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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의 후 15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그 사이 차별과 혐오선동을 이용하거나 방치해 온 정치는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국회 앞 평등텐트촌 농성과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두 인권활동가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당론을 채택하지 않고, 여러 핑계를 앞세워 평등을 미루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4월 제정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의 폭언을 제일 앞에서 맞아야만 하는 성소수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기 위해 4월 21일부터 30일까지 매일 한명씩 공개적으로 편지를 적어 보낸다.[편집자말]
박한희
 박한희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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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 서울 은평구 박주민 의원님과 민주당 국회의원 분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37세 박한희입니다. 4년째 박주민 의원님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거주하고 있는 한 시민이고, 트랜스젠더이기도 합니다.

요즘 저는 자주 국회 앞 평등텐트촌에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잠이 들기 전 밤늦게 국회를 둘러보면, 그리고 아침 출근 선전전을 하다 보면 국회에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밤낮으로 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긴, 대한민국의 입법부이자 민의를 대변하는 국가기관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차별하지 말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하자는, 이 당연한 법 제정 하나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15년,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되고 현재까지 흐른 시간입니다. 강산이 한번 하고도 절반은 바뀌었을 이 시간은 저 한 사람에게도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007년 겨울 차별금지법이 입법예고되었을 당시 저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별위화감을 겪고 있으면서도 트랜지션은커녕 누군가에게 커밍아웃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렇게 한평생 진정한 나로 살지 못하겠구나 하며 체념하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15년이 지나는 사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조금씩 나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언젠가부터는 언론을 통해 '첫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남자예요, 여자예요라고 물어보면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라며 웃고 넘길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조금씩 상처는 받지만요. 

누군가는 이러한 변화를 저의 용기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15년 동안 사회적 조건이 달라지지 않는 가운데 단지 제 주변을 둘러싼 환경이 다른 이들에 비해 좋았고, 그것이 차별과 혐오를 마주하고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을 뿐입니다.

시민들은 15년 동안 꾸준히 변해왔다... 평등과 인권을 지지하는 쪽으로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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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혹시 사회적 조건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말에 오해는 말았으면 합니다. 15년 동안 시민들의 의식은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성애자도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취업기회를 가져야 하는지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2001년에는 69%였던 것이 2017년에는 90%로 증가했습니다. 2021년 조사에서는 동성애가 사랑의 한 형태라는 것에 58%라는 과반수가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 여론과 10만 명이 참여한 차별금지법 제정촉구 국민동의청원처럼, 시민들은 15년 동안 꾸준히 변해왔습니다. 평등과 인권을 지지하는 방향으로요.

그럼 달라지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요. 네, 정치와 법 제도입니다. 2007년 당시 보수개신교의 반대에 부딪혀 성적지향을 비롯한 7개 사유를 삭제한 소위 '누더기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정부와, 2022년 혐오세력의 눈치를 보며 여전히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적대는 국회의 모습은 무엇이 다를까요. 2007년 성소수자인 것을 이유로 직장을 잃고 학교에서 혐오표현을 들으며,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없음에도 법이 없어 실효성 있는 구제를 받기 어려웠던 성소수자들은 2022년에도 동일한 차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국민과 '더불어 함께 하겠다'지만 어떤 국민들은 계속해서 혐오와 차별을 겪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민주당 의원분들이 모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바뀌지 않는 것입니까. 왜 시민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지 않는 것입니까

4월 11일부터 차별금지법 4월 제정을 촉구하며 두 활동가가 곡기를 끊고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저녁 문화제를 하고 텐트촌에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4월이 끝나기까지 이제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짧은 듯 보일 수 있지만 최근의 급변하는 정치의 양상을 보면, 지난 15년간 멈췄던 평등을 향한 물꼬를 트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부디 더 이상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멈춰서 있지 마십시오.

검찰 수사권 분리에 대해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고 이제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 민주당 의원분들 모두가 차별금지법이야말로 시민들의 삶을 위한 우선 과제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책무를 다하길 바랍니다. 차별금지법, 4월 안에 제정하십시오.

2022. 4. 24. 박한희 드림
 
2022. 4. 16. 차별금지법 4월 제정 농성장에서 발언 중인 모습
 2022. 4. 16. 차별금지법 4월 제정 농성장에서 발언 중인 모습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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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오른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임집행위원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 4월 내 제정 촉구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는 모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오른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임집행위원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 4월 내 제정 촉구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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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차별금지법 4월 제정을 요구하며, 매일 성소수자들이 공개 편지를 보냅니다.


태그:#차별금지법, #평등법,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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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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