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의원 5명(강은미·류호정·배진교·이은주·장혜영)의 의원직 사퇴 권고 여부를 결정하는, 정의당 '당원총투표'의 결과는 찬성 40.75%, 반대 59.25%로 '부결'이었다. 혼란은 수습됐지만, 일종의 '탄핵안'에 대한 당원총투표가 이뤄진 만큼 후유증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정의당이 겪고 있는 다양한 갈등들이 '갈아엎자'는 요구로 표출된 셈이기 때문이다.
당원총투표 안건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한 이기중 정의당 전 관악구의원은 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다수의 당원들이 당을 지키는 결정을 내렸다"라고 강조하며, 동시에 비례대표 사퇴를 주장했던 이들이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고 평가했다.
'비호감'의 원인이나 선거 패배의 원인을 비례대표 의원들의 탓으로 돌리는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2000년부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거쳐 현재 정의당 관악을 지역위원장으로 있는 이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민주당과 각을 세워온 대표적인 '독자파' 정치인 중 하나다.
그는 비례대표 의원직 사퇴 권고 투표의 '목적'을 "류호정·장혜영 의원으로 대표되는 당내의 '여성주의'와 '민주당 견제 행위에 대한 반감'을 공식적으로 승인받는 것"이라며, "당을 반여성주의·친민주당 노선으로 바꾸려는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당의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정의당의 위기는 장기적으로는 '노동'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기반을 만드는데 실패했고, 단기적으로는 '조국 사태' 때의 당의 불분명한 메시지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오는 10월 중순 당직선거를 통해 선출될 새로운 지도부에게는 '눈치 보지 않는 리더십'을 요구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비례대표 사퇴 권고? 무책임한 방식... 당의 노선 바꾸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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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당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과 의원들이 5일 오전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원 총투표 관련 의원단 합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 장혜영, 류호정, 강은미, 배진교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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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총당원투표 결과, 어떻게 봤나.
"가결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긴 했다. 하지만 다수의 당원들은 당을 지키는 평가를 내렸다. 압도적으로 부결되기 바랐지만 그에 미치지 못한 것은 아쉽다."
- 부결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찬성한 쪽도, 반성한 쪽도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데 가결되면 정의당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파국'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고 본다."
- 가결되면 당이 유지되기는 어려웠단 이야기인가.
"당내 정치뿐만 아니라 투표의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까가 중요하다. 굉장히 단순화해서 이야기하면 '정의당이 류호정·장혜영 의원을 쫓아내기로 했다' 이런 것이고, 그것은 결국 (류호정·장혜영 의원이 상징하는) 여성주의 그리고 민주당과 선을 긋는 정치행위들에 대한 '반감'을 정의당에서 승인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비례대표 후순위 승계자 분들의 다수가 그 노선에 찬동하는 분들이다.
만약 가결이 된다면 당이 '반여성주의·친민주당' 노선으로 가게 된다. 그렇다면 저뿐만 아니라 다수의 활동가가 그런 당에서는 정치 활동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류호정·장혜영 의원에 대한 비토 심리가 유독 커 보인다. 왜 그럴까.
"당 밖에서 봤을 때, 정의당을 상징하는 사람은 심상정 그리고 류호정과 장혜영이다. 사실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지난 총선 당시 당내 기반이 굉장히 부족했음에도 청년 할당을 통해 (비례대표 앞순번에) 배치됐다. 적어도 10석 이상의 당선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총선 결과) 비례로 5명 밖에 당선되지 않았다. 그동안 수없이 낙선하면서 함께 했던 활동가들이 '마지막 기회다'라고 나왔는데, 다 떨어져서 실망이 컸다. 결국 그들과 함께한 정파와 세력의 '원한'이 두 청년 의원에게 집중된 것이다. 게다가 (21대 국회 개원 후) 류호정·장혜영 둘에게만 모든 관심과 비난이 집중되다 보니 오히려 나머지 세 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관심을 못 받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 정파간 갈등이 격화된 상황이 이번 총투표 사태를 만들었다고 보는가?
"찬성파도 단일한 정파는 아니다. 이번에 대표발의하셨던 분도 진보신당 출신이다. 국민참여당 출신임에도 생각이 다른 분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총당원투표에 찬성하는 이들의 주류는 당내 '친민주당', 보수정당에 반대하면서 민주당과 연대하는 쪽의 사람들로 판단하고 있다."
- '친민주당'이 아니더라도 비례대표라도 사퇴하면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 않겠나.
"발의한 쪽의 의도는 다르겠지만, 사퇴에 찬성하는 분들 중에는 '일단은 바꿔보자'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사실 일반 당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책임있는 정치인이나 정파가 그렇게 움직이면 안 된다.
다른 정당들도 선거 패배하면 지도부 물러나고 총사퇴하고 이런 일들이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을 바꿔버리는 일은 없다. 제가 페이스북에 '1군을 2군으로 교체하는 일이 어디 있나'라고 말하지 않았나. 국민들한테는 '정의당 큰일 했구나'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고, 잠시 주목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굉장히 무책임한 방식이다. 그 다음 분들이 의정 활동 잘하고 정의당 발전시킬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불명확한 메시지', 당을 위기로 몰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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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정 예방한 조국 2019년 9월 17일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
| ⓒ 남소연 | 관련사진보기 |
- 당의 위기에 비례대표 의원들의 책임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먼저 지난 2년 동안의 당의 결정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할지가 불분명하다. 이를테면 조국 사태나 검수완박 정국에서의 책임을 묻는다면, 이러한 사태에 대해 누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누가 무엇을 잘못했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따질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두 번째, 비례대표 의원들에게 무엇을 책임지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당이 어려워졌고, 비호감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비호감을 샀는지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조문을 거부한 것도 그들이 이야기하는 '비호감'의 하나일 것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 당내에서 이런 갈등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까?
"'정의당 10년 평가위원회'가 말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고 뻔하긴 하지만, 노동과 지역 기반을 만드는 것이 소홀했다. '민주당과의 연대·연합을 통해 선거제도를 바꾸고 교섭단체를 만든다', 그런 전술에만 매몰됐다는 것이 10년 전체를 평가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결론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못됐다기보다는 기반도 없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본다.
다만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는 유효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그것이 정의당의 어려움을 전부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긴 하다.
단기적으로는 '조국 사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야권연대하면서도 별도의 목소리를 내면서 민주당의 부족함을 비판하고... 이런 것에 모순이나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권력을 잡고 나서는 그들이 도덕적으로 비난 받는 복잡한 상황속에서 과거의 관성에 따라서 판단했던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메시지가 불분명했다. 민주당 쪽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면서도 그게 흔쾌하지는 않으니까 자꾸 단서가 붙는 거다. 의원들끼리도 다른 이야기를 하니까, 국민들이 보기에는 '정의당 뭐하는거냐'라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거다."
- 새로운 지도부에게 기대하는 바 있다면?
"심상정·김종철·여영국 지난 대표들이 '정치'를 하지 않았다고 본다. 내가 정의당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당내외에 정의당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이번 총투표를 보면 알수 있듯 내부에서는 극과 극의 갈등과 이견이 있다. 그런데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면서 당원들을 설득하고 이견을 조정할 수 없다. 어떤 의견은 배제하고서라도 추진해나갈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더 이상 눈치 보면서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