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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4월 11일 까미노 15일차
Casar de Caceres-> Canaveral 31.5km 9시간 정도 소요
 
아침 일찍 순례길을 걸을 때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 일출 아침 일찍 순례길을 걸을 때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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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소에 걸었던 거리보다 훨씬 긴 31.5km라서 아침 일찍 서둘러 나섰다. 이날 묵을 예정인 '알베르게 까냐베랄'은 수용인원이 최대 23명이란다. 어제까지 내 앞뒤로 걷던 사람들을 헤아려 보니 20명 정도이지 않았나 싶어 출발해 본다.

갈 길이 먼데 길은 험하기까지 하다. 때로는 오르막, 때로는 너덜길이 이어졌다. 그동안 본 적 없는 큰 강도 나타났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길다는 타구스강 혹은 타호강이라 불리는 강이다. 다리는 높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데 바람마저 심하게 불어 건너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간신히 다리를 건너니 언덕 위에 정자 비슷한 쉼터가 보인다.
    
타구스강의 다리가 굉장히 높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데 바람마저 심해서 건너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 타구스강 다리 타구스강의 다리가 굉장히 높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데 바람마저 심해서 건너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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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는 며칠 전 예약 없이 갔던 숙소에서 도움을 주었던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발에 테이핑을 하고 있었다.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 말을 건넸으나 청년은 별일 아니라 하고는 오히려 바게트가 남았다며 건넨다. 빵을 먹으며 청년과 대화를 나눴다.

그의 이름은 '화이트'로 독일에서 왔고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직업을 찾기 전에 순례길을 걷기 위해 왔다고 했다. 취업하기 전에 순례길을 걷는 여유를 갖는 젊은이가 부러웠다. 순례길을 걸으며 예상치 못한 일을 겪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좀 더 성장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젊은이는 힘든 순례길을 걸으며 무엇을 배우고 얻어가게 될까 궁금해진다. 아마 지금보다는 더 성장해 있겠지.

청년은 10km만 가면 된다고 힘내라고 한다. 낯선 이에게 관심을 갖고 여러모로 배려해주는 따뜻한 마음씨의 청년이 고마웠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길이지만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서로 용기를 주고 손을 내어 잡아주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청년과의 이야기를 끝내고 일어날 때 청년과 일행인 프랑스 할아버지 'Gacian'과 'Guy'가 빠르게 지나간다. 아마 2시 쯤에는 비가 올 거라며 빨리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곤 쉬지도 않고 쉼터를 지나친다. 그 말을 듣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은 비가 올 것 같진 않았다.
 
이렇게 파랗던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질 줄은 몰랐다
▲ 길 이렇게 파랗던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질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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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시간 반 정도만 더 가면 숙소가 나온다. 걷기 힘든 구간은 지났으니 남은 길은 좀 수월할 거라 생각하며 걸었다. 그런데 좀 전까지 파랗던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진다. 도착하기 전까지 비가 오지 말기를 바라며 더 빠른 속도로 걸음을 재촉했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가 싶더니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이내 빗줄기가 굵어졌다. 주변에는 비를 피할 나무들도 없었다. 재빠르게 비옷을 꺼내 입었지만 비옷도 소용없이 비바람이 쳤다. 순식간에 옷이 다 젖고 신발도 물에 빠진 것처럼 질컥거린다. 그렇게 쏟아 붓기를 약 20여분, 아주 잠깐 쏟아 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개인다. 알베르게까지 거리는 대략 1시간 정도 남았는데...

소나기를 맞은 후 '스페인 일기예보는 왜 이리 잘 맞는 거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스페인은 대체로 날씨가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 비가 이렇게 자주 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걷는 동안 두어 번 정도 비를 맞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두 주 사이에 비를 네 번이나 맞았다.
      
소나기가 그친 후 빗물이 흥건하게 고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
▲ 까냐베랄 가는 길 소나기가 그친 후 빗물이 흥건하게 고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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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마을이 목적지인 까냐베랄
▲ 까냐베랄 멀리 보이는 마을이 목적지인 까냐베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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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쫄딱 맞고 온몸이 젖은 채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빗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오는 나에게 응접실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Gacian'과 'Guy'가 알베르게 예약을 했는지 묻는다.

