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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처음 발목이 부러져보니 몰랐던 것도 너무나 많고 새롭게 알게된 것도 많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기자말]
제주에 있다 보니 육지 사는 지인들이 수시로 온다. 종종 지인들에게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제주의 숨은 비경을 안내하곤 한다. 표선의 아름답고 드넓은 해변을 돌아보며 4.3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바닷가 앞 정자에 둘러앉아 붉은 깃발 꽂힌 당을 보며 설문대할망에 대해 설명한다. 공감하며 몰입하는 지인들 보면서 섬과 뭍을 잇는 보람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
 
제주 성산읍 수산리에 있으며 예전에 말과 소에게 물을 먹이고 주민들의 식수로도 사용한 커다란 못이다.
▲ 수산 한 못 제주 성산읍 수산리에 있으며 예전에 말과 소에게 물을 먹이고 주민들의 식수로도 사용한 커다란 못이다.
ⓒ 김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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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 전 그날도 그랬다. 못에 비친 하늘과 구름이 아름다운 성산읍 수산리 '수산 한 못'을 지인들과 둘러 보았다. 돌아 나오는데 풀들에 가려진 경사를 못 보고 그만 발목을 삐끗했다. 몹시 아팠지만 그저 인대가 늘어났겠거니 했다. 두 시간 정도 지나자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토욜 저녁 무렵이라 서귀포 응급실로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아뿔사, 발목이 부러졌단다.

발목이 부어 반깁스 한 채 목발을 받아 집으로 왔다. 뼈가 부러진 건 처음이고 목발도 처음이다. 목발 짚으니 몇 발자국만 걸어도 겨드랑이가 너무나 아팠다. 하루가 지나자 요령이 생겨 겨드랑이 대신 손목에 힘을 주었다. 그랬더니 겨드랑이 대신 손목이 아프다. 다친 발을 못쓰니 다른 발에 힘을 주게 되는데 무릎에 허리까지 통증이 시작되었다.

혼자 지내기 어려워 가족들 있는 서울로 와 지내기로 했다. 항공사에 전화해 휠체어 신청을 하고 지인들과 함께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나의 휠체어 생활이 시작되었다. 항공사에서는 친절하게 맞이하고 휠체어를 내주며 사용법을 상세히 안내했다.
 
휠체어에 앉으니 보이는 풍경이 다르고 위치가 다르다.
▲ 휠체어에서 보는 풍경 휠체어에 앉으니 보이는 풍경이 다르고 위치가 다르다.
ⓒ 김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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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앉자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서 있을 땐 허리춤 즈음에 있던 것들이 이제 바로 눈앞에 있다. 정신이 산만해지고 혼란스러웠다. 발이 부어 아직 통깁스를 못한 채 휠체어에 앉았는데 사람들은 그냥 발 앞으로 마구 다닌다. 부딪힐까 봐 너무 무서웠다. "어어 잠시만요" 해도, 공항이 시끄러워 그런지 잘 안들리나 보다.

특히 사람들이 트렁크를 밀며 바로 발 앞을 지날 때는 진짜 오싹했다. 아니, 다친 거 안 보이나? 정말 이상했다. 예전에 혹시 나도 그랬을까, 떠올렸다. 안 그랬을 것 같은데 어쩌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안 보였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휠체어 탄 채, 입국장을 지나 검색대를 통과했다. 노트북을 꺼내고 가방은 바구니에 담았다. 팔 벌리고 선 채 검색하는 것과는 달리 별도의 라인에서 앉은 채 몸 검색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탑승구까지 가는 내내 항공사 직원이 휠체어 밀어주며 안내했다. 교통약자가 통과하는 별도의 라인이 있었고 빠르게 탑승구까지 갈 수 있었다. 교통약자 라인은 함께 간 지인들 모두에게도 해당되었다. 전에도 있었을텐데 그동안 몰랐다. 안 보였던 게다.

탑승시간이 되자 항공사는 휠체어 탄 사람을 가장 먼저 타게 했다. 연결통로를 이용해 비행기 앞까지 갔고 기내에서는 목발을 이용해 한 발만 디디며 좌석까지 갔다. 다행히 비교적 앞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지나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사전에 설명을 듣긴 했는데 휠체어 승객은 가장 먼저 타고 가장 나중에 내린다.
 
비행기 연결통로는 교통약자에게 꼭 필요하다.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 비행기 연결통로 비행기 연결통로는 교통약자에게 꼭 필요하다.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 김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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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했다. 불편한 몸으로 비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있는 건 더 힘들다. 기내에서 화장실 이용하기도 어려운데, 왜 가장 먼저 타고 가장 나중에 내리는 걸까? 이런저런 이유를 떠올려 보는데 마땅치가 않다. 난 휠체어 생활자로서 좁은 공간에 가급적 덜 있고 싶다. 가장 늦게 타고 가장 먼저 내릴 수는 없는 건가, 항공사에 묻고 싶다.

다치고 나서 3주쯤 후, 제주에 일정이 있어 다시 비행기를 타야 했다. 휠체어 이용자라고 사전에 신청을 했고 기내까지 연결통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공항 사정 상 연결통로가 안 될 수 있고, 그럴 경우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제주공항에 착륙하니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놀라고 당황했지만 그래도 휠체어를 내려주는 리프트가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허걱! 이 항공사는 리프트가 없다는 거다. 나는 계단을 전혀 오르내릴 수 없는데 말이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태그:#휠체어생활,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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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생태, 평화, 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현재 제주에 살고 있다. 섬과 뭍을 오가며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데 시간을 보내는 삶을 만끽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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