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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은 꺼져 있다. 책상에 강의록이 펼쳐져 있다. 대학생 A씨가 방에서 홀로 강의록을 읽고 있다. 지금은, 놀랍게도 수업시간이다.

서울권 대학에 재학 중인 A씨는 지난해 7주간 '강의록을 읽어오는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학기 절반은 강의 자료를 읽는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100% 실습으로 진행했지만, 코로나 이후 절반은 강의록 읽기 개별학습, 절반은 교수와 함께 실습을 진행했다고 한다. 교수와 학생이 만나는 유일한 실습 시간마저 두 팀으로 나눠 진행했다.

개별 수강생은 3시간 수업 중 1시간 30분을 듣게 돼 사실상 한 학기에 '반의 반' 실습 수업이 진행된 것이다. A씨는 "학기의 절반 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등록금이 아까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같은 수업을 들은 대학생 B씨 역시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수준의 강의록을 읽는 게 수업이었다"며 "공휴일로 인한 보강 수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게 최선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코로나로 수업권 침해가 발생했다" 등의 이유로 등록금 반환을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업권 침해는 모두 '코로나19' 때문일까. 학생들의 증언은 궤를 달리한다. 
 
전국대학생학생회네트워크, 청년하다 등 등록금반환운동본부 소속 대학생들이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청와대를 향해 '등록금 반환 요구'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했고, 알바 자리는 잃고, 불확실한 학사 일정에 공허한 월세를 지출'했으나, 정부는 대학생들의 피해 보전에는 인색했다고 주장했다.
 전국대학생학생회네트워크, 청년하다 등 등록금반환운동본부 소속 대학생들이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청와대를 향해 "등록금 반환 요구"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했고, 알바 자리는 잃고, 불확실한 학사 일정에 공허한 월세를 지출"했으나, 정부는 대학생들의 피해 보전에는 인색했다고 주장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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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권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 C씨는 "지난해 교양 수업에서 전년도 촬영 일자가 적힌 녹화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전년도 녹화 강의가 수업에 고스란히 활용된 것이다.

그는 "학생들은 등록금을 매해 내는데, 교수님도 연구를 통해 쌓은 지식을 새로이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니냐"며 "등록금이 아까웠다"고 토로했다. 개별학습으로 학기 절반을 보냈던 B씨는 이러한 불만에 대해 "(일부 교수들이) 비대면 수업 상황에서 수업의 질 개선을 위해 고민하지 않는 듯하여 학생들의 불만이 더욱 높아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라진 수업 시간... '3시간 수업에 3분 피드백' 

3시간 수업에서 3분 피드백을 받고 수업이 끝난 적이 있다는 학생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 D씨는 "영상 제작 등 모든 것을 내가 알아서 했어야 했다. 수업을 통해 무엇을 배운지 모르겠다"며 "어느 날은 강의실에 가서 내내 기다리다 3분 피드백을 받고 끝난 적도 있다"고 전했다. 2주에 한 번 학생이 영상을 제작해오면 피드백을 해주는 수업이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학생 별로 등교시간을 달리해 피드백을 진행했는데 그게 3분에 그쳤다는 것이다. 

학생 D씨는 학기의 절반 동안 팀플을 진행하고, 팀플 보고서를 내는 것으로 대체하는 수업을 수강했다고 한다. 그는 "학기 절반을 할애한 팀플에 대해 피드백이 이뤄지긴 했지만 통틀어 1시간이었다"면서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것 없이 팀플로 모든 걸 알아서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반의 반' 실습 수업을 들었던 A씨는 수업의 질 저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사실 코로나 전에도 계속 존재했던 문제였다"고 말했다. 재사용되는 수업과 소통의 부재 문제는 코로나19 이전 대면 수업에서도 있었다는 것이다.

A씨는 "코로나 상황이 되니까 이런 문제들이 가시적으로 더욱 눈에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호평을 받던 수업이 코로나 이후에 혹평을 받는 경우는 적은 것 같다"며 "항상 좋은 수업을 위해 고민하는 교수님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어, 쌓였던 불만이 터진 것 같다"라고 전했다.
 
청년진보당 소속 청년들이 2021년 2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등록금 반값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대학이 함심해 등록금을 인하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청년진보당 소속 청년들이 2021년 2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등록금 반값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대학이 함심해 등록금을 인하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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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상황을 충실하게 활용한 수업"도 가능했다 

실제 코로나 시국에도 비대면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수업의 질을 개선시킨 수업도 있었다고 한다. A씨가 수강한 다른 수업은 개별 학습과 줌(Zoom) 실시간 화상 수업 혼합형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매주 교수님이 올린 강의자료와 유튜브 영상을 보며 필수적으로 예습을 해와야 했다. 또,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적어 제출하면 교수가 자료를 모두 정리한 후 다음 수업에 활용했다고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온라인 소통을 극대화한 사례다.

A씨는 "수업 안에서 토론이 이뤄지지 않아도, 학생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며 "비대면 상황을 충실하게 활용한 수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의 역량을 향상시키려는 교수의 노력에 학생들도 호응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 둘이 맞아 떨어졌을 때 수업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년도 수업을 다시 활용한 강의를 들었던 C씨는 발표 중심의 또 다른 전공 수업을 들었는데, 이 수업은 오직 소통 시간'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C씨는 "발표 중심 수업을 들었는데 발표문과 질문은 온라인 시스템을 활용하고, 수업 시간에는 오로지 학생들이 토론하고 교수님의 피드백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면서 "온라인을 통해 배움을 극대화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그는 "교수님이 코로나 상황에서도 좋은 수업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시는 걸 느꼈다. 학생인 '나도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일상이 돼 대다수의 대학교들이 대면수업을 택한 2022년, 이제부터 '진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3분 피드백'을 받았던 D씨는 코로나19 종식 후 대학생활에 대해서 "'오픈북 시험(자료를 보는 것을 허용하여 시험을 치르는 방식)'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코로나 종식 후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가 끝난다고 해도 수업 질 저하 문제 등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며 "미래의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수업의 질 개선을 위해 체계적인 틀을 미리 마련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태그:#코로나, #대학, #비대면수업, #온라인수업,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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