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1부 다다익선에 투입된 삼성TV, 사실은 이랬다에서 이어집니다. 
 
1988년 백남준을 만났을 때 그를 회상하는 '남중희' 선생 영상 인터뷰 캡처
 1988년 백남준을 만났을 때 그를 회상하는 "남중희" 선생 영상 인터뷰 캡처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2부는 백남준 유머로 시작한다. 백남준이 1988년 9월 15일 과천관 다다익선 기념사에서 한 말 "내 어릴 때 별명은 '헐렁이', 이를 영어로 하면 '소프트웨어'다. 그 헐렁이를 삼성전자가 받아준 게 내 작품이다!"로 시작한다. 그는 예술만 아니라 유머에서도 천재였다.

그의 입담은 재치와 에스프리로 넘친다. "예술이란 사기, 사람을 얼떨떨하게 하는 것", "예술이란 재미(FUN! FUN! FUN!)"라고 또 "누가 당신이 대통령 되면 세계문제 어떻게 해결하겠냐고 물으면, 석유를 쓸모없게 만들겠다. 대신 정보를 에너지원으로 삼겠다" 등 끝이 없다.

그럼 지금부터는 88년 당시 다다익선 기계 기사였던 남중희 선생은 인터뷰를 통해 당시 관장실 옆 소회의실에서 다다익선 기자간담회가 열렸는데 그 풍경이 어땠는지 알아보자.
 
백남준 I '달은 가장 오래된 TV', 가변크기, CRT TV 모니터 13대, 12-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1채널, 컬러, 유성, DVD 1965-1976(2000).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백남준 I "달은 가장 오래된 TV", 가변크기, CRT TV 모니터 13대, 12-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1채널, 컬러, 유성, DVD 1965-1976(2000).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 백남준아트센터

관련사진보기

 
기자들, 백남준에게 던질 질문 노렸으나 그 앞에서 입도 벙끗 못했다고. 왜? 백남준은 물 마시고 좌중을 둘러보더니 "태고 때는 말이야, 우리 동북지방에 한 '3개월 동안' 한 번도 해가 뜨지 않고 늘 밤인 적이 있었어"라고 말을 꺼냈단다.

그러면서 "일본, 중국, 한국은 음력을 쓰잖아. 당시에는 해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 달을 봤겠지. 달을 보고 가령 예를 들어 달무리가 서면 내일 비 오겠다, 달이 이제 그 어떤 크기에 따라 날짜가 얼마만큼 갔다고 알 수 있는 거고. 이 지구상 모든 사람 달을 쳐다보면서 정보를 공유했지" 그걸 주제로 한 내 작품이 '달은 가장 오래된 TV(1965)'라고 하셨단다.

백남준은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 문화를 양력을 사용하는 서양 문화보다 더 높이 쳤다. 사실 옛날 할머니들 음력으로 사셨는데 계절의 변화 예측은 정확했다.
 
백남준 I '선덕여왕' 1993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백남준 I "선덕여왕" 1993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 백남준아트센터

관련사진보기

 
백남준이 이렇게 말을 꺼내자, 기자들 순간적으로 숙연해지고 질문할 엄두도 못 냈다고. 기자들 선생님 입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덕여왕, 첨성대를 지었어, 선덕여왕 개구리 소리 듣고 상대 군사정보를 파악했지" 그래서 "내가 선덕여왕 로봇을 만들었지"라고 백남준은 천문학 관심 많은 이 여왕을 높이 평가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백남준은 "옛날에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잖아! 마찬가지로 이제는 '종이는 죽었어!' 단 화장실 종이는 빼고" 뭐 이런 식 말로 좌중을 웃기고, 그날 선생님의 타고난 입담, 천재성을 느꼈단다. 또 백남준은 문자세대에서 영상세대로 소통방식을 바꾼 예술가답게 유머만 아니라 '소통의 귀재'로 기억된다고.

