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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하는 일 중 하나가 인스타그램을 하냐고 묻고 아이디를 교환하는 일이다.
 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하는 일 중 하나가 인스타그램을 하냐고 묻고 아이디를 교환하는 일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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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이제 한 달 정도 됐다.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적응하는 과정에 있는 나에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다. 나의 소확행은 학교 앞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것도, 교복 넥타이 색깔이 바뀐 것도 아니라 핸드폰을 걷지 않는 것이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교내 핸드폰 수거와 나의 관계를 설명하면 글을 읽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2020년부터 핸드폰 강제수거가 인권침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당시 다니던 학교에서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내세운 공약도 인권침해 교칙 철폐였는데, 그때 내세웠던 세부 공약 중 하나가 핸드폰 강제수거 철폐였다.

학생부의 공약 삭제 검열에 맞서다 어쩔 수 없이 공약을 내리긴 했지만 내 신념은 내리지 않았다. 여하튼, 어쩌다 보니 교내 핸드폰 수거에 대해서만큼은 나름 잔뼈가 굵은 사람이 됐다. 딱히 엄청나다기보다는 "내가 온다니까 학교가 무서워서 입학도 전에 규칙을 바꿨다"와 같이 터무니없는 농담을 던질 정도는 된다.

이렇게 잔뼈가 굵어진 사람이 핸드폰을 안 걷으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체험해봤다.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기간으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하루 8시간씩 한 달이면 꽤나 많은 경험이 축적됐다고 생각한다. '우문현답(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듯이, 이렇게 찬반이 대립하는 문제도 어쩌면 현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로워진 분위기, 가능성의 확대
쉬는 시간에 인스타 아이디 교환하기도


먼저 분위기가 자유로워졌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내 핸드폰이 강제적인 권력에 의해 수거된다는 것은 삐딱한 시선에서 바라보면 굉장한 억압이다. 표면적으로는 "교육 공동체 의견 수렴을 통해~"로 이어지는 말에 포장돼 정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과정을 하나하나 파헤쳐보고 겪어보니 양심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는 과정의 산물이고 위계질서다. 그런 위계질서가 깨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한 걸음의 진보다.

또, 수업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아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전자기기가 좋든 싫든, 그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교실도 이런 흐름을 피해가지 못한다. 어떤 수업 시간에는 TV 화면에 띄워진 QR코드를 통해 수업 전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종이로 설문 조사를 했으면 일일이 걷고, 수거해서 취합하는 데 몇 시간은 족히 걸릴 일이다.

QR코드를 찍어서 설문에 응답하는 데 10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또 다른 수업 시간에는 수업 시간에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핸드폰을 걷었으면 그걸 가져오고, 하나씩 찾아가고, 다시 넣어서 반납하는 데에만 족히 10분은 걸릴 일이었다. 

쉬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하는 일 중 하나가 인스타그램을 하냐고 묻고 아이디를 교환하는 일이다. 그렇게 서로 팔로우, 즉 맞팔을 하게 되면 '친구 하나 만들었다' 생각할 정도는 된다.

번호를 교환할 때도 공책 한 바닥에 친구들의 번호를 적는 방식에서 그냥 바로 번호를 말해서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집에만 가면 친구들 번호 입력하는 일을 자주 까먹는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걱정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논쟁 피해선 안 돼

핸드폰을 걷지 않고 난 뒤부터 걱정과 우려가 존재하고, 사소한 갈등도 없지 않았다. 단적인 예시로, 학교 익명 게시판에는 "조만간 누군가 사고를 쳐서 핸드폰 다시 걷을 것 같다"는 우려 섞인 예언이 올라온 적이 있다. 그만큼 학교 내부에서도 어떤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조심하는 분위기가 없잖아 있고 무언가 사고가 터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 보인다. 사람 사는 곳에 사고 안 터지는 게 더 이상하기야 하다만은.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틱톡(쇼트 비디오 플랫폼)을 찍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쩌면 사소한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영상을 찍어도 되는가'라는 논제는 꽤 해묵은 논제였지만 학교 안에서는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영상을 찍을 방도가 없었기에 이런 논쟁이 없었지만, 이제는 이런 논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만, 글쎄, 입시만을 바라보는 학교는 그닥 논쟁을 즐길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제 21세기의 20% 조금 넘게 지났을 뿐일 지금 이 세기를 평하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21세기를 정보화의 세기라고 한다. 정보화의 세기와 함께 필연적으로 찾아온 변화는 정보화기기의 보급, 즉 핸드폰의 보급이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다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핸드폰 완전 보급 수준에 이르렀다. 그 말인즉슨 학교에서의 보급률도 100%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제 학교에서 핸드폰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분명 마주해야 할 문제고 논제다. 교육은 그동안 이런 문제를 하찮은 문제로 치부하며 관성적으로 회피해왔다. 교육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실로 비겁한 회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 매번 강조하는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이고, 실제로도 학교에서도 그런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진짜 민주시민교육을 하겠다면 학교는 계속 토론해야 한다. 핸드폰을 걷는 것과 걷지 않는 것을 놓고, 무엇이 인권적이고 교육적이며 합리적인지 말이다. 민주시민교육이란 거, 생각보다 별 게 아니다.

- 안승민(동탄중앙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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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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