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올해 초, 남편이 좋은 사업 아이템을 발견했다고 했다. 바로 요즘 유행하고 있는 무인 점포. 한 무인 점포의 본사 직원에게 직접 들었는데 매일 한두 시간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만 하면 된단다. 무인 점포는 초기 비용이 그리 많이 들지 않아 자기가 대출을 받아 투자하고 부모님이 아르바이트식으로 관리해 주시고 내가 매니저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은 자기가 언제까지 회사에서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고 내 벌이는 불규칙적이고 얼마 되지 않으니 지금부터라도 노후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동 출판 관련 프리랜서만 십 년 이상 해왔는데 갑자기 무인 점포라니. 기존의 내 스팩이 물거품이 된 것만 같다. 서운해하는 내 얼굴을 보며 남편이 말했다.

"결국엔 창업이야. 다 은퇴하고 결국 누구나 끝은 창업이라고."
"그래도 이건 나와 너무 관련 없는 일 같아서."


남편은 그럼 관련 있는 걸 말 해보라고 했지만 당장은 뭔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가정 경제는 뒤로 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결국, 남편과 함께 기존의 무인점포들을 탐색하고 우리가 할 가게 자리를 보러 다녔다.

목이 좋으면 월세도 비싸고 권리금도 세다. 게다가 목이 좋은 곳은 비슷한 업종이 이미 들어가 있다. 본사에서는 비슷한 업종이 있어도 상관 말라고 했다. 자신들이 가격 메리트가 있으니 유리하다며. 대기업의 횡포가 이런 건가. 소름이 돋았다.

괜찮다고 생각되는 가게 자리를 보고 부동산에 가서 문의하고 본사에 상권분석을 의뢰했다. 마침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친구 동생이 있어 전화해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친구 동생은 무인점포라고 쉽게 생각하면 안 되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들고 트렌드도 알아야 하고 무인점포지만 가게로 출동할 일도 잦다고 했다.

게다가 훔쳐 가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된다는 걸 감안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CCTV를 돌려봐도 도둑이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고 했다.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우리 부부의 무인점포 창업은 몇 개월 만에 없던 일이 되었다.

이토록 현실 같은 소설이라니 
 
책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
 책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
ⓒ 문학동네

관련사진보기


그 일이 있고 나서인지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란 소설이 아주 많이 공감됐다. 내가 더 진행했으면 이런 일을 겪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여러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소설은 대기업에 다니던 회사원이 8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코로나 시대에 창업하며 겪게 되는 생존 분투기다. 너무 현실 같은 하이퍼리얼리즘 소설.

주인공인 이대한은 회사를 그만둔 뒤 동네에 없는 많은 업종 중 가장 품이 적게 들것 같은 '스터디 카페'를 창업하기로 한다. 창업 전에 이제 자신도 사장님이라는 생각에 설레다가 가게 자리를 알아보며 월세와 보증금 이외에 드는 비싼 권리금, 관리비, 전기요금에 놀란다.

인테리어를 할 때는 계약 전력량이란 게 있어서 전기 증설 공사를 해야 한다는 데 한번 더 놀라고 작은 업체에 인테리어를 맡겼으나 계약 기간 내에 공사를 끝내지 못하고도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당당함에 또 놀라 할 말을 잃는다. 예상보다 지출은 훨씬 컸고 결국 추가로 대출을 받아 필요한 가구 구입 비용을 충당한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창업한 시기가 하필 코로나 시대였다니.

방역지침에 따라 주인공 이대한은 울상이 되기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코로나 상황에 불면증이 생겼다. 같은 상가 2층의 이자카야 사장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건너편 상가 노래방이 문을 닫았다. 대한에게 코로나 외에 또 다른 악재가 생겼으니 바로 한 블록 거리에 유명 프랜차이즈 스터디 카페가 들어선 것이다.

대한은 이용 금액을 내리고 음료 한 잔 무료 제공 이벤트를 시작했다. 거리두기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매출은 자꾸 떨어지고 결국 1층 횟집 사장님 손에 이끌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게 됐다. 의사는 대한에게 약물 치료 대신 자영업 하는 사장님들을 인터뷰해보라는 숙제를 내준다.