3층 기획전 : 첫 작품, '한국으로의 여행'
 
시게코 I "한국으로의 여행(Trip to Korea)" 9분. 장면 중 한 컷. 백남준 한국방문에 대해 크게 만족하다. 1984년
 시게코 I "한국으로의 여행(Trip to Korea)" 9분. 장면 중 한 컷. 백남준 한국방문에 대해 크게 만족하다. 1984년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번 기획전은 4년간 축적된 자료와 백남준 관련 7인 인터뷰가 근간이 된 전시다. 현장에서 보지 못하고 손으로 만지지 못한 걸 체감할 수 있는 '아카이브' 전, 이 전시는 '한국으로의 여행(Trip to Korea)'으로 시작한다. 당시 전두환 시대라 사진 촬영이 금지돼 백남준 조수 '폴 개린'이 비밀리 찍었다고, 편집은 물론 백남준 부인 '시게코'가 했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이지희 학예연구사가 백남준 살았던 뉴욕 백남준 아파트 머서(Mercer) 가 110번지에서 출장이 시작한다. 거기서 우연히 '한국으로의 여행' 영상을 발굴하고 이번에 소개하게 된 것이다. 이지희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얘기를 꺼냈다.

"제가 뉴욕 소호 백남준 살던 곳에 가서 벨을 누르니, 노신사 '노만 밸러드(N. Ballard, 백남준 조수, 레이저아트 거장)' 나왔고, 실내에는 크고 작은 모니터는 반짝반짝 불이 들어왔어요. 벽에는 한자, 영어, 드로잉이 빼곡히 걸려 있었고, 지금은 '구보타 시게코 비디오아트 재단'이 됐어요."

이 출품작은 1984년 6월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세계적 선풍을 일으킨 백남준이 34년 만에 '금의환향' 하는 모습과 선친 산소를 성묘하는 모습 등이 기록한 것이다.

지구촌 평화기원 '세계와 손잡고'

이번엔 '세계와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를 보자. 이 작품은 1988년 9월 11일 KBS 1TV에서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세계 11개국과 연결한 47분짜리 '위성 아트'다. 여기에 나오는 백남준 한복과 갓을 쓰고 TV 앞에서 제사 지내는 퍼포먼스가 익살스럽다. 그리고 김덕수패가 막 가동된 '다다익선' 앞에서 펼친 사물놀이도 생중계됐다.
 
백남준 I '세계와 손잡고'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7분, 1988. EAI 소장
 백남준 I "세계와 손잡고"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7분, 1988. EAI 소장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당시 이 작품 연출가는 박윤행 KBS PD, 그도 이번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당시로는 위성 방송이 첨단기술이라 가슴을 많이 졸였다"라고 털어놓았다. 중간에 방송이 끊어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가까이 본 백남준은 어땠냐?고 물었다.

그는 "아주 자신만만하면서도 대단히 자상한 분이었어요. 쉽게 범접하기 어려울 그런 인물일 것 같으면서도 일단 벽을 허물면 자상하기 짝이 없었죠. 세심하게 마음 써 주시고 그런 부분이 아주 따뜻한 대가였죠"라고 답했다.

이 영상은 세계올림픽을 맞이해 전 세계 춤과 노래 대중문화의 향연을 소개한다. 다다익선처럼 다양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각국 문화, 예술, 스포츠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브라질 '삼바' 축제 등도 나온다. 특히 흥미로운 건 훈련된 코끼리가 축구를 하는 인도 영상 장면이다.

영국 천재 연예인 '보위'의 춤이 여기서 하이라이트, 당시 BTS가 있었다면 그를 대신했을 텐데. 아직 '케이팝' 등 한류가 없는 시대 한국 문화가 아직 미국 공공방송에서는 존재감이 별로 없을 때 백남준은 한국 전통문화의 전파자로 큰 몫을 했다. 그의 목표는 언제나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해 암울한 시대를 걷어내고 지구촌 축제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것이었다.

'폴 개린'의 백남준 예술론
 
2016년 백남준 추모 10주년에 독일, 미국에 흩어진 백남준 기술자와 함께 한국 왔을 때 찍은 '폴 개린' 사진
 2016년 백남준 추모 10주년에 독일, 미국에 흩어진 백남준 기술자와 함께 한국 왔을 때 찍은 "폴 개린" 사진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제 이지희 학예연구사가 2022년 6월 22일 뉴욕 백남준 아파트에서 만난 미국인 조수 폴 개린(Paul Gerrin)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그도 비디오작가로 백남준을 이렇게 봤다.

