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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점심시간이다. 급식실을 나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홍매화에 매번 시선을 빼앗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날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식물의 생육이 놀랍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인간의 성장도 식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눈으로 담기 어려운 성장이 그들 내부에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을 뿐. 

홍매화 다음으로는 일찍부터 노란 잎을 내민 산수유가 여전한 모습으로 우뚝하다. 그 뒤의 목련은 하얀 봉오리를 올리는 중이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봉오리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있으면 옆을 스치는 아이들이 특별한 뭐가 있나 싶어 잠깐 기웃거리다 이내 별거 아니라는 듯 스쳐 지나친다. 자연보다 아름답고 눈부신 그들의 세상이니 미세한 변화가 눈에 들어올 리 없으리라 지레짐작한다. 

조금 더 지나오면 튤립 밭이 있다. 밭이라고 할 것도 없이 하트 모양으로 두 개 만들어 놓은 작은 화단에 다양한 색깔의 튤립이 활짝 꽃봉오리를 열었다. 학교는 지금 한창 봄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벚꽃길
 
오후 5시. 저녁이 가깝지만 아직은 날도 환하고 입구는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 안양천 오후 5시. 저녁이 가깝지만 아직은 날도 환하고 입구는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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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 지나면 학교에서의 식물들과는 잠시 안녕이다. 주말은 야외로 발걸음을 돌린다. 벚꽃 구경이다. 여의도가 부럽지 않게 요즘 벚꽃길로 뜨는 '핫'한 곳, 안양천이 목적지다. 개천을 따라 벚꽃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오후 5시. 저녁이 가깝지만 날은 아직 환하고 사람들은 많았다. 입구는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개천을 건너고 양쪽 길로 사람들이 갈라지면 한가롭고 여유 있게 벚꽃을 즐길 수 있다. 아직은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해야 하고 코로나도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나름의 내공이 쌓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안양천은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청계산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왕곡천과 오전천을 합류한 후 군포시를 거쳐, 다시 당정천과 산본천, 호계천을 합류한 후 안양천 지류 가운데 두 번째로 큰 유역 면적을 가지고 있는 학의천을 만난다.

다시 수리산에서 발원한 수암천과 합류하고, 삼성천을 만나고 시흥시 수암리에서 발원한 목감천을 만나고 서울특별시 경계를 넘어서는 도림천과 합류한 뒤 양화동 서쪽 끝에서 한강으로 들어간다. 길이는 35.1㎞, 서울의 한강 지류 가운데 중랑천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고 한다. 

규모답게 경기도 7개 시(안양시, 군포시, 의왕시, 광명시, 시흥시, 과천시, 부천시)와 서울시 7개 구(관악구, 구로구, 금천구, 동작구, 영등포구, 양천구, 강서구) 총 14개 기초자치단체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광명시청을 지나는 입구를 통해 들어갔다. 
 
하천변에 자전거도로, 인공습지, 징검다리, 오솔길, 발 지압장, 농구장, 쉼터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 안양천 편의시설 하천변에 자전거도로, 인공습지, 징검다리, 오솔길, 발 지압장, 농구장, 쉼터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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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넓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천변에 자전거도로, 인공습지, 징검다리, 오솔길, 발 지압장, 농구장, 쉼터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운동도 하고 돗자리를 깔고 가족 단위로 쉬는 모습이었다. 바람은 제법 불었지만 봄바람이 시원했다.

이전에 여의도 벚꽃놀이를 간 적이 있었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잠깐의 감흥 뒤에 이어지는 혼잡함이 불편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인파에 쓸리고 부딪치고 하며 한 바퀴 정신없이 돌고 나면 아름다운 여운보다는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이곳 안양천은 길게 여운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제방을 따라 광명대교까지 벚꽃길을 가르며 걷다가 반대쪽 제방길로 되돌아오며 다시 벚꽃의 터널을 걷는다. 벚꽃이 만든 꽃그늘을 즐기며 산책하기에는 아주 그만이다. 개천이 사람들의 숨통을 열어준다면 벚꽃은 사람들의 시야를 열어준다. 곳곳에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 한 번쯤 호흡을 가다듬으며 감상하는 것도 특별한 꽃놀이다.  

돌아오는 길가에 나란한 시비가 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형도의 작품이었다. 밤이 되면 시비의 글자마다 불이 들어와 시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낮에 보는 시비는 시를 읽기 힘들었다. 기형도의 시가 벚꽃길의 분위기와 묘하게 조화롭고 쓸쓸하다고 느꼈다. 기형도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시와 함께하는 벚꽃길도 좋을 것 같았다. 
 

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 앓는 그대 정원에서
그대의
온밤 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기형도, <꽃>)
밤이 되면 시비의 글자마다 불이 들어와 시가 한눈에 들어와 쉽게 읽을 수 있다고 한다.
▲ 기형도 시비 밤이 되면 시비의 글자마다 불이 들어와 시가 한눈에 들어와 쉽게 읽을 수 있다고 한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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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원경으로 볼 때도 아름답지만 근경으로 보아도 눈부시다. 매화는 가까이에서 향기를 맡으며 봉오리 하나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면, 벚꽃은 나무에 가득 눈부신 꽃송이가, 길가에 나란히 꽉 찬 나무의 모습이 눈길을 잡는다.

하나가 부실해도 다른 하나가 가득 채워주면 둘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다. 길가에 나란히 늘어선 질서 정연함, 수십 그루의 벚꽃을 나란히 심는 이유도 그 때문은 아닐까 싶다.
 
제방을 따라 광명대교까지 벚꽃길을 가르며 걷다가 반대쪽 제방길로 돌아오며 다시 벚꽃의 터널을 걷는다.
▲ 안양천 제방을 따라 광명대교까지 벚꽃길을 가르며 걷다가 반대쪽 제방길로 돌아오며 다시 벚꽃의 터널을 걷는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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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즐기는 인파에 떠밀리면서도 활짝 웃으며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같은 장소에서 이전 사람들의 포즈를 따라도 하고 그들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의 초점을 잡아 사진을 찍는 모습이었다.

이곳 안양천 벚꽃길은 사람들이 많아도 부대끼지 않아 좋다. 입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한적하고 여유로운 산책을 벚꽃과 함께 즐길 수 있다. 그러다 잠시 쉬며 바람에 몸을 맡기니 시의 구절대로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그:#벚꽃, #안양천, #기형도,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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