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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너 해 전 퇴사하고는 여태 반백수로 지냈다. 퇴사할 때만 해도 돈벌이가 안 되더라도 글로 밥 벌어먹고자 했지만 작가로 전향한 후로는 밥벌이는 언감생심, 이러다 조만간 깡통 하나 팔목에 걸치고 달그락거리며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그간 돋보기를 꿰어 쓰고 구인 공고를 살피는데 나 같은 어중간한 노동인력은 시장에서 찬밥 중의 찬밥이더라. 울며 겨자먹기로 단기 유학 서비스 관련 창업 준비를 시작했는데 이번엔 코로나라는 전무후무한 역병 덕에 서비스 오픈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일단 하늘길이 열려야 뭐라도 하겠는데 지난 삼 년간 태평양을 오가는 비행기는 많지 않았다.

반드시 미국에 가야했던 이유
 
인천공항
 인천공항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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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지난 봄 미국은 코로나 사망 환자 감소와 백신 접종률 향상에 힘입어 주마다 위드 코로나를 실시했다. 이에 발맞춰 한국도 지난 4월 18일 이후 거리두기 완화 정책이 발표됐다. 이후 해외 체류 시 길게는 14일까지 갔던 자가격리 지침도 해제됐고, 6월 12일 이후 미국 CDC는 코로나 음성 증명 대신 백신 증명서만 있으면 미국 내 입국을 허락해 주었다. 

이 말은 내게 "드디어 하늘 길이 열렸다"라는 말로 해석됐다. 그 후 나는 본격적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검색했다. 어? 그런데 음? 표가 없다. 직항은 클릭과 새로고침이 무색하게 전부 매진이고 경유 항공권까지 거의 모든 비행기 표가 없었다. 이용객은 넘치는데 공급이 안 되는 눈치였다.

항공사 관계자 말을 빌리니 팬데믹 기간 동안 장거리 노선이 폐지, 축소 운행된 여파로 파일럿들이 장거리 운영을 위해 다시 일정 기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덕분에 비행기 값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게다가 고유가 시대와 고환율 영향으로 유류세 할증까지 그야말로 티켓값은 고.공.행.진.

여건이 이렇게 좋지 않았지만 나는 올여름 반드시 미국에 다녀와야 했다. 더는 시간을 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서 3년 전이면 평일 항공권 기준 60만~80만 원이면 살 수 있던 유나이티드 항공권을 300만 원이 넘는 웃돈을 주고 사서 지난 7월 16일 인천 출발 샌프란시스코 경유 워싱턴 DC 도착 항공권을 발권했다. 그것도 겨우 말이다. 

눈물을 머금고 평소보다 3배의 웃돈을 주고 산 티켓인데 이 비행기도 이미 만석이었다. 하는 수 없이 비행기 맨 뒤 칸 화장실 앞 중간 자리 하나 겨우 구해서 햄버거 속 패티처럼 사람들 사이 찌부러졌다. 하지만 내가 무슨 힘이 있나. 일단 출발했다.

전에도 일과 여행을 이유로 수 차례 미국을 오갔다. 그런데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간 건 처음이었다. 반대로 가장 저렴한 금액을 주고 미국에 간 건 지난 2020년 코로나가 절정일 때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유류세까지 포함해 동부로 가는 델타 항공권을 56만 원에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싼 건 비지떡이었다. 그때 동양인으로 미국에 가서 어찌나 고생했던지.

당시 미국에서는 코로나19를 '차이나 바이러스'라 오해를 해서 많은 곳에서 여러 아시안이 수모를 당했다. 아마 코로나가 장기화될 줄 모르고 당시 항공사들은 일단 비행기를 간간히 띄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대륙을 오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2020년 1월에서 4월까지 미국에서 3개월 보내는 동안 한국에서도 코로나는 걷잡을 수 없이 전파됐다. 이땐 미국으로 가는 일도 행정절차가 까다롭고 번거로웠고 귀국하고도 14일의 자가격리 등 모든 게 쉽지 않았다. 

활기 있던 샌프란시스코 공항
 
사진은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자 전용 코로나19 검사센터에서 해외 입국자들이 검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자 전용 코로나19 검사센터에서 해외 입국자들이 검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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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여름은 그때와 많이 달랐다. 미국으로 입국할 땐 백신 접종 증명 애플리케이션을 항공사 데스크에 보여주면 됐다. 따로 이런저런 설문지를 작성하지 않아도 좋았다. 같은 항공기 탑승객 중엔 별도로 영문 백신 증명서를 준비한 분도 보였다. 난 그렇게까지 꼼꼼하지 못하기에  COOV 어플에 백신 접종 기록만 스크린 캡처해 두었다(아무 문제 없었다).

지난 7월 기준 인천공항은 여전히 한가했으나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활기가 넘쳤다. 업무차 들른 미국 동부 보스턴과 뉴욕 워싱턴 등지에서 본 미국인들은 대부분 코로나 이전 일상을 회복한 듯했다. 

마스크 착용도 의무가 아니라 권고인 곳이 많았다. 그렇게 미국에서 한 달간 일을 보고 8월 16일 귀국했다. 확실히 서울행 비행기는 미국행 비행기에 비해 덜 붐볐다. 다행히 8월 이후에는 많은 항공편이 이전 수준으로 이·착륙한다고 한다. 

중앙안전대책본부는 8월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3일부터 입국 전 코로나 증명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꽤 반가운 뉴스다. 고환율·고물가 시대에 나처럼 업무차 피치 못해 출국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뉴스가 꽤나 반갑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입국 시에 코로나 테스트 음성 확인서를 받는다는 건 심적 부담이 꽤 큰일이었다. 만약 검사 결과 확진되면 타국에서 어쩌라는 말인가. 나 역시 입국 전 코로나 검사 후 음성 증명을 받을 때까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남은 이야기

여담이지만 이번에 미국을 오가면서 흥미로운 현상이 생겼다. 얼마 전부터 미국 내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이 확연히 높아졌다는 거다. BTS나 오징어 게임 등 K콘텐츠 열풍 덕분에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뜨겁다는 것. 

아니나 달라 이번에도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랩톱으로 한국 드라마를 봤고 정작 한국인인 나는 HBO 드라마를 봤다. 미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BTS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신기했다. 미국에서 로컬 미용실을 갔는데 미국인들이 전부 내게 한국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 했으니까.

사람들이 아는 회사에 다니는 것 중 가장 큰 메리트는 명함 한 장이면 구구절절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데 국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나 역시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국뽕'(자국이 최고라고 여기는 현상)을 이번 미국행에서 많이 맞았다. 

그러니 독자분들 중 미국에 볼 일이 있었음에도 나처럼 차일피일 미국행을 미루셨다면 이번 기회에 움직이시길 바란다. 하지만 이 점 하나는 알고 가시길. 미국 물가도 상당히 올랐다.

태그:#미국여행, #항공권, #여행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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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라는 게시글 하나로 글쓰기 인생을 살고 있는 [산만언니] 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재난재해 생존자에게 애정이 깊습니다. 특히 세월호에 깊은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반려견 두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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