 용어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밥상을 바꾸면>은 먹거리의 본연을 논한다. 

맛의 본연, 몸의 본연을 되찾자 

"어진 사람이 오래 산다"는 글 중에는 공자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어진 사람'이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의 그 어진 사람이다. 공자님은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유혹에 빠지지 않고"라고 하셨단다. 밥상학을 들춰보는데 공자님 말씀을 영접하게 된다. 

그런데, 왜 어질면 오래 살게 되는 걸까?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산이 늘 그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란다. "내일 해가 다시 뜰 것임을,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즉 어진 사람은 기우(杞憂)에 빠지지 않아 근심 걱정이 없다.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믿는다. 그러니 의심할 필요가 없고, 쓰러져도 걱정이 없다. 관계를 이용하여 요리조리 더 큰 이익을 보려하지 않고 늘 변함없는 산처럼 믿음을 갖고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니, 가슴앓이를 할 필요도 없고, 무모하게 몸을 쓸 필요도 없다." 그러니 건강하게 오래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그저 서로 믿고 살아가면 되는 것을, 안타깝게도 인간의 역사는 병의 역사가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인류는 '최소 10만 년 동안 수렵 생활을 하면서 하루 한 끼, 불규칙한 식사를 해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기아유전자(혹은 검약 유전자)를 지니게 된 인간, 기아 유전자는 소화된 음식을 지방으로 바꾸어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대책으로 이런 유전자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 유전자 덕분에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인류, 그런데 농경 사회 이후 부의 축적이 일어나고 더 많이 먹게 되면서 사회의 진화가 몸의 진화를 따라잡지 못하며 병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고대 그리스 이후, 동아시아에서 의학이 발달하는 시기가 비슷한 것이 이런 연유란다. 

그래도 농경 사회에서는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자고, 식사도 여기에 맞추는 등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생활하던 사람들이 자본주의 시대 이후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자본주의 공장제 노동에 맞춘 인류가 본연의 몸과는 다른 삶의 물결에 따른 식습관, 좀 더 일찍부터 세 끼를 먹기 시작하는 등 자연의 흐름과는 다르게 살아가며 인간의 몸과 불화를 본격적으로 일으키게 되었단다. 

단맛의 함정

우리는 바나나맛 우유와 게맛살처럼 바나나가 들어있지 않은 우유와 게맛살이 들어있지 않은 음식에 길들여져 살고 있다. 식품 회사가 '맛'이라 이름 붙이고, 우리도 '맛'으로 음식을 고르지만 사실 이들은 '맛'이 아니라 '향'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런 인공적인 향을 맛이라고 느끼는 세상, 향으로 느끼는 맛, 혀로 느끼는 맛을 넘어 몸으로 느껴지는 맛으로 음식을 취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더 정확하게는 그것을 먹어서 몸에 나타나는 효과, '기'로서의 맛으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코나 미각이 아니라, 미각과 후각, 청각, 시각, 통각 등 온몸의 감각을 포함하고, 더 나아가 그 맛을 먹음으로써 변화될 몸의 상태까지를 고려하는 것이다.

기로 먹는 맛이라? 단맛의 경우, 그걸 너무 과다하게 섭취하면 비위의 기를 너무 크게 만들게 되는데, 비위가 그 기가 너무 세지면 외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소화불량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기순환 장애는 그저 소화불량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생식 기능 장애는 물론, 뼈가 약해지고 허리도 아프고 이명과도 같은 증상이 차례로 발생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단 걸 많이 먹여 그 사람의 정력과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밸런타인데이 풍습을 참 이해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단맛의 바다에 빠진 우리, 이제라도 식당에 가서 이 한 마디를 덧붙이라 간곡하게 권한다. '달지 않게 해주세요.' 

"음식도 독이 된다"에서 저자의 주장은 결국 '기의 중용'에 이른다. 너무 달게, 너무 짜게 먹는 것이 더는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각종 첨가물이 범람하는 인스턴트식 세상에서 그럼에도 저자는 다시 한번 우리 몸의 본연을 말한다. 그리고 변화된 밥상, 중용의 몸이, 건강한 정신과 삶을 만들어 낼 것이며 역사를 제대로 이끌어 가는 것이라 강변한다.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일차적으로 자연을 먹지만, 그 다음으로는 음식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하늘과 땅의 기를 먹게되며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킨다. 인간의 노동이 자연을 변화시키지만 그 변화로 인해 인간 자신이 변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한 상호간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 역사이며 그 역사는 바로 음식 속에 들어있다. 

밥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 음식과 맛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위하여, 2022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선정작

박석준 (지은이), 바오(2022)


태그:#밥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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