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오른쪽)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JTBC>에서 시사프로 ‘썰전라이브’에 출연해 일대일 토론을 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오른쪽)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에서 시사프로 ‘썰전라이브’에 출연해 일대일 토론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이준석 대표, 고맙습니다.' 1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간 토론을 보고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 문제를 주제로 명망 있는 방송사에서 토론회가 열렸고, 유튜브 라이브 동시접속자가 최고 2만여 명 가까이 올랐다. 3시간가량 진행된 토론의 막바지까지도 1만2000여 명이 끝까지 지켜봤다.

이준석 대표가 아니었다면 장애인 문제가 이만큼의 핵심 이슈가 되지 못했을 거라는 점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맞상대였던 박경석 대표 또한 '장애인 문제가 100분토론 주제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하니 적어도 그에 관해서는 고마운 마음일 듯하다.

'비장애인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이준석 대표가 토론 말미에 자평했듯이, 토론 내용도 좋았다. 유튜브에서만 볼 수 있었긴 하지만, 토론 2부에서는 이동권 문제의 핵심 이슈가 무엇인지, 탈시설의 쟁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들을 수 있었다. 각자의 일상을 보내느라 바빴던 비장애인 대다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을 것이고, 그 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이 대표의 평가에 동의한다. 개인적으로는 내 직업인 '장애인활동보조인'이 방송사 토론에서 거론된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다.

너무 고마워만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마주 앉은 장애인을 특별하게 대하지 않은 것도 이준석 대표에게 감사한 지점이다. 전장연에 낙인을 찍어서 혐오를 조장했다는 논란이 있지만, 내가 볼 때 그의 토론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그의 태도 자체에 비판할 지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그런 태도는 비장애인을 대상으로도 똑같이 나오는 것들이다. 특별히 장애인이라고 해서 더 친절하거나 덜 날카롭지 않고 평소의 이준석과 같았다는 점이 고맙다는 이야기다. 

'공당의 대표가 장애인과 싸워서 뭐할 거냐? 들어주고 품어주고 잘 해결하겠다고 하면 되지'라던 같은 당 모 인사의 조언을 듣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당장의 불만을 무마하고,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만 심어주는 정치인 특유의 위기관리보다는 '언더도그마'와 '당사자성' 따위는 내던져 버리고, 터놓고 이야기하자는 이 대표의 직진이 문제해결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에서는 문제해결까지 가지 못했지만 차이를 발견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대기실)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JTBC>에서 시사프로 ‘썰전라이브’ 일대일 토론 출연준비를 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대기실)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에서 시사프로 ‘썰전라이브’ 일대일 토론 출연준비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박경석 대표와 이준석 대표가 가장 두드러지게 차이를 보인 부분은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였다. 현행법에는 장애인교통편의 증진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이것을 '해야 한다'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전장연의 요구다. 이 요구에는 '열을 약속하고는 하나만 겨우 내놨던 지난 20년을 다시 반복하지 말고,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달라'는 주문이 담겨 있었다. '할 수 있다'면서 엉덩이 빼고 있지 말고, '해야 한다'며 팔을 걷어붙이라는 요구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고, 박 대표는 '언제 된다는 거냐'고 되물었다. 또 '해결 안 하겠다고 한 적 없다'는 이 대표에게 박 대표는 '하겠다고 한 적도 없다'고 덧붙이고, '느리지만 나아지고 있다'는 말에 '나아지고 있지만 너무 느리다'고 항변했다. 선문답 같은 말들이 반복되는 와중에 두 사람의 인식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가장 시급한 것은 어쩌면 이런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일 테다.

비장애인 일반의 인식도 이준석 대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온라인에서 보이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관련한 의견들을 보면, 좀 심하게 말하는 분들은 '94%를 해줬더니 100%를 달라고 한다'고 핀잔을 주고, 그보다 덜한 분들은 '조금 더 기다리면 되지 꼭 그렇게까지 과격하게 시위를 해야 했냐?'고 점잖게 타박한다. 그러면서 우리 공동체가 충분히 장애인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 장애인 외에도 어려운 곳은 많기 때문에 속도가 느린 것은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지금 장애인의 시위는 과하고 예민하다는 결론이다.

이런 반응 역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한다. 비장애인에게는 충분해 보일지라도 장애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공교롭게도 장애인활동지원사인 내 급여 또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인식 차이가 크게 생기는 부분이다.

