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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5일 열린 '다다익선' 재가동 축하 기념행사
 2022년 9월 15일 열린 "다다익선" 재가동 축하 기념행사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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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3년 만에 <다다익선> 복원을 완료해 지난 9월 15일 재가동 행사와 퍼포먼스를 '과천관'에서 진행했다. 손상된 브라운관(CRT) 모니터 737대 수리했고, 6인치 및 10인치 266대 모니터 외형을 살려 평면 디스플레이(LCD)로 교체했다. 예산이 총 37억 들었다.

동시에 백남준 아카이브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전도 내년 2월 26일까지 3층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주로 그동안 축적된 자료 200여 점과 7인의 구술 인터뷰로 구성돼 있다(이 글의 1부와 2부에서 언급한 다다익선 관련 인사들의 이야기는 이 인터뷰에서 인용한 것임을 미리 밝힌다).

벌써 36살 된 '다다익선', 재가동 보니 역시 첨단이다. 그 규모과 내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당시 '88 세계올림픽'이 열리면서 온 국민의 염원과 에너지를 집결시킨 측면도 있다. '다다익선' 복원은 어찌 보면 백남준의 '예술적 기원'을 피드백 하게 한다.

이 작품의 외양이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닮아 한국적이고 친근감도 많이 간다. '다다익선'은 그냥 비디오아트 작품이라기보다는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해 관객의 반응을 일으키는 미디어아트의 전형을 보여준다.
 
다다익선에 나오는 영상들 미디어 아트의 단초를 제공하다. '백남준(NJP I, II, III)
 다다익선에 나오는 영상들 미디어 아트의 단초를 제공하다. "백남준(NJP I, II, III)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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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익선 영상은 남대문, 고려청자, 한복과 파리 개선문, 파르테논 신전, 뉴욕빌딩 겹치는 장면 그리고 '86 아시안 게임과 자동차 경주, 유명 예술가·무용가·작곡가 공연 등도 소개된다.

다다익선은 알다시피 여러 번 고장 나, 그의 애호가들 애를 태웠다. 고장이 난 후 복원 방식에서 의견도 분분했다. 그러나 이번 3년 만에 드디어 다다익선이 점등되고 재가동되자 여기 참석한 사람들 "야! 멋지다!" 소리치며 환호했다. 때맞춰 한예종 최준호 교수가 준비한 축하공연 '다시 연결된 신호'와 창작그룹 '노니' 공연이 이어져 대성황을 이뤘다.

이를 위해 국립미술관 6명 과장 및 5명 학예연구사가 총출동하고, 이지희 연구사는 기획전을 위해 뉴욕 출장까지 다녀왔다. 그러나 아쉬운 건 점등된 지 5분 만에 모니터 1대가 꺼졌다. 이번에 수리를 맡은 권인철 연구사도 밝혔지만, 원형보존이라는 명분 때문에 문제 있는 CRT를 무리하게 썼기 때문이다.

모든 전자제품은 20년 지나면 반드시 고장이 난다. 전자 작품도 같다. 이걸 잘 아는 백남준도 고장이 나면 신형으로 바꾸길 늘 권해 왔다. 어쨌든 CRT를 이제라도 LCD로 교체하면 된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미국 국립미술관 내부, 백남준 전용 아카이브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미국 국립미술관 내부, 백남준 전용 아카이브실
ⓒ Smithsonian Americ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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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립미술관은 백남준 전시에 열정이 약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국립미술관과도 비교된다. 2006년 백남준이 타계했을 때, 이 미술관은 백남준 상속자 하쿠타의 허락을 받아 백남준이 작업을 위해 모아 놓은 기물을 7대 트럭에 실어 미국 국립미술관 아카이브실로 날랐다.

이런 오브제는 마치 쓰레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10~20년 계획으로 미국미술관 학예사들, 지금도 이를 분류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미술관은 백남준 10주기인 2012년~13년 9개월간 '글로벌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그 중간 과정을 전시했다.

'다다익선' 왜 만들었나?
 
1986년 백남준의 국립현대미술관 방문. 왼쪽부터 남중희, 백남준, 김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1986년 백남준의 국립현대미술관 방문. 왼쪽부터 남중희, 백남준, 김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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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미술관은 그 위상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1986년 과천관으로 이전했다. 그 과정에서 "왜 다다익선을 만들게 되었나?" 당시 김원 건축가의 말이다.

"당시 국립미술관이 과천으로 이전하면서 추진위원장은 이경성, 국제 공모해 재미 건축가 김태수가 당선돼 그 안 대로 공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요. 완공 때쯤 당시 이진희 문화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했는데 누가 "어? 뉴욕 구겐하임 닮았네?"라는 말에 장관이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비상이 걸렸어요." - 전시 비디오 영상에서

그래서 미술관은 그 대안으로 건물에 시선이 가지 않고 작품에만 시선이 가게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때 백남준과 가까운 천호선 예술국장이 백남준을 추천했다. 백남준 이 소식을 듣고 "내 작품은 첫눈에 사람을 사로 잡고 다음에 뭐 나올까 계속 보게 되지! 모니터만 주면 한 번 해보겠다"라고 해 성사되었다. 애초 예산도 없었다.

