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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와, 옆선을 이렇게 다 인바이어스로 처리하니까 이렇게 급격한 곡선도 매끈하게 나오네. 나도 셔츠 밑단 곡선을 이렇게 처리해 봐야겠다.'

'아무리 기술자라도 리넨 커프스 윗면 박을 때 이렇게 우는 건 어쩔 수 없구나. 뭐지 이 안심되는 마음은?'

'절개가 없는 천에 직각으로 바느질하면서 매끈하게 나오기 어려운데 잘 박으셨네. 역시 바느질 기술자는 다르구나.'


봄을 맞아 궁궐의 꽃구경을 하러 오시는 엄마를 마중하러 역에 나갔다가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남는 시간에 기성복 매장을 둘러보며 한 혼잣말이다. 어쩌면 옷의 디자이너, 봉제 기술자와의 가상 대화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옷을 만든 지 14년이 넘어가다보니 옷을 사입기 위해 매장에 가는 일이 거의 없다. 물론 옷을 만들어 입는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옷을 좋아해서 매장에 걸린 옷으로 트렌드를 파악한 후 사입기도 하고,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면서 풍성하게 옷장을 채워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옷을 직접 만들고 알게 된 것들 
 
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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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옷 끝내주게 잘 입는다'와 '사회생활하는 사람 입성이 저게 뭐냐'라는 양극단의 평가 속에서 옷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옷을 만들어 입으면서도 남들이 나를 떠올릴 때 옷에 대한 얘기는 없기를 바라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저 옷에 너무 많은 돈은 들이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추레하게 하고 다니고 싶지는 않고, 추레하게 다니지 않으면서도 돈을 적게 쓰기 위해 나의 '노동력'을 투입한 셈이다. 그렇게 옷이란 영역에 있어서는 소비자가 아니라 일정 부분 생산자의 길도 같이 걷게 된 셈이다.

의류매장에는 옷만 보인다. 이번 시즌에는 소매가 풍성한 옷이 유행이구나. 갈비뼈 끝 위치에서 자른 길이의 옷이 많구나, 하는 트렌드만 보인다. 하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나는 그 옷을 만들었을 사람들의 흔적을 느낀다.

'이 옷은 드레시하니까 주머니 윗부분을 박지 않고 접기만 한 후에 옆선을 박았구나. 몇 번 빨아도 접힌 부분에서 올이 풀리지 않고 주머니 모양이 잘 유지될까? 되는 천이니까 이렇게 디자인한 거겠지?'

'같은 디자인인데 이건 캐주얼한 느낌이 나는 천이니까 주머니 윗부분도 박아주고 옆선도 두 번씩 눌러 박아 줬네. 같은 셔츠인데 바느질은 두 배 더 많이 해야했겠다.'

만든 사람의 흔적을 느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만지고 산다고 해서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시장경제 네이티브가 아닌가 한다. '필요한 것은 산다, 망가지면 버린다, 그리고 다시 산다'의 무한 반복이 시장경제 네이티브의 삶이다.

그런데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면 '저걸 만들려면 뭐가 필요하지?'를 생각할 수 있는 뇌의 샛길이 생긴다. 예능 <삼시세끼>에서 초밥을 만들기로 한 날, 동네에 굴러다니는 바퀴와 각목을 모아 회전초밥 테이블을 뚝딱 만들어내던 유해진씨처럼 말이다.

'내가 돈을 냈으니 너는 결과물을 가져와야지'가 아니라 그 일을 실제로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수고에 감사하게 된다. 안감이 달린 코트의 미어진 부분을 기워달라고 세탁소에 수선을 맡길 때 안감과 겉감의 연결 부위를 뜯고 겉감을 티나지 않게 기워서 다시 이어붙이는 데 들어가는 수고가 어떤 것인지 안다. 또, 그걸 감쪽 같이 해내려면 얼마나 실력이 필요한지 알기에, 돈을 받고 그 일을 해주시는 게 감사하게 느껴진다. 옷 수선하는 데 드는 돈을 깎으려고 하거나 아까워하지 않게 되었다.

두꺼운 천을 재봉틀의 노루발 밑으로 밀어 넣으면서 어깨가 뻐근해지는 경험을 하고 나면 코다리를 작두로 써는 생선가게 주인의 어깨와 목에도 눈길이 미친다. 꾸덕꾸덕 마른 가자미의 지느러미를 가위로 썰어주는 일을 하루종일 하면 힘드시겠다는 말을 건네게 된다.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냐'고 눙치지 않게 된다. 당신의 수고를 내가 알아요, 라는 마음이 된다. '침모상궁' 자아가 생긴 나는 옷 사는 데 드는 돈을 아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밤 11시에 주문해도 다음날 아침 쌀이, 생수가 문 앞에 배달되는 시대에 살지만 오로지 내가 만드는 옷을 입어야 하는 아이들의 입성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시간을 앞서 살펴야 한다. 시장경제가 시작되기 이전 시대 사람의 호흡으로 사는 감각을 하나 더 가지게 된 것이다.

요즘은 6월에 있을 결혼식에 아이들이 입고갈 리넨 셔츠와 블라우스를 만들고 있다. 딸에게 미리 옷을 몇 개 보여주고 블라우스로 입고 싶은지 원피스로 입고 싶은지 고르게 했다.

편한 옷만 좋아하는 아들에게 결혼식은 엄마아빠의 아들로서 사회생활을 하러 가는 자리니까 때와 장소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고 못을 박아두었다. 그렇게 만들어질 옷을 입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 좀 더 탐탁한 일이 되었으면 해서 원단장에 있던 리넨을 몇 종류 가지고 나와 스스로 고르게 했다.

'사랑'으로 돌아가는 바느질 공장 
 
재봉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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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이런 일이 익숙하다. 엄마와 함께 천천히 재료를 고르고 패턴을 선정해서 재단을 하고. 그렇게 줄 지어있는 재단물들 속에서 자기 옷을 만들어줄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공급자 대 수요자로 박자를 맞춰가며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양으로 결정된다고 하는데 가내수공업 영역에서 재화는 우선순위의 기준으로 탄생한다. 입고 싶은 새 맨투맨은 더 급한 바지를 먼저 만들고 나서야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공급자의 건강은 가내수공업의 필요조건이다. 내가 아프면 옷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그 재화를 소비하기 위한 교환 가치는 사랑과 감사와 인정이다. 옷 만드는 침모상궁이 있는 우리집은 그렇게 의식주 중 한 영역을 자본주의의 논리가 아니라 가내수공업의 세계에 걸친 채 살고 있다.

침모상궁 부캐를 가진 나는 직장에서는 내가 가진 능력과 시간을 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면서 화폐를 번다. 또 한편으로는 화폐를 매개로 교환할 수 없는, 돈이 들어오지 않아도 옷을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만 돌아가는 가내수공업 공장 공장장이기도 하다.

이 공장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작업물은 결혼식 참석용 블라우스와 셔츠다. 제 때 납품할 수 있을지는 이번 주말이 되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후불로 받을 옷값은 멋지다는 칭찬, 마음에 든다는 인정이다.

이왕이면 후하게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공장은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에너지 삼아 돌아가는 '몬스터 주식회사'처럼 칭찬과 인정을 먹고 돌아가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태그:#바느질, #워킹맘, #부캐, #핸드메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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