지금까지의 진보가 '더 할 수 있다'는 동력이 되길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이형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삭발식을 마치고 지하철을 탑승 하고 있다.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이형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삭발식을 마치고 지하철을 탑승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장애인활동지원사는 대개 한 명의 장애인을 전담한다. 그리고 장애인은 경중에 따라 활동지원사 시간을 배정받는다. 내가 지원하는 장애인은 상당한 중증이라 월 550시간을 배정받는데, 처음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대개는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해?'라고 되묻는다. 한 달이 30일 기준으로 720시간 정도이니까 나머지 170시간을 중증 장애인이 어떻게 견디냐고 걱정스럽게 묻는 것이다.

이런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던 사람이라도 돈 이야기를 하면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인다. 정부의 활동지원사 지원액이 시간 당 1만4800원으로 책정돼 있기 때문에 월 550시간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월 80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이 이야기를 해주면 대번에 '800만 원이나 들어간다고?'라고 되묻는다.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만, 한 사람에게 지원되기에는 다소 과한 금액이라는 인식이 생긴 거다.

장애인들은 당연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해 불편을 겪는 중증 장애인들이 많고, 종종 이로 인해 비극적인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장애인들이 24시간을 보장해달라고 한다. 여기에 또 돈의 논리를 대입하면 8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는 와중에 250만 원을 더 얹어달라는 꼴이 된다. 한 달 250만 원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시민의 눈엔 과해 보일 수밖에.

그런데 이게 장애인들에게는 '생존'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게 이 정도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 실제로 내가 지원하고 있는 장애인은 550시간으로도 부족해서 모자란 부분은 누군가의 무상노동으로 채우고 있다. 혼자서 무엇 하나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장애인 한 명에 매달 800만 원씩이나 지급해도 그게 부족할 수가 있고, 그게 해결됐다고 해도 아주 기본적인 부분만 해결된 것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장애인은 더 요구하러 길바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장애인의 처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당장 내일만 해도 내가 지원하는 장애인은 아침 7시에 예약된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항암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고, 매주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교회에 나갈 수도 있다. 재택근무를 하는 데다 시외로 나갈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긴 하지만 평소에도 교통에 불편을 느낄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진보 뒤에 우리 공동체의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다만 지금까지 나아진 것을 '할 만큼 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아니라 '더 할 수 있다'는 공동체의 의지를 북돋우는 동력으로 썼으면 한다. 박경석 대표가 지적했듯이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현행법상 '할 수 있다'는 문구를 두고 '언젠가는 하겠다'면서 미뤄두는 면피용 수사로 써먹는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 문구가 우리 공동체의 역량이라면 '이 정도는 당장 해낼 수 있다'는 의지의 표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볼모' 같은 단어는 거두고 핵심을 봐달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JTBC>에서 시사프로 ‘썰전라이브’에 출연해 일대일 토론을 하기 위해 분장하는 모습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창 너머로 보고 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에서 시사프로 ‘썰전라이브’에 출연해 일대일 토론을 하기 위해 분장하는 모습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창 너머로 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13일 토론에서 두 대표 모두 '막상 풀려고 하면 쉽게 풀릴 수도 있는 문제'라고 이야기했듯 공동체가 모두 관심을 기울이면 서로의 인식 차이도 해소되고, 산적한 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 가지 더, 우리 공동체는 물론 이준석 대표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볼모' '비문명' '혐오' '정파' 같은 지엽적인 단어들은 접어두고 문제의 핵심을 봐달라는 거다. 장애인들이 이렇게 행동에 나선 이유는 이동과 거주라는 아주 기본적인 것에 뿌리 내리고 있다. 뭘 더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덜한 인생으로 내버려두지 말아달라'는  목소리다. 시설에 갇혀, 죽은 듯 살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사람 앞에서 허울 좋은 단어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렵게 끌어온 대중의 시선을 소모적인 논쟁에 낭비하지 않으면 좋겠다.

이준석 대표가 5월에 다시 한 번 더 토론을 하자고 제안한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날 토론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의견을 교환해나가는 시발점이 되면 좋겠다는 말을 반긴다. 이젠 장애인 문제를 '불쌍해서 품어주는 시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영속성을 위한 핵심 의제로 삼을 때다. 우리 공동체가 그 정도 역량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자체로 토론은 매우 큰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줬으면 한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정치인과 공무원이 검토만 주구장창 해온 것마냥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꾸준히 들여다보겠다'는 공치사를 날린 게 아니길 바란다. 그 약속만 지킨다면 이 이슈의 주인공이 이준석이 된다고 해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 아니, 이 대표가 더욱 드라마틱한 주인공이 돼서 이 흐름을 끌고 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서 장애인 인권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관련 기사]
장애인활동지원사입니다, 지하철 시위 비난하는 분들께 드립니다 http://omn.kr/1y3j2

태그:#썰전 토론, #장애인이동권, #전장연, #이준석, #장애인 토론
댓글5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