이제 미술관은 모니터를 얻는 게 과제였다. 그래서 처음엔 대우에 청했으나 난색을 보였고, 삼성도 곤란하다고 해, 김원 선생이 중재에 나섰다. "삼성 TV, 1대 50만, 1000대면 5억 정도니, TV보다 광고 효과보다 더 낮지 않으냐"라고 설득해, 마침내 삼성TV 1300대 기증받았다.

이정성 기술자, 누구?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백남준이나 그걸 가동한 사람은 이정성 전자 테크니션이다. 그는 다다익선을 계기로 백남준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평생 백남준과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1988년 이후 지금까지 30여 년 '백남준의 손'이 되었다.
 
1988년 다다익선 '이정성' 기술자와 '안종현' 운영 및 시설관리 책임자 그리고 '백남준'
 1988년 다다익선 "이정성" 기술자와 "안종현" 운영 및 시설관리 책임자 그리고 "백남준"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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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연인지 그의 인터뷰(2021년 12월)를 들어보자.

"그 시절 난 작은 전자회사에서 CATV나 삼성전자의 쇼룸 구성 그런 걸 하고 있었고, 삼성전자에서 부탁한 530대짜리 'TV Wall'을 만들었어요. 아마 그걸 참고했는지 나한테 오신 것 같아요."

그때 백 선생은 "1003대짜리 TV 타워를 만들려고 하는데 할 수 있겠어?" 물으셨어요. 난 그거 반쯤 크기도 해 봤으니까 할 수 있어요" 했더니 선생님께서 묻지도 않고 "그럼 잘해줘!" 이렇게만 말하고 미국으로 가셨어요. 큰소리를 쳤는데 "아, 이거 큰일 났다 싶었죠."

그러니 "당시 제작할 때 전기드릴조차 없어 직접 손으로 했어요. 비디오 4개 틀어서 1003대가 작동하려면 분배기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엔 이걸 파는 가게도 없었고,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는데 힘들었죠. 부품은 삼성전자에서 공급받았어요"라고 설명했다.

또 말한다. "다다익선 만들 때 백남준은 자세하게 부탁하거나 설명도 없이 작가가 원하는 정도만 언급해 나머지는 나보고 다 알아서 하라는 식, 그래서 당황했죠. 백남준은 다다익선 3분의 2만 전등이 되어도 성공이라고 봤는데 전원이 다 들어왔을 때 정말 좋아했어요!"

학예연구실장 유준상의 헌신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임히주, 백남준. 유준상 당시 국립현대 학예연구실장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임히주, 백남준. 유준상 당시 국립현대 학예연구실장
ⓒ 서울시립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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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간담회에서는 1988년 4월 11일 타자로 작성한 다다익선 보도자료가 제공되었다. 백남준 예술론을 백남준과 동갑인 당시 학예연구실장 유준상이 썼다.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백남준의 대작인 다다익선에 대한 그의 애착과 열정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술과 과학이 협력해야 인류의 소통을 최대화하는 기능이 가능해진다. 비디오아트는 바로 그런 면에 최적이다. 예술이 사회적 기능을 실천하려면 새로운 복합예술방식이 필요하다. 현대는 예술이 기술과 미적 감각의 총집합체가 되고, 상호보완적 방식이 돼야 한다."

그러면서 "백남준은 '만년에 딱 한 번, 천년에 딱 한 차례(萬歲一期 千載一會)'가 온다는 투철한 정신으로 비디오에 시대성을 담았고, 그 결정판으로 다다익선을 완성했다며 이 작품을 조국에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추진했다"라고 기술했다.

"예술은 짧다", I HAVE? I GIVE?

1부를 끝내면서 백남준이 던진 괴짜 예술론,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가 뭔 뜻인지 살펴보자. 이건 백남준이 당시 다다익선 골조설계를 맡은 김원 선생에게 한 말이다.
 
2022년 7월 5일, 김원 선생이 자신의 사무실 광장건축환경연구소에서 한 영상 인터뷰 캡처
 2022년 7월 5일, 김원 선생이 자신의 사무실 광장건축환경연구소에서 한 영상 인터뷰 캡처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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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은 영상에서 "난 건축가이니까, 직업상 건물이 50년, 100년 가는 걸 보통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백 선생은 내게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라고 했어요. 이미 바이올린 끌고 가는 행위예술로 백남준은 예술이 순간에 사라진다는 걸 보여줬죠."

백남준의 이런 미학을 반영된 세계 미술계의 예를 들어보면 베니스비엔날레다. 여기서 순간성을 완성하는 퍼포먼스 아트로 2017년과 2019년에 2번이나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행사 '카셀 도쿠멘타'도 그렇다. 올 예산이 약 600억 원이다. 최근 끝났다. 여기서도 주 전시장 기둥에 'I have, I give'라는 글귀가 써 있다. 결국, 예술이란 모두 짧게 '공유(give)' 하는 거지, 오래 '사유(have)' 하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 하여간 독일은 이를 통해 세계미술발전을 위해 600억 원을 단기간에 쏟아부은 셈이다.

덧붙이는 글 | [1] 게임형 온라인 프로그램 <다시, 다다익선> 이미지 www.themorethebetter.kr
[2] 2022년 11월 8일 9명 국내외 백남준 전문가가 참가하는 국제학술 심포지엄 <나의 백남준> 과천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그리고 11월 9일부터 <백남준 효과전> 30여 명 작가 참가해 120여 점 선보인다


태그:#안종현, #백남준, #이정성, #김원, #유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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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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