대한은 회가 좋아서 횟집을 차린 동해 앞바다 횟집 사장님, 어릴 적 동경했던 양장점을 내게 된 샬롯 양장점 사장님을 인터뷰한다.

소설 속 사장님들 인터뷰 내용을 보며 창업을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오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말대로 누구나 끝은 창업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더 열심히, 즐겁게, 오래 할 수 있다. 무인점포를 하려고 막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때 예전 회사의 부서장님을 만났다.

"저, 무인점포 해보려고 알아보고 있어요. 코로나 이후 프리랜서 일도 잘 안 들어와서요."
"무인점포? 나 무인점포 하겠다는 사람 벌써 몇 사람이나 봤어. 그렇게 진입장벽이 낮은 일은 하는 거 아니야."


난 남편이 본사 직원에게 직접 들었다며 그 일의 장점을 나열했다.

"그 정보가 너한테까지 들어왔다는 건 웬만한 사람은 그 정보를 다 가지고 있다는 얘기야. 그런 생각은 안 해 봤어?"

이 땅의 자영업자들이 안녕하기를 바라며

소설 속 대한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자신의 가게 근처에 다른 스터디 카페의 오픈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본다. 대한은 그제야 '스터디 카페'는 너무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대한은 또 다른 사업을 시작하고 엄마를 무급 아르바이트로 고용하고 자신은 배달 아르바이트도 한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너무도 치열하다. 생존과 직결된 벼랑 끝이다.
 
(정부에서 방역조치 강화 후,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지원보상금 500만 원을 지급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나온 후 삼겹살집 손님들의 대화)
-누구는 내기만 하고, 누구는 받기만 하고. 이 나라는 자영업자만 국민이지.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야, 나도 500만원 받고 싶다.

여기 앉아 계신 사장님들이 내는 세금이 당신들이 지금까지 낸 세금의 몇 배는 족히 넘을 것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다.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 보다 건강보험도 국민연금도 훨씬 더 많이 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소득이 2000만 원 정도인 지역가입자라면 매달 내야 하는 건강보험료만 25만 원 내외였다. 대박집이 아닌 평범한 가게 사장님들도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두 개를 합쳐 100만 원 넘게 내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직원이라도 한 명 고용하면 월급 200만 원 기준 매달 40~50만 원의 4대 보험료도 부담해야 했다. 거기에 부가가치세도 냈고, 직장인들처럼 종합소득세도 냈다. 허가업종인 경우 매년 면허세도 냈다. 그런 사람들이 강제로 영업을 제한당한 것도 모자라 '우리가 낸 세금' 운운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이 현실이 너무나도 믿기지 않아서 영화 속에라도 들어온 것 같았다. (226, 227쪽)
 
잠깐 책에서 눈을 떼고 코로나 이후 변화를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집 앞 고깃집과 분식집이 없어졌다. 오랜만에 온가족이 함께 상가 2층 고깃집에 갔다가 텅 빈 가게 자리를 보고 놀랐다. "여기는 장사가 잘되지 않았나?", "맛있었는데", "이런 고깃집이 주변에 없는데 아쉽다"하며 서운해했다. 좀 더 자주 갈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가게마다 키오스크가 생기고 종업원이 줄었다. 다니던 미용실이 문을 닫았다. 무인점포가 많이 생겼다. 고깃집과 분식집이 있던 자리는 1년이 지나도록 아직 공실이다. 갑자기 책 표지의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라는 이름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요즘 안녕한 자영업자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모든 자영업자들이 안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어진다.

혹시나 팍팍한 회사생활로 '에이, 다 때려치우고 장사나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적나라한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현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나에게 무인점포 창업을 제안한 남편에게 이 책을 권할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

이인애 (지은이), 문학동네(2022)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태그:#브런치북 9회 대상 수상작, #안녕하세요, 자영업자 입니다, #코로나 시대 자영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