"백남준 비디오는 자연처럼 강물이 흐르고, 새가 노래를 부르고 바람이 불어오는 걸 느끼게 되죠? 그러나 자연 속 콘텐츠를 보는 게 아니라 감각을 통해 느끼는 거죠. 그의 작품은 TV를 보는 것과 다큐 영화와는 전혀 달라요. 시청각적 센세이션이고 의식의 흐름이에요."

또 우리가 처음 듣는 백남준 이야기도 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때 일이다. 백남준은 이 행사 성공을 위해 다음 해 쓰러질 정도로 열정적이었지만, 그 당시 백남준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도발적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뭘까? 바로 돈이 가득 든 초록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외국 작가에게 직접 현금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코미디 같은 사건이다!

이건 광주비엔날레 성공적 개최를 위한 그만의 행동방식이었다. 사실 관객이 80만 명이 몰려들어 대성공이었다. 그 목적은 한국을 문화 중심지로 세계지도에 올리는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가장 중요한 세계적 미술축제였다. 당시 <르몽드>가 광주비엔날레 소식을 전했는데, 한국이 문화국으로 도약하는 걸 은근히 경계하는 눈초리였다.

다다익선 복원과 그 교훈
 
아카이브전 '고장 난 TV', 다다익선 10인치 모니터 점검 사진 2020
 아카이브전 "고장 난 TV", 다다익선 10인치 모니터 점검 사진 2020
ⓒ 국립현대미술관

관련사진보기

 
여기에는 '고장 난 TV' 코너도 있다. 여기서는 그동안 다다익선 복원 과정을 상세히 알려준다. 2003년 모니터를 전면 교체, 2018년 2월 전면적 복원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고, 2019년 9월 '다다익선 복원 3년 계획'을 세웠고, 국내외 전문가 자문을 거친 뒷이야기도 나온다.

이제는 다다익선을 24시간 보는 것은 무리다.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가동시간은 주 4일, 하루에 2시간 정도로 제한한다. 이런 20년간 과정을 통해 관객은 다다익선은 소중한 작품임을 깨닫게 됐다. 이번 보존복원 사례를 <백서>로 만들어 국내외에 소개할 예정이란다.

이은주 사진가, 백남준의 말년을 찍다 
 
이은주 I '백남준 초상' 인화지에 크로모제닉 프린트 1992. 작가 소장
 이은주 I "백남준 초상" 인화지에 크로모제닉 프린트 1992. 작가 소장
ⓒ 이은주

관련사진보기


이 밖에 이번 기획전에는 '움직이는 아카이브' 코너도 있다. 다른 건 생략하고 백남준의 사진가 중 한 사람인 이은주 작품을 소개한다. 그녀는 1992년부터 백남준 허락을 받아 그를 찍었다. 90년대 백남준의 '해맑은 인간미'를 빛내는 사진이 많다. 그러나 1996년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로는 투병 중 작업실에서 촬영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이은주 작가는 그의 사진 인생 40년에서 1992년이 가장 각별했단다. 왜냐하면, 그해 백남준과 함께 '마더 테레사'와 '천경자'와 인연을 맺었기에. 이은주 작가는 백남준 장례식 사진을 찍으면서 꽃밭에 누운 그를 보고 '꽃밭으로 돌아가셨어요'라는 작품도 남겼다.

덧붙이는 글 | [1] 게임형 온라인 프로그램 <다시, 다다익선> 이미지 www.themorethebetter.kr
[2] 2022년 11월 8일 9명 국내외 백남준 전문가가 참가하는 국제학술 심포지엄 <나의 백남준> 과천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그리고 11월 9일부터 <백남준 효과전> 30여 명 작가 참가해 120여 점 선보인다.


태그:#백남준, #남중희, #박윤행, #이은주, #폴 개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