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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의 후 15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그 사이 차별과 혐오선동을 이용하거나 방치해 온 정치는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국회 앞 평등텐트촌 농성과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두 인권활동가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당론을 채택하지 않고, 여러 핑계를 앞세워 평등을 미루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4월 제정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의 폭언을 제일 앞에서 맞아야만 하는 성소수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기 위해 4월 21일부터 30일까지 매일 한명씩 공개적으로 편지를 적어 보낸다.[기자말]
소성욱
 소성욱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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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그리고 은평구의 국회의원이신 박주민 의원께,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서 남편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31살의 남성 동성애자 소성욱이 드리는 편지.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소성욱입니다. 저는 은평구 역촌동에 남편과 함께 살고 있고 올해로 31살이 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남성 동성애자입니다.

하고 싶은 말, 드리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요. 최근에 제가 알지도 못하는 모르는 이들이 제게 한 말들을 먼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죽이고 싶다"
"병X"
"은행나무도 암수가 구별한데"
"똥을 질질 흘리며 다닐 새끼들"
"에이즈 걸려 죽을 놈들 빨리 죽어라"


네, 많이 자극적이고 심각하지요. 압니다. 그런데 꼭 아셔야 합니다. 보셔야 합니다. 두 번, 세 번, 계속 읽고 보세요. 그동안 끊임없이 '존엄'과 '인권' 그리고 '평등'을 주장하고 외쳐왔는데 거들떠도 안보셔서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을 보여드려야겠습니다.

'하루이틀만 듣고 넘기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으실까 말씀드려요. 저런 말들은 제가 청소년, 10대였던 십여 년 전부터 삼십대인 지금까지 계속 듣는 말입니다. 한 명, 한 명의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의 자리를 170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꼭 아셔야 하는 말입니다. 성소수자들에게 향하는 혐오와 폭력의 언어들입니다.

아, 그래서 고작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말씀드리려 하는 게 아닙니다. 이에 대한 책임이 정치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혐오와 차별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폭력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의 책임과 그 역할의 의무가 정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하시라 부탁드리는 겁니다.

혐오와 차별의 고통에 개개인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방치한 것, 그것은 15년간의 국회였습니다. 그동안, 아니 지금까지 계속 평등을 외면하는 국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요, 이 사회가 너무 무섭습니다. 그저 거리를 지나는 것,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조차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사람들이 무서워서 집 밖에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 용기를 하루, 하루, 매일매일 깎아내립니다. 혐오세력이요? 아니요. 국회에 앉아 계시는 국회의원들이요. 혐오와 차별에 고통받는 성소수자를 외면하는 국회의원들 때문에 두렵습니다. 혐오가 자유로운, 차별이 당당한 그런 나라를 만들고 계시는 국회의원들 때문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지금 이렇게 이름과 얼굴, 사는 동네까지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편지를 적으며 다시 용기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혐오와 차별 대신에, 성소수자들의 삶에 대한 용기가 자유롭고 당당한 사회를 위해 지금 당장 응답해 주세요. 나서 주세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오른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임집행위원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 4월 내 제정 촉구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오른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임집행위원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 4월 내 제정 촉구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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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회 정문 앞에는 평등텐트촌이 만들어져 있어요. 매일매일 24시간, 평등을 염원하는 이들이 방문하고 있어요.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외치기 위해서 말이에요.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제가 사는 은평구의 국회의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이시자 평등법 대표발의 의원이신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회의원,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와 주세요.

평등을 갈망하는 이들의 공간과 시간에 정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와서 함께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껏 외면해온 평등을 듣고 보세요. 잘 모르겠으면 가져가세요. 평등을 드릴게요. 평등텐트촌에는 더욱이, 국회가, 더불어민주당이 다 차려진 평등을 먹을 때까지 본인들도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밥먹기를 포기한 활동가들이 있어요. 우리의 건강이, 삶이 걱정되지 않으시나요?

이제는 정말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시작된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숙제를 매듭지음으로써 평등을 다시 제대로 말하기 시작하셔야 합니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또 한 번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신뢰를 가지는 것을 바라신다면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책무를 당론으로 중히 채택하시고 실질적 계획과 행동, 결단으로 보여주셔야 합니다.

저는요, 꿈이 있어요. 뭔지 아세요? 저는 할아버지가 되는 게 꿈이에요. 이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잘 늙는 게 꿈이라는 거예요. 삶을 포기하려 한 과거의 어렸던 수많은 저에게, 말해주고 보여주려고 이런 꿈을 꾸는 거예요. 살 수 있다고, 잘 살자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끝까지 살아남아 증명하는 게 제 꿈이에요. 백발노인이 될 때까지. 이 꿈, 같이 희망해 주시면 안되나요? 더불어민주당, 국민과 더불어 함께하겠다면서요. 저는, 평등텐트촌의 주민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의 절실함을 호소하기 위해 열흘이 넘도록 굶고 있는 활동가들은 국민이 아닌가요.

제가 더 이상 이 사회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시면 안 되나요. 사실 이 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저의 두려움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두려움 아닌가요. 국회의원들이 이 사회에 팽배한 혐오와 차별을 두려워하는 거, 그게 필요한 거 아닌가요.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해 시민들이 먼저 평등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평등을 대세로 만들었고, 10만 국민동의청원을 성사시켜 갖다 드렸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사회적 합의'가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해 드렸고, 지금은 국회 앞에 평등의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시민들이 끊임없이 행동해온 이 평등의 바통을 정말로 더불어민주당이 움켜 쥐어야 할 때입니다. 평등텐트촌에서 곡기를 끊고 기다리고 있는 활동가들을 찾아가, 그들이 건네는 평등의 바통을 받아 주세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오른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임집행위원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 4월 내 제정 촉구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오른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임집행위원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 4월 내 제정 촉구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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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저의 동료들은 15년 간 속고, 또 속아왔어요. 이제는 우리를, 이 나라 시민을, 국민을 속이지 마세요. 차별의 편이 아니라 평등을 위해 굳건히 서겠다, 다시 약속하세요. 그리고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지고 행동으로 보여 주세요.

저도 알아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은 차별을 차별이라고 명명하며 우리가 저항할 수 있게 하는 기본법으로서, 바뀌지 않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시작조차 못한 정치가 아니라, 당당하게 시작하는 정치를 보여 주세요.

저는 기필코 꿈을 이룰 거예요. 할아버지가 되겠다는 그 꿈을요. 할아버지가 됐을 때, 저는 다시 회상하겠죠. 힘들게 쓴 이 편지를. 그때 함께 떠올릴 국회의 모습이, 부디 절망이 아니기를 부탁드려요. 할 수 있잖아요. 하세요.

조금 더 기다릴게요.

2022. 04. 21. 소성욱 드림.

덧붙이는 글 | 차별금지법 4월 제정을 요구하며, 매일 성소수자들이 공개 편지를 보냅니다.


태그:#차별금지법, #평등법, #성소수자
댓글10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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