이미 방이 꽉 차서 자리가 없을 거란다. 나를 놀리려는 농담인 줄 알았다. 오늘은 걷는 길에 마주친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당연히 자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주인이 오더니 예약이 꽉 차서 자리가 없다고 했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나타나는 거지? 걸을 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알베르게에 가면 잔뜩이다. 이번에는 어디서 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주인은 여기서 조금만 길을 돌아가면 '말라가'라는 호스탈이 있으니 가보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길 모퉁이를 돌아가면 호스탈 '말라가'가 있다.
▲ 까냐베랄 길 모퉁이를 돌아가면 호스탈 "말라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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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말라가' 호스탈에는 자리가 있었고 1박에 20유로라고 했다. 사설 알베르게치고는 심하게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옷도 신발도 다 젖었는데 말릴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단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는 말이라 생각하여 방에서 빨래를 챙겨 가지고 왔더니 세탁대에서 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널란다.

스페인어 번역기를 돌려 '건조기'는 없냐고 물었더니 구석에 방치해 둔 것 같은 기계를 꺼내서 먼지를 털고 플러그를 꽂아 틀어주었다. 건조기가 아닌 바람만 내뿜는, 송풍기였다. 바람을 내보내서 빨래를 말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열이 아닌 바람일지라도 자연 상태로 말리는 것보다는 빨리 마르겠지 싶었다. 이렇게 부족한 대로 해결해 나가는 재미가 있는게 여행이지 싶었다.

벌써 두 번이나 숙소 문제로 고생을 하고 나니 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미리 숙소 예약을 하려면 전화를 해야 하는데 스페인어 실력이 부족하니 현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씨 좋은 주인 할아버지에게 내일 목적지인 갈리스테오에 있는 알베르게와 그 다음 목적지 알데아누에바 델 까미노의 알베르게에 전화해서 예약을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승낙한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모두 예약이 찼다는 대답이었다.

우선 배를 채운 후 고민해 보기로 하고 근처 바르로 향했다. 마침 우리를 여러모로 도와주었던 엘런이 있어서 합석했다. 바르에 가면 일정이 비슷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 만큼 순례길에는 작은 마을이 많다. 엘런에게 내일과 모레 숙소를 예약했냐고 물었더니 이틀치 예약은 했지만 그 이후의 숙소는 예약을 하지 못해 걱정이란다.

이번 주가 스페인의 대표적 축제중 하나인 '세마나 산타'이기 때문이다. 종려주간 혹은 성주간이라 하여 부활절 전 일요일부터 부활절 전날인 토요일까지의 기간을 뜻한다. 이 기간에 국민의 대다수가 가톨릭신도인 스페인은 매우 중요한 연례행사가 이루어지고 실제로 매우 큰 행사들이 치러진다. 특히 크고 유명한 성당이 있는 도시들의 경우, 그 행사 규모는 매우 크고 웅장하다. 행사의 일정표도 다 공개되기 때문에 스페인 내에서도 구경가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휴가로 인해 숙소마다 예약이 꽉 찼다고 한다. 우리는 예약을 하지 못했다고 했더니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전화를 들어 숙소 예약을 도와준다. 내일 목적지인 갈리스테오의 알베르게는 이미 예약이 꽉 찼으나 갈리스테오 가기 전 마을 리오로보스의 알베르게는 예약할 수 있다고 했다.

리오로보스까지는 너무 가까운 거리라 숙소를 잡기엔 아쉬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엘렌의 도움으로 예약을 했다. 어려울 때마다 나서서 도와주는 엘런은 우리의 수호천사 같다. 그리고 그 다음날 숙소는 까미노길에서 좀 떨어진 올리바 데 플라센시아 호스텔을 부킹닷컴이라는 숙소예약사이트를 통해서 예약했다. 순례자가 제일 적다는 'via de la plata' 길에서 숙소 고민을 하다니. 우선 이틀은 안심이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 손을 내밀어 준 덕분에 힘을 내어 걷는다.

태그:#세마나 산타, #VIA DE LA PLATA, #까냐베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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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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